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실걸이꽃 6 본문
실걸이꽃 6

실걸이꽃
실걸이꽃은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전설에 의하면 한 어부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영 돌어오지 않자 해안가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난 다음에 그 영혼이 환생하여 해안가에 자생한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꽃밭을 지나가면 낚시 바늘같은 가시가 옷에 걸리면 뿌리가 뽑힐지언정 가시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옷걸이꽃이라고도 한다.

봄바람이 스쳐가듯이
그로부터 20년 후, 육본 근무 3년을 끝내고 1차 진급에 비선되었다. 육군대학을 정규과정이(1년) 아닌 참모과정(6개월)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비선되었고, 1차 선발은 정규과정을 나온 사람만 선발되었다. 정규 과정과 참모과정은 소령 계급까지 경력과 평정 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전방 부대를 전전한 나같은 사람은 경력이나 평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규 과정을 가지 못하고 참모 과정을 가게 된 것이며 이미 여기서 선두 주자와 후발 주자는 구별되기 시작한 것이다.
육본 근무 3년이 되면 육본을 떠나야 하는데 진급에 비선된 나를 받아주겠다는 부대는 없었다. 그 이유는 진급 해당자로 모두가 부담이 된다며 거부했는데, 특히 기존에 그 부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진급 경쟁 대상 장교들이 적극적으로 내가 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며 내가 그 부대로 가면 진급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사 담당 장교가 이리저리 부대장들에게 알아본 결과 나는 남들이 가기를 꺼리는 강원도 현리에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되었다. 오지 부대는 누구나 가기를 꺼린다. 힘없고 빽없는 장교들만 오지 부대로 가게 되는 게 관례였다. 그래서 나도 힘없고 빽없는 사람으로 낙오자가 되어 강원 오지로 배치된 것이다.
강원도 오지로 배치받은 나는 내린천 옆 00부대 본부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처음에는 참모로 보직되어 근무타가 다음 해에 우여곡절 끝에 2차로 겨우 기적적으로 진급하여 본부 참모장으로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참모장이 되어 부대 전반을 관리하면서 여러 지휘관을 모시면서 다양한 성격의 지휘관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갖가지 어려움도 많았고 문제도 많았지만 모두 극복하고 부대 관리에 최선을 다해 근무했다.

