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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실걸이꽃 5

두바퀴인생 2025. 4. 24. 07:28

실걸이꽃 5

실걸이꽃

실걸이꽃은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전설에 의하면 한 어부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영 돌어오지 않자 해안가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난 다음에 그 영혼이 환생하여 해안가에 자생한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꽃밭을 지나가면 낚시 바늘같은 가시가 옷에 걸리면 뿌리가 뽑힐지언정 가시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옷걸이꽃이라고도 한다.

첯사랑의 종착역

남녀 간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한순간에 인생이 바뀔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여성을 놓친 내가 나중에는 후회했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당시에 나의 마음이 동하여 그녀가 나와 인연이 되었다면 나의 가정은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된다. 부자집에서 귀하게 자란 그녀가 만약 나와 결혼했다면 아마 지금쯤 가난과 빈곤함, 경제적 어려움에 많은 갈등을 겪다가 그녀는 악녀가 되었거나 이미 이혼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제복이나 유니폼은 개인의 다양함을 감추고 같은 모습으로 군집을 이루기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이 보기에 같은 외모의 군집 행태의 움직임은 멋지게 보일 것이다. 젊은이라면 저런 제복을 입고 자신도 멋지게 자랑하고픈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같은 제복을 입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집에 일반 대중은 환호하기 마련이다.

당시 육사는 서울 일류 대학 수준의 수재들이 몰려들던 시절이었다. 일반 대학에 앞서 입시가 실시되는 특차였던 육사에 합격하고 나중에 다시 일반 대학 입시에 응시하여 서울대를 합격하고도 서울대를 포기하고 육사를 선택한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것은 월남전과 제3공화국 시절에 군인의 줏가가 하늘 높이 치솟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전국 고등학교 우수 자원이 많이 지원하여 육사가 자긍심이 높았던 시기였기도 했다.

그래서 육사 후문 쪽 태능 숲에 설립된 지 얼마 안된 초창기 00 여자 대학이 있었는데 당시 일류 대학을 못간 여학생들이 많이 몰려들어 입학하던 여자 대학이었다. 그래서 육사생들은 00 여대 여학생은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여 그녀들과 사귀는 것을 기피했던 기억이 난다. 미팅 신청이 들어와도 대부분 거절했다.

 

 

한강변 자전거길 봄꽃

 

한강변 구리시민공원 자전거 도로 옆에 노란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이 땅에도 어김없이 봄은 찿아왔다. 하늘을 마읏껏 날아다니는 새처럼 나도 자전거길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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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어느날 어떻게 연락되었는지 우연히 혜연이 한테서 편지 연락이 왔는데 다음 주말 언제 신촌 어디에서 만나자고 했다. 주말에 나는 신촌으로 약속된 장소에 가니 그녀의 오빠가 혜연이와 같이 나와 있었다. 혜연이 소개로 서로 처음이라 인사하고 같이 동석하여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의 나이는 나와 비슷했다. 그날 셋이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실제 혜연이는 한 학기를 휴학하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그 내용은 혜연이 대신 육사로 나를 면회온 여학생의 이야기와 동일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둘이서 교대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날 신촌에서 본 혜연이는 무척 성숙해져 있었고, 그 날 그 찻집에는 혜연이 친구들인 여러 남녀 친구들이 우굴거렸다. 나는 혜연이에게 내 졸업식날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흔쾌히 승락하였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그녀도 나와 마지막을 위해 졸업식을 가는 것이 나와 관계를 정리하는 최종 단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졸업식 날 혜연이가 약속대로 육사를 찿아왔고 대구에서 나이드신 어머님과 누님에 오셔서 혜연이를 인사 시켜드렸다. 그리고 어머님과 누님은 대구로 먼저 내려가시게 하고 난 혜연이를 데리고 평소 가까운 동기생들과 여자 친구들이 같이 시내로 나가서 마지막 만찬과도 같은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그리고 식사 후 나는 그날 그녀와 마지막으로 최종적인 이별을 했다.

"혜연이! 그동안 고마웠다. 부디 건강하고 꼭 행복한 삶을 잘 살아가도록 해라! "

"그래요, 오빠도 꼭 행복하세요!'

그녀는 눈가에 이슬이 보일듯 말듯하면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돌아서서 예쁜 걸음걸이로 또박또박 걸어갔다. 그녀는 산 위의 사슴처럼 몇 번이나 나를 뒤돌아보면서 멀어져 갔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걸어가는 뒷 모습을 보니 자존감과 당당함이 용솟음치는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진 후로 내가 전방 부대로 배치되면서 영원히 그녀와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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