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실걸이꽃 11 본문
실걸이꽃 11

실걸이꽃
실걸이꽃은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전설에 의하면 한 어부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영 돌어오지 않자 해안가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난 다음에 그 영혼이 환생하여 해안가에 자생한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꽃밭을 지나가면 낚시 바늘같은 가시가 옷에 걸리면 뿌리가 뽑힐지언정 가시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옷걸이꽃이라고도 한다.

놀라운 인연
난 그녀에게 단도입적으로 물었다.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선생님께 대화를 요청한 것은 저의 어머님께서 선생님을 찿아보라고 저에게 부탁을 해서 장기간 어렵게 수소문해서 선생님의 블로그를 찿게 되었고 이렇게 연락드렸답니다."
"네? 어머님이 누구신데요?"
나는 의아해 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하였다.
"저의 어머님은 김혜연씨라고 아마 선생님께서 기억하실 거에요. 어머니께서 이루지 못한 첯사랑이라고 하시던데요. 맞나요? 호 호 호"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에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팅' 하고 충격이 왔다. 갑자기 나의 심장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얼굴은 달아 올랐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다시 찬찬히 바라보았다.
" 아니!!! 정말 김혜연씨 따님 맞으세요?"
나는 흥분된 어조로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저의 어머님의 부탁으로 저는 선생님을 찿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선생님께서 육사 동기생들과는 일체 연락도 하지 않고 아무런 연락처도 없어 무척 찿기가 힘들었습니다. 우연히 육사 동기생 카페에 들어갔다가 선생님이 가입되어 있는 것을 알고 힘들게 선생님의 블로그를 찿게 되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들어가서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선생님께서 대구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 증에 자전거 여행 관련 글에서 선생님 사진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맞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그후 그만 경황이 없어서 연락도 못드리고 지내다가 이제야 직접 만나뵙고 싶어서 제가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나는 말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녀를 바라보며 계속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가슴 한구석에서는 50년이 지난 이제야 혜연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가슴 속에서는 방망이가 요동치고 있었다. 지난 50년 동안 혜연이는 내 가슴 속 한구석에 빨간 앵두 같은 열매가 되어 항상 대롱대롱 메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김헤연씨는 지금 어디 계시고, 건강하신가요?"
그녀는 나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 아니요, 저의 어머님은 여기서 카페를 오래 운영하셨는데, 몇 년 전부터 암투병을 하시다가 얼마전에 돌아가셨구요. 카페 앞 동백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묻었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눈에서는 은구슬 같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네? 뭐라고요? 아~~ ~~~~!!!"
나는 놀라움과 깊은 상실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환희의 기대감이 한순간에 건물이 지진에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구리/암사 대교 위에서 바라 본 잠실 방향, 멀리 한국의 바벨탑 롯데 타워가 보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탄식을 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해졌다. 내 가슴에는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고 슬픔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내 머리 속를 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큰 바위가 심장을 누르듯한 압박감을 느꼈고 가슴 속에서 용암이 치솟듯이 크나큰 슬픔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거짓말이야! 아직도 한창 살 나이인데, 혜연이가 죽다니...... '
말하던 그녀도 처음에는 눈에 이슬이 맺혔고 이내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큰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리며 울기 시작했다.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그녀를 하늘 나라에서 쓰실려고 빨리 데려가신 겁니까?'
나는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던 그녀가 슬픔을 참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머니께서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악이라며 평소 이 '아베마리아' 음악을 자주 들으셨어요."
카페 안에는 아베마리아 음악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와 자신의 지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어본 즉, 구체적인 사연은 이러했다.
< 그녀 어머니는 부모님 가정 형편상 학비 문제로 오빠와 교대로 대학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대학 4년이 아니라 6년에 걸쳐 겨우 졸업하고, 졸업 후 대형병원에 취직하여 근무하다가 어떤 의사와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고 한다. 결혼 후 자신인 딸을 낳고 남편이 병원을 개업하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시댁에서는 병원 개업에 며느리가 돈을 보태지 못한다며 친정이 가난한 가정이라는 이유로 그때부터 시부모와 가족들의 천대와 멸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혜연이는 그런 구박을 참고 살다가 남편의 바람끼까지 병행해서 발생하자, 도저히 그것을 견디다 못해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후 독신으로 혼자 병원에서 간호원 일을 하면서 딸인 자신을 키웠다고 한다.
딸인 자신은 어머니의 정성어린 보육으로 잘 성장하여 나중에는 미국 유학까지 가서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국제적인 회사인 대규모 해양플랜트 회사에 취직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미국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인과 국제결혼도 하고 행복한 신혼을 보내면서 자녀를 갖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부부가 정밀 검사를 실시한 결과 남편의 정자에는 씨가 없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부모는 자신에게 모든 탓을 돌리면서 본격적인 구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종간 차별 발언은 물론 동양인이라고 천시하며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해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은 유럽으로 파견 근무를 자원하여 몇 년 전까지는 북해에서 대규모 해상 플랜트 설치 작업을 수행하였다고 했다. 이혼 후 10년이 지나면서 그녀는 글로벌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여 세계 각지를 누비면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코로나로 전세계가 재앙에 빠졌던 기간에 미국 본사도 막대한 타격을 입자 그녀에게 임금 지불이 지연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휘청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회사는 파산하고 체불 임금 투쟁도 벌였지만 일부만 겨우 받고 퇴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국의 어머니가 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게 되자 연락을 받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어머니를 돌보며 같이 살다가 얼마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이렇게 혼자 카페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
그녀는 이야기 하는 내내 눈빛은 빛났고 강렬했다. 극제적인 커리어 우먼으로 세계적인 안목도 넓고 눈 속에는 그동안에 겪은 시련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것처럼 우수에 젖어 있었다.
나는 시종일관 그녀를 바라보면서 마치 친딸의 성공과 실패담을 듣는 것처럼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 하는 내내 그녀의 당당하면서도 또렷하고 힘찬 목소리와 태도는 마치 헤연이를 마주 대하고 보는 것 같았다.
50년 전, 내가 혜연이 집을 찿아가서 혜연이를 처음 만난 날, 그녀 방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지막에 혜연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말이 기억에 난다. '장차 자기는 한국의 여자 수상이 될거'라고 나에게 당당하게 말하던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카페 안에는 계속 '아베마리아'의 아름다운 선률이 감미롭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혼자 속으로 외쳤다.
'신이여! 어찌 이 두 여인의 삶이 이토록 모질게 고통스런 삶을 살게 하셨나이까? 누구나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연인에게는 너무 가혹하십니다. 어머니에 이어 그녀의 딸까지 인간의 탐욕에 희생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보다 돈을 우선시 하는 인간 사회는 가진자만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지만 갖지 못한 자는 왜 평생 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건가요? 당신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까지 만들었다는데 왜 모든 인간이 더불어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나요?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을 살것처럼 가진자들이 위세를 부리고 약자를 괴롭히며 피를 빨아먹는 이런 불평등한 사회를 당신이 원하셨나요?
두 여인처럼 사회의 부조리에 희생당하고 불행을 겪으면서 왜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까?'
첯사랑이란 이루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랑이 성공하여 부부가 되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무수한 갈등을 겪다보면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꽃이 아름답고 가까이 있는 꽃은 보기 민망하다. 갖은 허물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곱디고왔던 여고 시절, 대학 시절의 아름답던 그녀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행복한 이유는 마음 속에 자리한 첯사랑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