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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걸이꽃 9

두바퀴인생 2025. 5. 4. 05:10

실걸이꽃 9

실걸이꽃

실걸이꽃은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전설에 의하면 한 어부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영 돌어오지 않자 해안가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난 다음에 그 영혼이 환생하여 해안가에 자생한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꽃밭을 지나가면 낚시 바늘같은 가시가 옷에 걸리면 뿌리가 뽑힐지언정 가시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옷걸이꽃이라고도 한다.

 

두 바퀴 인생이 시작되다

나는 남양주로 이사를 하고 계속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기존에 타던 일반 자전거를 타다가 고개길이 너무 힘들어 근처만 뱅뱅 돌았다. 그러다가 전기 자전거를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타보니 언덕길을 쉽게 오를 수 있었고 속도도 빨랐다. 그래서 일반 자전거는 모두 내다버렸다. 그러다가 점차 멀리 나가보곤 했는데 문제는 밧테리였다. 밧테리 눈금이 4개 중 하나만 남게 되면 그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멀리 못가고 되돌아와야 했다. 만약 밧테리가 방전이라도 되는 날에는 집까지 끌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거리 주행이 어려워 장거리가 가능하다는 전기자전거를 새로 거금을 주고 구입하여 타 보았지만 역시 밧테리 용량 부족으로 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능역 자전거 점포에서 자전거 정비를 하다가 주인과 상담한 결과 일반 자전거에 모터를 달기로 했다. 기존에 타던 전기자전거는 가게 사장이 중고로 모두 팔아주기로 했다. 그후 계속 자전거 정비는 사능 가게에서 하게 되었고, 알고보니 사장의 자전거 정비 기술이 뛰어나고 성격이나 언행 됨됨이가 나와 비슷한 점이 마음에 들어 자주 들러 상담하면서 단골이 되었다.

처음에는 350 와트 모터에 15 암페아 밧테리를 달고 큰 고개길 없이 저속으로 달리면 100킬로미터 정도는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나는 밧테리 두 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200킬로미터 거리를 한도로 주행하였다. 그래서 서울 동부 일대 공도를 두루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휴일이 되면 한강, 북한강, 남한강, 팔당 일대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항상 만원이고 사고도 빈발하였기 때문이다.

휴일이면 100~150킬로미터 거리를 한도로 서울 동북부 방향인 포천, 운천, 철원, 일동, 이동, 운악산, 현리, 수동,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 춘천을 주로 다니다가, 청평에서 설악으로 가서 다락터~명달리에서 문호리~ 북한강~ 양수리로 나오거나, 또는 명달리에서 서후고개~벚고개를 넘어 양수리로 가거나, 설악에서 37번 도로를 타고 중미산 방향으로 다녔다.

또는 양수리역에서 벗고개~서후고개를 넘어 문호리나 중미산, 또는 명달리~다락터~설악~청평 방향으로 주행하거나, 청평에서 호명산 정상을 거쳐 설악이나 청평으로, 가평에서 청평 호반을 돌아 대성리로 가거나 설악으로 들어가는 코스, 또는 가평에서 명지산 용추계곡이나 화악산 2개의 고개를 넘어 사창리~ 춘천으로 가거나 북면에서 우측으로 바로 고개를 넘어 춘천호로 넘어가 춘천으로 가는 코스를 넘나들었다. 호평동에서 북한강을 따라 춘천으로 가다가 의암 호반 좌측이나 우측을 돌아 소양댐에 올랐다가 춘천역에서 전철로 돌아오기도 했다.

또는 강촌역에서 내륙으로 소주터널을 넘어가면 양평 방향이나 홍천 방향, 춘천 방향으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내륙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홍천강을 중심으로 여러 도로를 주파했는데 자전거 도로가 없고 고개가 많은 공도를 타기에 목숨을 걸고 주행을 다녔다.

