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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 인생, 천국을 달리다 16

두바퀴인생 2026. 8. 1. 02:13

두바퀴 인생, 천국을 달리다 16

폭염

북한강 자전거길, 제초작업 구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의 폭염 날씨가 매일 지속되고 있다. 다음 주에는 35~37도까지 기온이 올라갈 모양이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논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지거나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 사람이 많다. 온 지구가 지진과 폭염, 해일, 폭풍, 산불 등으로 몸쌀을 앓고 있다.

자전거길에는 터널이 많다. 옛 철도길을 자전거길로 만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한강 자전거길에는 양수리에서 국수역까지 터널이 6개나 있다. 양평까지는 2개가 더 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시원함을 느끼는데 이런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철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대도시 인근 여러 산 밑에 대규모 터널을 파고 지상 시설에 병행하여 대규모 주거 생활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땅 속 지하는 여름철이면 시원하고 겨울철이면 따뜻하여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혹한을 피하기 좋기 때문이다.

규모와 크기, 여건에 따라 주거시설, 편의시설, 오락시설, 운동시설, 산책로, 쉼터, 광장, 카페, 음식점, 독서실, 영화관 등을 만들어 지하에서 생활하는 공간이 좋아 보인다. 급수와 전기, 환기, 오폐수 등의 시설도 잘 갖추면 사람들이 생활하기에도 좋을 듯하다. 유사시 대피공간으로도 사용하고 평시에는 생활공간으로 사용힐 수 있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폭염이 지속되자 호평동에서 사능 방향은 자전거 도로가 왕숙천 신도시 개발로 이동이 불편하고 위험하여 요즘은 춘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춘천 방향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갈 수 있다. 마석에서 폭포수길을 가거나 새터로 가서 45번 도로를 따라 북한강 자전거길과 물의 정원을 지나 운길산역에서 남한강 자전거길이나 팔당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춘천을 왕복하거나 강촌에서 내륙으로 가는 길, 가평에서 화악산 방향, 남이섬과 청평호반 길을 갈 수 있다. 경강교를 지나 우측으로 내륙으로도 갈 수 있다. 상천역에서 호명산을 오를 수 있고 설악이나 청평 방향으로 가거나, 청평대교를 지나 설악이나 양수리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설악에서 다락재나 명달리, 중미산, 유명산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양수리에서 벚고개, 서후고개, 중미산이나 명달리, 다락재로 갈 수 있다. 양수리 방향은 391번 도로를 따라 문호리, 양수리로 가거나 중간에 화서로를 타고 올라가면 다락재, 명달리로도 갈 수 있다.

그동안 자주 다니던 코스보다 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호명산을 돌아 청평 호반길을 돌아오거나, 청평대교를 지나 좌측으로 설악으로 가서 다락재, 명달리, 중미산 방향으로 가거나, 우측으로 391번 도로를 타고 명달리, 문호리, 양수리, 남한강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코스는 차량도 비교적 적고 사람도 적어 달리기에 좋은 코스다. 각종 음식점, 카페도 많고 북한강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경치도 좋기 때문이다.

콩국수

양수리 콩국수

요즘 내가 즐겨먹는 콩국수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좋은 음식이라 즐겨 먹는다. 콩은 몸에 좋다는 것은 물론 콩물과 국수는 위에 큰 부담도 주지 않으며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하고 오이채, 홍당무채, 열무 김치, 절임 무우 등을 넣어 먹을 수 있다. 약간의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먹으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염분도 보충할 수 있다.

막국수는 메밀 국수와 강한 양념으로 위에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막국수도 계속 먹으면 살이 찌고 몸무게가 늘어난다. 그래서 과다한 습취는 비만을 유발핳 수 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시원한 콩국수를 먹는 것이 좋다.

콩국수에 대한 사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고하시라.

콩국수의 유래

콩국수는 단백질과 지방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의 기운을 돋궈주는 음식이다.