팔당댐 가는 길
장교들은 통상 1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는데 가까운 지역 지구 병원이나 후송 병원에서 실시한다.
어느날 철정에 위치한 후송 병원으로 가서 건강 검진을 받는데, 혈압을 간호장교가 재는 바람에 나의 혈압이 140을 넘었다. 키는 작고 아담한 얼굴의 소령 간호장교는 나를 보고는 연신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아니 이렇게 젊으신 대령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면서 나의 혈압을 다시 쟀으나 역시 140 수치를 나타나고 있었다.
"저는 소위 때부터 계속 140 입니다. 유전적인 원인인지 몰라도 원래부터 좀 높은 편입니다."
"아!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건강 검진을 끝내고 간호장교 사무실로 찿아갔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더니 소령 간호장교는 웃으면서 나를 반겼다.
"차 한잔 하러 왔습니다"
" 네 ! 어서오십시요"
통상 건강 검진을 오는 영관급 이상 고급 장교들은 병원에 오면 통상 간호장교를 찿아가 차를 한 잔하고 가는 편이라 나도 스스럼 없이 간호장교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다.
"참모장님,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네, 한 잔 주세요"
나는 간호장교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과거 경력을 물었는데, 그녀는 간호장교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국군통합병원과 후송병원을 전전하며 근무하다가 이곳으로 온 지는 1년이 되었다고 했다. 아직 미혼이고 체구는 작지만 예쁘장한 얼굴은 야무지고 단단해 보였다.
"참모장님은 육사 몇 기에요?"
"네, 00기 입니다"
그럼 우리 병원 간호부장님 남편 분이 3년 후배가 되는데요. 부장님이 군인 부부에요."
"아! 그래요?"
나는 갑자기 혜연이가 생각났다. 혹시 간호장교로 군생활을 하지 않나 싶어서다.
"혹시 간호부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네, 홍00 중령입니다."
"아, 네~~ 김소령님, 혹시 간호장교 중에 김혜연이라는 분이 계시는지 아세요?"
" 아니, 그런 이름을 가진 간호장교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나는 설마 하고 약간 기대를 했지만 역시 실망을 했다.
"아시는 분이세요?"
"네~~ 옛날에 그 사람이 서울 모 대학의 간호학과를 다녔는데 혹시나 하고 여쭤본 것 입니다."
"아 그래요!"
그리고 그녀는 여기서 근무하는 동안 받는 스트레스를 거침없이 이야기 하면서 남군 장교들이 여군 간호장교들에게 너무 짖굿다고 했다. 특히 기무, 헌병 등 기관 부대에 근무하는 비슷한 계급의 장교들이 못살게 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쥐꼬리 만한 권력을 행사하며 일본놈 앞잡이 같은 행동을 하는 놈들이다. 밤늦게 전화질은 물론 식사하자, 데이트하자, 밥 사줄께 나와라 등이다. 단기 교육을 받고 임관한 장교일수록 수준이 낮고 쥐꼬리만한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원이 되면 저질스럽고 더 악랄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저질 숫놈들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간호장교의 웃는 모습을 뒤로 하고 부대로 돌아왔는데, 그 다음 주말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숙소 당번병이 누가 찿아왔다고 보고했다. 내가 현관 밖을 나가서 보니 지난번에 건강검진을 갔던 후송병원 간호장교 김소령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가용 차를 타고 사복을 입고 왔는데, 짙은 남색 티를 입고 온 것을 보니 화려함보다 짙은 색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짙은 색을 선호한다는 것은 강직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녀는 자가용으로 철정에서 아홉사리 고개를 넘어 현리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우리 부대 근방에 있는 나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했다. 나는 반가이 맞아 안으로 안내했다. 나는 거실에서 차를 대접하며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휴일에 무턱대고 찿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저도 마침 쉬고 있던 참이였어요"
"참모장님, 한가지 여쭤봐도 되나요?"
"그래요, 물어보세요"
"검진 오신 그날 저에게 물어보신 혹시 김혜연씨라는 분은 참모장님께 어떤분이세요?"
"네? 그건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ㅎ ㅎ ㅎ"
" 말씀드리자면 길지만, 한마디로 오래전 저의 첯사랑이었답니다."
" 아~ 그러세요!"
"그냥 고등학교 시절 만나서 편지를 자주 주고 받으며 알고 지냈던 여인입니다."
"아직도 그 분을 그리워하시나 봐요"
"그냥 간호장교님을 보니 옛날 그 사람이 생각나서요."
"아~~ 네~~그러세요"
나는 말없이 창밖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니 동공이 다소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외면하고 당번에게 간단한 저녁 준비를 시켰다.
"저녁 식사 하고 가세요."
"아니예요. 그냥 갈래요."
"모처럼 이렇게 오셨는데 식사 하고 가세요"
나는 억지로 그녀를 붙잡고 재차 권유하자 그녀는 못이기는 척 다시 앉았다.
"저녁 먹으러 온 게 아닌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짧은 순간, 그녀가 나를 찿아온 이유를 어럼풋이 알 것 같았다. 내 혼자 생각이지만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미 유부남이고 그녀는 미혼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이고 마음을 줄 수도 없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나를 찿아온 것일까. 그것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지금도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당번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그녀가 가겠다고 하면서 일어섰다. 그녀에게 찿아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악수를 하고 배웅해주었다. 그녀는 쿨 한척 '저녁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웃음을 띠면서 출발했다.
그후 나는 김소령과 한두번 더 만났다. 철정과 현리 사이 오미재 고개 근방 상남이나 아홉사리 고개 너머 내촌 등지에서 만나서 식사도 하고 많은 대화를 가졌다. 그러다가 얼마 후 내가 그 부대에서 후방으로 전출가면서 김 소령과의 연락은 두절되었다. 아마 지금쯤 어디선가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