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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8

 

'갈등의 핵,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18

 

 

통곡의 벽

 

* 유태교, 어떤 종교인가

(유태교와 기독교의 비교)

 

 

1. 하느님, 토라, 이스라엘

 

유태민족과 계약을 맺은 '야훼 하느님'

유태교의 핵심은 유일한 인격신 하느님의 존재에 있다. 그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자신의 조상과 같은 사람을 흙으로 빚어 생명을 주셨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이 주신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 유일신 하느님을 '야훼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그 야훼 하느님이 내리신 가르침이 바로 '토라(Tora, 구약의 모세 5경)'이다. '토라'란 말 자체가 고대 히브리어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 토라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따라서 하느님, 토라, 이스라엘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 부언하면 태초에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사람을 만들어서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라고 하셨는데 자유의지를 갖게 된 인간들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죄를 저지르니 토라라고 하는 삶의 구체적인 가르침을 내리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종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택해 계약으로 묶어 그 가르침에 따르는 율법의 이행 의무를 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여타 세계 민족들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인간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셨다는 것이 유태인들이 주장하는 원초적인 유태교 신앙이다.

 

따라서 유태인들에게 있어 유태교 신앙은 자기 종족에게 내려진 이 토라의 바른 이해와 그 실행이 전부였다. 어떻게 하면 토라를 보다 바르게 이해하고 터득하며 또 실행할 수 있는지가 유태인들 종교생활의 목표였고 연구 과제였다. 그런 목적 의식에서 마련된 것이 원전 토라를 보조하고 해설한 '탈무드'다.

 

 

유태교의 신앙관을 좀더 부언하면,

첯째,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은 오늘날에도 우주의 변화를 주도하며 하느님과 사람의 연결고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둘째, 하느님이 토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주셨으며 토라의 주요 골자를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내려 주셨고, 이후에도 끓임없이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주셨다. 토라는 하느님의 율법이지만 그 토라의 깊은 뜻을 찿는 일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셋째, 구원을 믿는다. 하느님은 인간을 그대로 팽개치지 않고 필요한 경우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파라오로 부터 구원해주신 것도 그 한 예이다. 하느님은 결국 사람들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다시 구원해주신다.

 

 

계약 율법 위반이 바로 죄

유태인들은 종교적인 죄의식은 항상 갖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믿는 원죄를 유태인들은 믿지 않는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죄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불경스러운 죄를 짖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속죄일을 정해 놓고 가정에서나 시냐고그에 모여 각자가 하느님께 지은 죄를 속죄한다.

 

유태인들은 인간이 선의 혹은 악의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하느님의 뜻과는 관계 없이 자유의지로 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선으로 기울거나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당사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뚜렷한 인식 없는 사후관

유태교에서도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나 불교에서처럼 철저하지는 않다.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확고한 믿음은 비교적 약하며 어떤 의미로는 막연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토라에 천당과 지옥에 관한 뚜렷한 언급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편안한 마음의 영혼이 안주하면 그것이 천당이요, 자신이 저지른 죄업에 대한 후회와 번민으로 보낸다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유태인들은 매우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유태인들의 관심은 현세에 있다. 율법을 통한 현세의 안식에 있지 죽고 난 후의 내세에 대해서는 관심이 아주 적다. 현세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삶이 굳이 천당이라고 부른다면 그럴 것이라는 개념이다. 물론 하느님의 기르침을 잘 받들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후에 하느님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막연하다.

 

 

 

유태인들의 메시아관

유태인들이 빈번하게 말해온 메시아도 이런 현세적인 신앙과 일맥상통한다. 유태왕국이 다른 이웃에게 유린당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등의 수난이 잇따르면서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와서 야훼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부활시키고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운다는 사상이다. 이런 메시아 사상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태인들의 신앙 속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메시아는 다윗처럼 군사적인 리더라는 측면이 강했다. 앗시리아나 바빌론의 침공으로 수난을 당하던 그 시기 역사 현실이 그런 물리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아관을 만들었을 것이다. 기원후 "내가 메시아요"하고 나타난 여러 사람들이 저항군을 이끌고 투쟁하다가 사라지곤 했다.

 

오늘날 정통파 유태교라도 그런 메시아관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개혁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태교인들은 그런 특이한 능력의 메시아 출현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가 지상에 세워지는 시대가 메시아가 나타난 시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정한 메시아가 나타나 어떻게 리드한다기보다는 그런 시대가 메시아적인 시대이며 유태인들이 바라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