그 다음에는 가평에서 청평호를 돌아 가평대교를 건너 설악으로 가거나, 청평에서 청평대교를 건너 설악으로 가거나 청평에서 바로 호반길을 돌아 가평대교를 지나 설악으로 가거나 하여 설악에 도달하면 설악을 경유, 37번 도로를 타고 중미산을 넘어 양평을 경유 양수리를 지나 북한강 철교에서 새터~마석으로 돌아오거나, 팔당 방향으로 돌아 깔딱고개를 넘어 왕숙천을 올라가면 사능, 금곡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혹한의 겨울이나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 한 해에 평균 50일 정도가 된다. 하루 70킬로미터를 주행하면 한 해에 주행 가능한 날이 대략 300일 정도 되는데, 그러면 2만 1000킬로미터다. 미국의 워싱턴까지 직선 거리로 대략 1만 킬로미터 정도인데 이 거리를 매년 왕복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주행하다보니 1년에 평균 2만 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하였는데, 더불어 나의 건강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되었다. 자전거 타는 것이 나에게는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바로 병원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강 철교 전경

어느날 중미산을 넘어 오다가 양수리 역 근방에서 막국수가 먹고 싶어 근처 막국수집을 찿아 들어갔다. 막국수집에는 나이든 여주인과 좀 젊은 나이의 한 여성이 서빙하고 있었다. 그 젊은 여성이 젊은 날 혜연이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중.후반 정도였고 중키에 반듯해 보였다. 마침 손님이 별로 없는 때라 나는 막국수를 먹고 나오면서 여주인 같은 나이든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이세요?

"네!?"

"막국수가 다른 집보다 제 입에 맞는지 매우 잘 먹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홍보를 위해 소개하려 하는데, 괞찮으시죠?"

"아이구~~,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저기 일하시는 젊은 여성분은 누구세요?"

"아, 네~~ 제 조카뻘되는 사람입니다. 알바를 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죄송하지만, 저 분 결혼했어요?"

"네, 물론이죠!"

"아~~ 그러세요! 제 며느리였으면 해서요. ㅎ ㅎ ㅎ "

"ㅎ ㅎ ㅎ"

하면서 그녀를 쳐다보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젊은 여자가 웃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농담입니다. 하하,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50년 전에 헤어진 혜연이가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어디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 난 머리 속에서 혜연이를 지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호명산 이야기는 평소 많이 들어 본지라 언제 한 번 호명산을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해 봄이 무르익어 가는 5월 경 처음으로 호명산을 올라가서 복장면을 지나 청평 호반길을 따라 가다가 가평대교를 넘어 설악으로 들어가서 37번 도로를 타고 중미산을 올라 양수리로 해서 돌아오기로 했다.

호명산을 올라가려고 입구를 찿았으나 잠시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찿아서 올라갔다. 나의 전기자전거로 정상까지는 순식간에 올라가니 팔각정이 보이고 큰 돌기념비가 있었다. 유튜브를 보니 이곳은 여러 자전거족이 올라와서 사진을 찍은 모습을 많이 보았다.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가 반대편 복장면으로 내려가는데, 얼마 내려가다보니 길 옆에 새해 해맞이를 할 수 있는 아담하고 운치있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카페 주변에는 동백나무 등 갖가지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라일락 꽃도 향기를 내뿜으며 향기롭게 피어 있었다.

나는 카페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라 앞에서 사진 몇 장만 찍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카폐가 이후 나에게 엄청나게 놀라운 장소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P5ugYP-hxw&pp=ygUm7JWE66mU66eI66as7JWEIOuwlOydtOyYrOumsCDsl7Dso7zqs6E%3D

 

난 혜연이가 생각날 때마다 이 음악을 듣는데, 아베마리아 음악은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등 여러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것도 들어보고 조수미씨를 비롯한 여러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도 들어보았지만 이 분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가장 듣기에 좋아서 올렸다. 너무 찟어지는 고음의 소리도 아니고, 너무 낮은 저음의 소리도 아닌 적당한 높이로 듣는 이의 가슴 속 심금을 울려주는 음악이라 선택한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들이 찬양하는 음악이라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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