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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연 5

두바퀴인생 2026. 4. 25. 04:45

봄의 향연 5

호명산을 다시 오르다

호명산 정상에서

1년 전에 호명산을 찿은 이후 지난 주 금요일에 다시 올랐다. '실걸이꽃' 단편을 쓰는데 소재가 되었던 카페를 다시 찿아가기 위해서였다.

상천역 옆으로 새로 만든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좌측으로 내려가면 호명산을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올라가는 길은 그윽하고 조용하고 산새 소리만 들린다. 향기로운 숲 냄새가 코를 찌르며 파고든다.

작년에 올라가는 길이 잘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무슨 배관 공사를 해서 포장을 파고 덧댄 듯 도로 바닥이 불량하다. 중간 음식점에 무슨 배관 공사를 한 모양이다. 중간에서 정상까지는 잘 포장되어 오르기에 좋았다. 주변 수목은 변함없이 울창하고 공기도 맑고 산새 소리만 들린다. 오르내리는 차량도 거의 없다.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게 오르다보면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서 쉬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반대편 복장리 방향으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면 내가 모티브로 삼았던 카페가 나온다.

작년에 그림 그리는 여주인이 반겨주었는데 그대로 있는지 알 수 없다. 카페 모습은 변함이 없고 가페 앞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조심히 계단을 올라 들어가니 금방 여주인이 나타났다. 나이는 70대 정도로 거의 할머니다. 작년에 비해 얼굴은 조금 부었고 고생이 많아 보인다. 내 눈에는 수미가 환생환 것처럼 보였다.

냉커피를 시키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가 말하는 말의 발음이 내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내 귀도 약간 어둡지만 그녀의 발음도 어슬프다. 손주를 돌보느라 바쁜 모양이다. 마른 체격에 눈빛이 날카로운 남편처럼 보이는 사람이 치약을 찿으러 왔다 갔다. 남편이냐고 물었더니 여주인은 별볼이 없는 사람이란다. 서로 불편한 모습이다.

작년에 이어 여전히 카페는 손님이 없어 운영이 어렵다고 한다. 여기는 노인 연인들이 많이 찿는 곳이라 했다. 사람이 드물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카패에는 방이 여러 개 있는데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고 방마다 아늑한 분위기다. 3층에는 레코드 판이 많아 옛날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 속으로는 지난번에 단편 소설로 올렸던 <실걸이꽃>에 나오는 '수미'를 생각했다. 그녀는 나의 첯사랑이었던 혜연의의 딸로 나이는 40대이며 홀로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수미 그녀도 역시 이혼녀였다.

나의 첯사랑이자 그녀의 어미니인 '혜연'이는 얼마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엄마가 들려준 나와의 첯사랑 이야기를 그녀는 모두 알고 있었다.

혜연이는 대구 명문여고를 나왔고 서울 명문 대학 간호학과를 졸었했다. 고2 때 나와 처음 만나 편지를 주고 받았고 대학 진학 후 서울에서 가끔 만나기도 했지만 내가 육사를 졸업하는 날 그녀가 찿아와 만난 이후로 우리는 사랑의 결실을 끝내 맺지 못하고 결국 영원히 혜어졌던 것이다.

그후 그녀는 결혼하여 수미를 낳았고 열심히 살았으나 결혼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녀가 되었다. 그녀는 그후 이곳 호명산 카페에서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다가 지병으로 얼마 전 세상을 하직했던 것이다.

딸 수미는 이혼 후 그녀의 어머니와 같이 이곳에서 지냈는데, 모녀는 그런대로 행복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딸 수미는 나를 찿아보라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나를 찿으려고 애를 썼고 결국 서로 연락이 되어 우리는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울면서 어머니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오래도록 했다. 그녀는 흐느끼며 울다가 내 품에 안겨 쓰러졌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어머니의 연인 체취와 아빠의 체취를 동시에 느끼는 것 같았다. ***중략***

카페 앞 동백나무 이래에 묻힌 혜연이는 나를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남긴 편지를 보면서 나는 그리움에 북받쳐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 동백나무 앞에서 그녀에 대한 아름답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데 수미가 다가왔다. 저녁을 차려놨으니 드시고 가시라고.

수미가 차려준 푸짐한 저녁을 먹으면서 혜연이가 나에게 하던 그대로 수미가 흉내내고 있었다. 반찬을 이것 저것 집어주면서 권유했고 고개를 받히고 내가 먹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오는 거실에서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딸과 아빠로 지내기로 약속하고 한참 동안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수미는 나에게 기대어 친아빠보다 더 다정하게 나를 파고 들었다. 아늑하고 황홀하고 감미로운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린 나는 벌떡 일어섰다. 마음 속에서는 심한 갈등이 일고 있었다.

다시 찿아달라는 수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출발했다. 내가 아득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수미의 모습을 뒤로하고 저물어가는 호명산을 내려왔다.

수미와 헤어져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은 실걸이꽃 바늘에 걸려 호명산 카페로 계속 풀려나가고 있었다. 뭐~~ 이런 내용의 스토리다. 궁금하시면 앞에서 찿아 읽어보시길......

