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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1412 : 로마 제국 1118 ( 율리아누스 황제 20 ) 로마의 역사 1412 : 로마 제국 1118 ( 율리아누스 황제 20 )  ​ ​  율리아누스 황제 20(제위 : 서기 361 ~ 363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 (계속)​첫째, 그리스.로마의 신들을 모시는 전문 사제가 되어도 그들의 개인재산은 비과세대상이 되지 않았다. 율리아누스가 기독교 성직자들에 대한 비과세 제도를 폐지한 것은 종교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이상 모든 종교가 동등한 환경을 누려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기치로 내세워 비과세 폐지 조치를 단행한 이상, 로마 종교관계자만 우대하는 것은 용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둘째, 제사장이나 사제들에게 기독교 수도사 못지않게 세간과 단절된 일상생활을 의무화한 것이다. 극장에 가도 안되고 전차경주나 검투사 시합을 관전하는 것도 안되고,..
로마의 역사 1411 : 로마 제국 1117 ( 율리아누스 황제 19 ) 로마의 역사 1411 : 로마 제국 1117 ( 율리아누스 황제 19 )  ​ ​ 율리아누스 황제 19(제위 : 서기 361 ~ 363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 (계속)​율리아누스 황제가 기독교 세력의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실시한 여러 법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첫째,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의 로마 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법률. 국비로 교회를 짓는 것을 금지하거나 교회 재산과 성직자 사유재산에 대해 비과세를 철폐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둘째, 원수정 시대에 로마 제국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정책화한 법률. 그 당시에는 기독교 세력이 미미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이 두번째 법률에 해당하는 법률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 교사의 추방령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기..
로마의 역사 1410 : 로마 제국 1116 ( 율리아누스 황제 18 ) 로마의 역사 1410 : 로마 제국 1116 ( 율리아누스 황제 18 )  ​​ 율리아누스 황제 18(제위 : 서기 361 ~ 363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 (계속)​에 기록되지 않은 법률 가운데 기독교를 믿는 교사의 교직 추방령이 있었다. 이런 정책을 결정하고 실시해온 이유를 율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교사의 임무는 학생을 기르치는 데 있다. 그때 사용되는 교과서는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쓰인 작품들이다. 그 저자인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은 자기네 신들을 경배하고 숭배했다. 그들의 저작은 그 정신의 결정체다. 한편 기독교는 이런 신들을 악마라고 단정한다. 그렇게 믿고 있는 기독교도들에게 신들이 없으면 작품을 창조할 수 없는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정신의 진수를 어떻게 설명하고 가르칠수 ..
로마의 역사 1407 : 로마 제국 1113 ( 율리아누스 황제 15 ) 로마의 역사 1407 : 로마 제국 1113 ( 율리아누스 황제 15 )  ​ ​ 율리아누스 황제 15(제위 : 서기 361 ~ 363 )​​'배교자' 율리아누스 (계속)​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개인의 이익은, 실력으로 제위를 얻은 자신과는 달리 황제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위에 오르게 될 세 아들의 세습권이 정통성을 획득하는 일이었다. 종래의 로마 황제는 주권자인 로마 시민과 원로원이라는 인간이 권력을 위임해야만 정통성을 획득했지만, 황제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인간이면 황제를 죽이거나 하여 권리를 박탈할 권리도 인간에게 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곤란하다.​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기독교 세력이 미미했던 1세기 중엽에 기독교를 유대인의 민족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나아가게 한 성..
로마의 역사 1406 : 로마 제국 1112 ( 율리아누스 황제 14 ) 로마의 역사 1406 : 로마 제국 1112 ( 율리아누스 황제 14 )  ​ ​  율리아누스 황제 14(제위 : 서기 361 ~ 363 )​​'배교자' 율리아누스 (계속)​율리아누스는 모든 신앙의 존재를 다시 공인했다. 그리스.로마의 신들도,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도, 시리아에서 기원한 미트라 신도, 유대의 신도, 기독교 내부에서 지금까지 교리 해석의 차이로 싸워온 삼위일체설의 아타나시오파도, 거기에 반대하는 아리우스파도, 이 두 종파 이외에 다른 종교들도 모두 좋다고 인정한 것이다.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이상, '이교도'라는 말도 '이단'으로 배척하는 마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면적인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공표된 율리아누스 황제의 칙령이었다.​일신교는 기독교나 유대교, 그후에 나타난 이슬..
로마의 역사 1405 : 로마 제국 1111 ( 율리아누스 황제 13 ) 로마의 역사 1405 : 로마 제국 1111 ( 율리아누스 황제 13 )  ​ ​ 율리아누스 황제 13(제위 : 서기 361 ~ 363 )​​'배교자' 율리아누스 역사상 율리아누스는 '율리아누스 아포스타타'( Julianus Apostata)라는 통칭으로 알려져 있고, '배교자 율리아누스'라고 번역된다. 기독교 세력이 강해진 제국 후기부터 사용된 '아포스타타'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라틴어로 '신앙을 바린 자'라는 뜻이니까, '배교자'는 올바른 번역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면 그 전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죽은 서기 361년 11월 3일에 전권을 장악한 율리아누스는 그 권력을 행사하여 기독교회의 발전을 억제하는 정책을 차례로 실시했지만, 그런 정책을 단..
로마의 역사 1404 : 로마 제국 1110 ( 율리아누스 황제 12 ) 로마의 역사 1404 : 로마 제국 1110 ( 율리아누스 황제 12 )  ​ ​ 율리아누스 황제 12(제위 : 서기 361 ~ 363 )​​구조조정 대작전 율리아누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들어가자마자 황궁을 개혁한 것은 참으로 상징적인 일화를 발단으로 삼고 있었다.​율리아누스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황궁의 이발사를 불러오라고 명령했을 때의 일이다. 율리아누스가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나타난 것은 지체 높은 고관으로 여겨질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율리아누스는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필요한 것은 이발사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보다 다욱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오면서 자기가 이발사라..
로마의 역사 1403 : 로마 제국 1109 ( 율리아누스 황제 11 ) 로마의 역사 1403 : 로마 제국 1109 ( 율리아누스 황제 11 )  ​ ​ 율리아누스 황제 11(제위 : 서기 361 ~ 363 )​​내전을 무릅쓰고 (계속) 행군 도중 갑자기 콘스탄티우스가 병으로 쓰러졌다. 주치의들은 상태가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당장 알아냈다. 아버지 대제와 마찬가지로 콘스탄티우스가 죽음을 앞두고 세례를 받아 정식으로 기독교도가 되었다. 죽음을 맞은 것은 서기 361년 11월 3일이었다.​병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병사가 정설도 되어 있었다. 43세의 나이로 보면 너무 이른 죽음이었지만, 24년 동안이나 황제를 지낸 뒤에 찿아온 죽음이었다. 모든 결단을 혼자 내려야 하는 로마 제국 황제는 항상 격무에 시달렸고, 그래서 문제가 적은 시대에도 기껏해야 20년이 한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