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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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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1378 : 로마 제국 1083 ( 콘스탄티우스 황제 31 ) 로마의 역사 1378 : 로마 제국 1083 ( 콘스탄티우스 황제 31 ) ​ ​ 콘스탄티우스 황제 31 (제위 : 서기 337 ~ 361 ) ​ ​ 갈리아의 율리아누스 (계속) ​ 서기 355년도 거의 저물어갈 무렵, 부제 울리아누스는 비엔에 도착했다. 로마 시대에는 비엔나라고 불린 이 도시는 그르노블에서 리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도시로발전했기 때문에, 리옹을 대신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율리아누스가 도착한 곳도 이름뿐인 황궁이었다. 하지만 율리아누스가 개인적으로 데려가는 것을 하락받은 수행원은 네 명뿐이었다. ​ 수행원 네 명은 하인 두 명에 주치의 한 명, 그리고 사서 한 명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주치의와는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적어도 일상생활이 외롭지는 않았다. 밀라노를 떠날 때 다른 것은..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마지막회)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마지막회) ​ ​ ​ 통곡의 벽 ​ ​ 2.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역경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찿는다. 어느 민족에게나 영광스런 역사가 있는 반면 감추고 싶은 치욕스런 역사도 있다. 그래서 영광스런 역사는 크게 내세우고 치욕스런 역사는 뒷전에 슬며시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유태인은 그렇지 않다. ​ 구약을 보면 덮어버리고 싶은 고난과 치욕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남아있다. 유태인들의 독특한 전통민족 역사관으로 치욕과 역경에 대한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해석이 있다. 그들은 고난과 역경이 극복과 영광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잘못되어서는 안된다는 단순한 교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은 영광을 낳는 디딤돌이 된다는 보다 긍정적인 신념이..
봄향기를 맡으며 자전거길을 달리다. 봄향기를 맡으며 자전거길을 달리다. 청평 에덴동산 벚꽃길 전경 ​ 4월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자전거 주행 계절이 되었다. 겨울 동안 주행 코스로 망설이던 벗고개, 서후고개, 중미산 고개, 강촌 내륙길, 춘천가는 북한강 자전거길, 중랑천 자전거길, 새터와 팔당을 잇는 북한강 자전거길, 하남-팔당대교-양수역- 양평 자전거길 등을 차례로 주행하기로 했다. ​ 4월 첯주부터 시작된 봄향기 넘치는 자전거길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먼저 벗고개와 서후고개를 넘어보기로 한 것이다. 양평가는 자전거길은 수도관 공사 중이라 개통이 늦어지고 있어 이 코스를 먼저 택한 것이다. 이 길은 공도라 혼자 다니기에는 좀 위험한 길이다. 무리를 지어 달리면 운전자들이 조심하지만 혼자 달리면 운전자들이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도 ..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21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21 통곡의 벽 * 유태인과 한국인 유태인 저력의 뿌리를 찿아서... ​ ​ 1.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 ​ 각박한 자연과 온후한 자연 민족 단위로 보아 유태인과 한국인의 차이는 대체적으로 저항형과 순응형으로 대별될 수 있다. 유태민족은 저항형, 극복형, 개척형, 진취형, 능동형인 데 비해 우리 민족은 대체적으로 순응형, 수용형, 종순형, 수동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극명한 차이는 틀림없이 두 민족의 발상.여명기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아온 자연 풍토와 역사 환경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유태민족이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자연 조건이 좋지 않았다. 유태민족은 처음부터 각박한 자연과의 싸움으로 삶의 첯 장을 열어야만 했던..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20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20 통곡의 벽 ​ 3. 기독교와 유대교 기원 전후의 유태인 사회 4천 년 유태인 역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2천 년쯤 예수 그리스도가 유태민족에서 태어나면서 유태 역사는 물론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 예수가 태어난 시절 유데아의 베들레헴을 비롯한 사마리아, 갈릴리 등지는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으며 유태인들은 자치가 허용되었지만 대단히 혼미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 유태인 사회를 구성한 계층별 그룹을 살펴보자. 우선 '사두가이파'가 있다. 사두가이파는 유태인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고 성전에 희생물을 바치는 역활을 맡아 그 주변에 몰려 사는 사제들, 그리고 넓은 농토를 갖고 있는 지주들, 그리고 아주 보수적인 일부 율법 학자들로 구..
'갈등의 핵, 유태인' 그들은 누구이가? 19 '갈등의 핵, 유태인' 그들은 누구이가? 19 통곡의 벽 2. 유태교와 유태민족 '히브리'란 '떠돌이'의 뜻 유태교와 유태민족과의 관계는 확실한 선을 긋기가 애매하다. 유태교는 유태민족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았으며 유태교는 유태민족만의 종교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태교라면 유태인으로 태어나면서 즉 모태로부터 지니고 살게 되는 종교였다. 유태인 하면 유태교를 의미했다. 민족종교라는 단어의 의미로도 부족할 정도로 민족과 종교가 일체가 되어 있다. 모세가 유태인들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끌어오면서 전한 야훼 하느님의 장황한 율법도 당초부터 하느님 백성인 유태민족만을 위한 것이었다. 유태인의 명칭은 아브라함과 자손들에게 붙여진 '이부리(Ivree)'였는데 여기에서 '히브리(Hebrew)'가 나왔다. 히브..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8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8 통곡의 벽 * 유태교, 어떤 종교인가 (유태교와 기독교의 비교) 1. 하느님, 토라, 이스라엘 유태민족과 계약을 맺은 '야훼 하느님' 유태교의 핵심은 유일한 인격신 하느님의 존재에 있다. 그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자신의 조상과 같은 사람을 흙으로 빚어 생명을 주셨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이 주신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 유일신 하느님을 '야훼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그 야훼 하느님이 내리신 가르침이 바로 '토라(Tora, 구약의 모세 5경)'이다. '토라'란 말 자체가 고대 히브리어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 토라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따라서 하느님, 토라, 이스라엘은 끊을래야 끊..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7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7 통곡의 벽 5. 유태인의 정체 혈통이냐 종교냐 1950년 신생 이스라엘 의회에서 첯 번재로 통과한 법이 '귀환의 법'이 있다. 이 법은 유태인이면 누구나 이스라엘 땅을 밟는 즉시 시민권이 주어진다는 법이다. 이 귀환의 법을 통해 유입된 인구로 인해 이스라엘 인구는 건국 이후 만 3년을 넘으서면서 바로 늘어났다. 그런데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유태인의 정의에 문제가 생겼다.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태인이 시민권이 거절된 사건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법이 규정한 유태인의 정의는 혈통이 아니라 유태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유태교도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혈통이 유태인이라도 유태교도가 아니면 유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