콩을 삶아 곱게 간 다음 체에 걸러낸 후 그 국물에 국수를 말아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얼음을 띄워 먹는다. 콩국수를 먹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680년경의 조리서인 『요록(要錄)』에는 태면(太麫)이라는 이름으로, 1800년대 말에 나온 저자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깨국수와 함께 ‘콩국’ 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시의전서에 소개된 조리법은 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삶아서 곱게 간 다음 가는 체에 밭치고 소금을 타서 간을 맞춘 다음, 여기에 밀국수를 말되 웃기는 깻국과 같이 하여 얹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근현대시기 수필가 조풍연(趙豊衍: 1914-1991)은 1987년 콩국수에 관한 짤막한 글을 경향신문에 게재하였다. 그에 의하면, 콩을 간 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 방법은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것이라고 한다. 또, 콩국수라는 음식명은 최근에 들어 새로이 만들어진 이름이고 원래 이 음식은 '콩국'으로 불렸다고 설명하였다. 그가 소년 시절, 큰 통에 콩을 간 물을 담아 얼음을 띄워 파는 상인이 동네 골목에 와서 ‘시원하고 맛 좋은 얼음에 콩국을 사료오’라고 외치며 콩국을 팔곤 했었는데 그 때가 되면 아낙네들이 저마다 그릇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 장수는 신이 나서 반기며 콩국에 우동 사리와 콩국물을 넣고 얼음 두어 조각을 띄워서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회상하였다.

면으로는 냉면국수 등 취향에 따라 골라서 먹을 수 있는데 국수집에서 뽑아주는 우동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경향신문>1987년 8월 21일자)

콩국수는 양곡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1960~1970년대 한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혼분식(混粉食) 장려정책에 힘입어 확산되었다.

1970년대 말, 쌀의 자급자족에 성공하기까지 한국은 쌀 부족 국가였다. 정부는 미국에서 대량 도입된 값싼 밀가루를 비롯하여 쌀을 대체할 잡곡 등을 섭취할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는데 이 식량정책은 식생활의 '개선'이라는, 대대적인 국민운동 형태로 전개되었다.

콩국수에 넣어서 먹는 밀국수는 정부가 저극 권장한 밀가루 소비 확대와 직결되는 것이었고 또 한편으로 콩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손색이 없는 식품이었다. 즉, 콩국수는 혼분식 장려 정책 차원에서 훌륭한 영양식품이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공급된 밀가루 덕분에 크게 유행했다. 일례로, 절미운동이 한창이던 1975년 7월, 한국 식생활개선 연구회 주최로 국립공보관에서 개최된 '식생활 개선 전시회'에서 콩국수는 샌드위치, 감자스프, 고구마 도넛 등과 함께 영양 대용식(代用食)으로 전시되었다.

(<동아일보>1975년 7월 30일자) 1977년 <동아일보>에는 절미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던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수원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에서 콩국수 점심을 먹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다. (<동아일보>1977년 7월 7일자) 한편, 1970년대 전반에 한국 시장에 처음 등장한 믹서기도 콩국수의 확산에 한 몫을 하였다. 그 때까지 콩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멧돌에 콩을 갈아서 다시 체에 걸러내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으나 믹서기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고운 콩국을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콩국수는 여름 더위에 지친 현대인의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콩국수를 먹을 때는 오이채 등 채소를 얹는 것이 일반적이나, 황해도 지방에서는 수수로 경단을 만들어 띄워 먹기도 한다.

휴대용 소형 바디 선풍기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얼음팩을 미니 주머니에 넣어 목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휴대용 바디 선풍기를 장만하였다. 가격이 그리 비싼편이 아니라 2개를 구매했다. 허리 벨트에 차거나 줄을 달아 가슴에 걸고 사용활 수 있다. 충전용으로 강도는 1단에서 5단까지 사용할 수 있고 사용 강도에 따라 3~10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주행하거나 제초 작업을 하는 동안 목에 차고 작업하면 다소 도움이 되는 제품이다. 나오는 바람이 좀 약하고 시원한 편을 아니지만 그래도 땀을 식혀주고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