청평댐 근처에서

호명산을 내려와서 청평댐 호반길을 달렸다. 복장리까지 내려가는 길은 지난번처럼 변함이 없다. 줄눈마다 튀어올라 자전거가 마구 덜컹거린다. 다행히 오르내리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멀리 청평호가 보인다. 산하는 푸른 옷으로 열심히 갈아입고 있었다.

호반길을 달리는 내내 지나가는 차량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전방 헬멧 전조등을 깜빡이면서 구비구비 난 길을 달린다. 음악 소리에 흥이 오르고 오르막도 군가 소리에 힘을 보탠다. 내 스피커 메모리 카드에는 여러가지 음악을 담았는데, 패티김, 이미자, 조영남, 배호, 클라식, 군가, 민요, 길거리 유행가 등등이 연속하여 나온다. 베토벤의 교향곡 '영웅'도, '영광의 탈출', '태양은 가득히' 등 영화 음악도 있다.

청평호의 웅장한 자태는 항상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 호수를 배경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부자들이 별장을 짓고 인생을 즐기고 보트를 탄다. 수상 스키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뱃놀이도 하고 낚시도 한다.

청평댐 하단부 제방 부근에서 활짝핀 붉은 벚꽃을 찍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낮에는 기온이 올라 덥다. 이런 기상이 좋은 날인데도 자전거 타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꽃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마 내년 봄을 기다려야 할게다. 저런 탐스런 꽃을 피울 능력도 안되는 한줌의 재로 돌아갈 인간. 서로 아귀다툼으로 더 많이 갖겠다고 더 높이 오르겠다고 아우성 치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평생 욕십부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에게 욕심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가 진보했을 리가 없다. 신은 인간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욕심을 부리도록 만든 것이다. 서로 뺏고 빼앗기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만들어 평생을 남보다 더 잘 살겠다는 욕심을 부리도록 만든 것이 신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어느 불르그에서 옮겨왔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이 시를 배우고, 외우고, 노래로 불렀으니 그렇다. 한국의 서정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진달래꽃>이 아니던가. 그도 그럴 것이, 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로부터 신라의 향가, 고려의 가요 그리고 조선의 시조로 이어진 우리 문학의 특질 - 바로 ‘이별의 정한(情恨) 혹은 ‘한(恨)의 정서(情緖)’를 가장 잘 나타낸 시가 아니던가.

여기에 7‧5조나 3음보라는 운율은 민족적 정서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들 가락에 잘 어울리는 멜로디이다. 읽으면 그냥 노래가 된다. ‘내가 싫다면 곱게 보내드리겠다 -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따다 뿌리겠다 - 그 꽃들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 - 당신이 가셔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로 요약되는 네 개의 연을 합치면 결국 ’가지 말라‘는 말이 된다.

이런 말을 듣고 끝내 돌아설 사람이 있을까. 보기 역겨워(싫어) 가겠다는 사람에게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는 사람, 아니 오히려 꽃을 따다 길에 뿌릴 테니 그 꽃을 밟고 가라는 사람, 게다가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는 사람을 끝내 뿌리칠 수 있을까.

‘산화공덕(散花功德)’ - 임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를 싫다하고 가는 사람에게 꽃을 뿌리고 그 꽃을 밟고 가라는 것은 나를 밟고 가라는 것이다. 즉 ‘사뿐히 즈려 밟고’ 갈망정 이는 꽃을 뿌린 사람의 마음을 짓밟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꽃을 밟을 수 있겠는가.

결국,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면서도 끝내는 가는 임을 붙잡고 싶은 열렬한 사랑의 노래이다. 말없이 고이 보내지도 않을 것이요, 꽃을 뿌려 그 꽃을 밟지 못하게 만들 것이고, 눈물 펑펑 쏟겠다는 말 - 참 지독한 역설로 가는 임을 붙잡는 노래이다.

하기는 이러한 해설조차 사족이 되어버리는, 한국인의 가슴속에 흥건히 젖어 있는 사랑 노래가 아닐 수 없다.

※ 사족 : ‘즈려 밟다’는 어떻게 밟는 것일까. 사실 그 어떤 말이나 밟는 행위로 이를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구태여 그런 설명이 없어도 한국인이라면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것이 어떻게 밟는 것인지를 안다. 한국인만이 느끼는 감정어 - 바로 ‘즈려 밟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청구영언>에 수록된 고시조에 이 '즈려'가 '즈려 뜨다'란 형태로 나온다. 물 위에 뜬 나뭇잎들을 즈려 떠서, 즉 나뭇잎들을 피해서 물만 떠서 마신다는 말인데, 이렇게 볼 때 '즈려 밟다'는 뿌려 놓은 그 꽃을 피해서 밟고 가라는 말이 된다.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놓았는데, 그 꽃을 짓이기듯 밟고 가서야 되겠는가. 꽃을 피해 땅만 밟고 가라는 것이니 내 사랑 짓밟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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