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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와 국방/안보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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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 1차 출동5 조선 수군 1차 출동5 제1차 출동과 5천의 결사대 5월3일. 녹도 만호 정운(鄭運)이 보자고 하기에 불러들여 물었더니 “우수사 이억기(李億祺)는 오지 않고 왜적은 점점 서울 가까이 다가가니 통분한 마음 이길 길 없거니와 만약 기회를 늦추다가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곧 중위장 ..
조선 수군 1차 출동4 조선 수군 1차 출동4 1592년 4월 13일. 대륙 속지화를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왜군 선봉대 제1진이 부산에 상륙했다. 상륙한 왜군들은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상주→충주를 거쳐 한성을 향해 북상했다. 뒤이어 상륙한 왜군 후속 부대들도 대마도, 나고야에 비상대기하고 있던 병력을 합하면 총 30만 ..
조선 수군 1차 출동3 조선 수군 제1차 출동3, 그 뒷 이야기... 조선 함대의 막강한 전력 제1차 출동을 다녀온 이순신은 “삼가 적을 쳐서 무찌른 일을 아룁니다”라고 시작하는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 수군은 옥포해전에서 총 26척의 일본 함선을, 합포해전에서 일본의 대선 4척과 소선 1척을, 적진..
조선 수군 1차 출동 2 조선 수군 제1차 출동2 이순신은 1592년 5월 4일 첫 닭이 울 때 함대를 이끌고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에서 출동했다. 함대의 규모는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으로, 총 85척에 달했다. 대함대의 출항 시간을 이렇게 일찍 잡은 것은 적이 조선 함대의 동향을 탐지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새..
조선 수군 1차 출동1 이순신 함대의 제1차 출동 – 개요 5월 2일. 경상우도 남해에 보냈던 이순신의 군관 송한련(宋漢連)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남해현령과 미조항 첨사, 상주포, 곡포, 평산포 만호 등이 이미 도망쳐버렸고, 무기 등도 모두 흩어져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이날 저녁에 군호(軍號; 암구호)를 ‘용호(龍虎..
이순신 : 부원경상도장(赴援慶尙道狀)1,2,3 이순신 - 경상도로 구원 나가는 장계(一) <부원경상도장(赴援慶尙道狀)> 삼가 구원병 나가는 일로 아뢰나이다. 이달 4월 20일 도착한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晬)의 공문에서 말하기를, “적의 형세가 극성하여 부산, 동래, 양산이 이미 함락되었고, 적들은 내지(內池)로 향해 가고 있으므로, 본..
조선 수군 출동전 이순신 상황파악 조선 수군 출동전 이순신 상황파악 일개 주장(主將)이 마음대로 처리하기 어려우니 - 이순신의 출동준비 1592년 4월 13일 해질 녘에 일본 함대가 부산 앞바다에 출현했고 다음 날인 4월 14일 아침에 대대적인 부산상륙작전이 벌어졌다. 전라좌수영이 설치된 여수에 있던 이순신이 그 사실을 전해들은 것..
조선수군 2차 출동 조선수군 2차 출동 조선 수군의 2차 출동은 5월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11일간의 출동이었다. 당초에는 6월 4일 출동하기 위해, 전라 우수영에 연락하여 3일까지 합류하기로 약속하였는데, 5월 27일 원균으로부터 일본수군이 사천, 곤양까지 진출해 왔다는 급보를 받고 계획을 앞당겨 전라좌수군의 단독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