목록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2651)
향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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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20 통곡의 벽 3. 기독교와 유대교 기원 전후의 유태인 사회 4천 년 유태인 역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2천 년쯤 예수 그리스도가 유태민족에서 태어나면서 유태 역사는 물론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 예수가 태어난 시절 유데아의 베들레헴을 비롯한 사마리아, 갈릴리 등지는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으며 유태인들은 자치가 허용되었지만 대단히 혼미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 유태인 사회를 구성한 계층별 그룹을 살펴보자. 우선 '사두가이파'가 있다. 사두가이파는 유태인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고 성전에 희생물을 바치는 역활을 맡아 그 주변에 몰려 사는 사제들, 그리고 넓은 농토를 갖고 있는 지주들, 그리고 아주 보수적인 일부 율법 학자들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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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태인' 그들은 누구이가? 19 통곡의 벽 2. 유태교와 유태민족 '히브리'란 '떠돌이'의 뜻 유태교와 유태민족과의 관계는 확실한 선을 긋기가 애매하다. 유태교는 유태민족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았으며 유태교는 유태민족만의 종교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태교라면 유태인으로 태어나면서 즉 모태로부터 지니고 살게 되는 종교였다. 유태인 하면 유태교를 의미했다. 민족종교라는 단어의 의미로도 부족할 정도로 민족과 종교가 일체가 되어 있다. 모세가 유태인들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끌어오면서 전한 야훼 하느님의 장황한 율법도 당초부터 하느님 백성인 유태민족만을 위한 것이었다. 유태인의 명칭은 아브라함과 자손들에게 붙여진 '이부리(Ivree)'였는데 여기에서 '히브리(Hebrew)'가 나왔다. 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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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8 통곡의 벽 * 유태교, 어떤 종교인가 (유태교와 기독교의 비교) 1. 하느님, 토라, 이스라엘 유태민족과 계약을 맺은 '야훼 하느님' 유태교의 핵심은 유일한 인격신 하느님의 존재에 있다. 그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자신의 조상과 같은 사람을 흙으로 빚어 생명을 주셨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이 주신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 유일신 하느님을 '야훼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그 야훼 하느님이 내리신 가르침이 바로 '토라(Tora, 구약의 모세 5경)'이다. '토라'란 말 자체가 고대 히브리어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 토라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따라서 하느님, 토라, 이스라엘은 끊을래야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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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7 통곡의 벽 5. 유태인의 정체 혈통이냐 종교냐 1950년 신생 이스라엘 의회에서 첯 번재로 통과한 법이 '귀환의 법'이 있다. 이 법은 유태인이면 누구나 이스라엘 땅을 밟는 즉시 시민권이 주어진다는 법이다. 이 귀환의 법을 통해 유입된 인구로 인해 이스라엘 인구는 건국 이후 만 3년을 넘으서면서 바로 늘어났다. 그런데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유태인의 정의에 문제가 생겼다.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태인이 시민권이 거절된 사건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법이 규정한 유태인의 정의는 혈통이 아니라 유태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유태교도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혈통이 유태인이라도 유태교도가 아니면 유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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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6 통곡의 벽 4. 유태인들의 생활 영역 유럽 각국의 유태인 추방 디아스포라 시대의 유태인들이 겪은 가장 큰 고난은 거의 전유럽에서 일어난 유태인 추방일 것이다. 먼저 조직적으로 유태인을 추방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유태인들이 영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초반 경으로 상인과 공인으로 활약했으며 부가 축적되자 왕이나 지방의 영주들에게는 돈 줄이 되었다. 그런 차입이 빈번하다보니 부채가 쌓이고 이자까지 늘어났다. 그래서 왕이나 지방 영주들은 부채를 들거나 없애기 위해서 유태인들에게 세금을 배가시키고 트집을 잡아 그 지역에서 내 쫒기도 하였다. 유태인들로부터 돈을 빌려쓴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업자나 수전노로 보였을 것이며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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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5 맛사다의 정상. 그 당시의 회의장소, 물저장소, 투석기로 던졌을 돌들이 쌓여있었고 그 유적들. 3. 십자군 시대의 유태인 고래 싸움에 등터진 유태인 2000년의 부활절을 앞두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2천 년 역사에서 일어난 지난날 기독교의 과오를 지적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소 6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 도중 자행된 유태인 살해다. 십자군의 목적이 이슬람교도의 손 안에 있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1차 십자군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은 무려 4만여 명에 달하는 유태인 및 이슬람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였다고 한다. 애꿋은 유태인들이 고래 싸움에 등 터진 겪이었다. 예루살렘은 638년 이래 아랍 사람들의 점령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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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계절, 봄이 찿아왔다! 하남 습지 자전거길 전경 하남 습지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다른 곳에는 아직 피지 않았으나 이곳에는 빠른 개화가 되어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뒤덮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 사는 많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꽃구경을 나왔다. 꽃을 보면 여자들은 특히 흥분되는 모양이다. 가을이 남성들의 계절이라면 봄은 여성들의 계절이다. 자신을 꽃에 비유하는 여자들은 나비가 찿아주기를 바라듯이 님을 기다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여자는 혼자두면 안된다고 한다. 언제 어떤 놈이 채갈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처음 만나도 감언이설에 속아 따라가는 사람도 문제지만 남자는 여자를 보면 가만히 두지 못하는 종족번식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꽃피는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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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4 맛사다의 정상. 그 당시의 회의장소, 물저장소, 투석기로 던졌을 돌들이 쌓여있었고 그 유적들. * 유태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2. 봉건주의 시대의 유태인들 장사꾼이 된 '아웃사이드' 유태인 사회가 중동과 이탈리아, 유럽 여러나라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4세기경부터 로마 제국은 점차 활력을 잃어갔다. 그즈음 아시아 유목민 '흉노족'이 중앙아시아를 휩쓸고 유럽으로 밀려들자 그 여파로 '동코트족'과 '서코트족'이 점차 서진을 하면서 로마 쇠퇴의 계기가 되었다. 5세기에 이르러 로마가 동.서로 분리되고 서로마가 코트족에 시달리다가 멸망하자 유럽은 다양한 지역의 봉건주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이런 가운데 유태인들의 거주 지역은 전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당시 국경이 없는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