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실걸이꽃 7 본문
실걸이꽃 7

실걸이꽃
실걸이꽃은 주로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전설에 의하면 한 어부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영영 돌어오지 않자 해안가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난 다음에 그 영혼이 환생하여 해안가에 자생한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꽃밭을 지나가면 낚시 바늘같은 가시가 옷에 걸리면 뿌리가 뽑힐지언정 가시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옷걸이꽃이라고도 한다.

전역과 등산
혜연이와 헤어진지 어느듯 50년이 지났다. 그녀는 항상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지금쯤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나 잘 살고 있을까 하고 궁금했다.
그후 나도 중위 때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키우고 군 생활도 할만큼 하고 더 이상 나의 군생활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전역했다.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궁금했지만 알아보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동해안 새해 해돋이 전경
난 비리와 탐욕이 가득찬 부조리한 군대에 진저리를 느끼고 마침내 24년 군생활을 끝내고 90년대 후반에 군에서 전역을 했다. 전역 후 남매를 출가시키고 그동안 스트레스로 무척 많이 망가진 건강을 위해서 새벽마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서초동 우면산에 등산을 했는데, 우면산에는 야간에도 등산로에 외등이 켜져 있어 겨울철에도 등산이 가능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산을 오른다. 아직 해뜨기 전이라 후라쉬를 켜고 산을 오른다. 우면산을 오르면 등산로 근방에는 여러 약수터가 있었다. 나는 약수터에 도착하면 베낭에 넣어온 네 개의 1.8리터 물통에 약수를 가득채우고, 또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를 떠서 벌컥 벌컥 마셨다. 그리고 주변 참나무에 배와 허리 등어리 어깨 등 몸을 이리저리 부딪히고 비비고 하면서 평균 500회 정도로 몸을 단련시켰다.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마다 우면산을 오르고 나중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찿아 우면산 곳곳을 오르내리곤 했다. 봄이면 목련, 진달래, 개나리 꽃이 사방에서 피고 숲에서는 꿩이 여기저기서 울고 여름이면 시원한 골짜기를 탐험하고 가을이면 밤도 주우며 가을 단풍도 즐겼다. 한겨울에는 눈밭을 헤치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길을 이리저리 달렸다. 등산 중에 사진도 여러 장 찍어 블로그에 올리며 산행의 느낌을 올렸다. 어두운 새벽 산 위에서 멀리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반문해 보기도 했다.
처음 우면산 계단 오르는데 500개나 되는 계단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숨이 가빠 열 걸음 오르다가 쉬고, 또 열 걸음 가다가 쉬면서 겨우 올랐다. 그만큼 체력이 떨어졌고 기력도 쇠하였다는 것이다.
군에 근무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비도덕과 비윤리, 음해, 진급 누락이 컸는데 그 중 진급 누락이 가장 컸다. 육사 출신이라고 모두가 장군이 되는 것도 한 기수에서 5~10% 정도로 보면 된다. 당시는 중령까지는 대부분 누구나 같이 진급하지만 대령 진급부터 갈라진다. 요즘은 소령부터 누락자가 발생한다고 하니 그만큼 육사 줏가가 곤두박질 친 것이다.
1차 진급자는 장군을 향해 1차 진급자끼리 경쟁할 수 있지만, 2차 이후 진급자는 장군 진급 선발에서 멀어지기에 적당한 시기에 스스로 군을 떠나야 한다. 후배가 직속 상관으로 오게 되면 자존심이 상해서 군을 떠나고, 일부는 전문직 군무원으로 군에 남을 수는 있다.
1차 진급자는 인맥이나 경제력, 서열과 평정을 잘 받을 수 있는 경쟁자 없는 수도권 부근 부대에 보직되어, 상급자는 물론 가족을 포함하여 명절, 생일, 길흉사 등 철저한 관리와 막대한 물질적인 아부를 잘하는 장교가 대부분 1차로 진급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물질에 약하기에 한번 맛을 보면 잊을 수가 없고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 받고도 진급 못시키면 투서가 들어가서 군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수저 출신이나 대기업 자녀, 정치권, 가진자와 인맥이 있는 장교는 몰라도, 그냥 눈치도 없고 아부도 모르는 명예롭고 성실하고 정직한 장교는 밤늦도록 열심히 근무하지만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장교는 보직 운동도 않고, 명령나는 대로 가고, 눈치도 없어 상급자에 대한 물직적인 아부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런 장교는 절대로 1차 진급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젊은 날에 품었던 청운의 꿈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육사 출신은 한마디로 1차 진급자로 계속 진급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방이나 오지로 보직 이동하거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선배 상관을 만나 곤욕을 치르거나, 사고치는 부하들이 많거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거나, 총기 오발 사상 사고나 총기 탈영 사고가 발생하거나, 월북 사고는 치명적이며, 주변의 기무, 헌병들에 의한 음해 등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무, 헌벙 등 기관원들은 지휘관에게 수시로 용돈을 바라는데 주지 않을 경우 지휘관 개인의 비리나 부대 지휘에 대한 문제점 등 자신의 입맛대로 관찰 보고서를 불리하게 작성하여 상부로 올리고, 사고를 예방한다면서 예하 부대 지휘관들을 못살게 구는 횡포가 심했다. 이런 현상은 후방 부대로 갈수록 심했다. 그래서 기관원과 많은 갈등을 겪는다. 또 부대 사고 발생시 조여오는 주변의 막대한 압박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로인해 지휘관은 지나친 음주로 간을 비롯하여 몸이 많이 망가지게 된다.
전역 후 우면산을 오른 지 몇 개월 지나자 나중에는 500계단을 한달음에 오를 수가 있었다. 건강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일을 하다가 한 선배의 소개로 중소 기업에 취직하여 직장도 다녔으나 결과가 저조하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전문가도 아닌 생소한 분야에서는 오래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나의 인맥과 직위를 이용할 뿐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자 가족도 알바를 나가는 등 삶은 팍팍했다. 나의 실수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풍족하지 못한 삶이 되자 갈등도 심화되어 갔다. 그래서 나는 친구나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친척이나 고향 친구, 육사 동기생들과는 일체 연락을 끊었다. 향우회, 학교 동창회, 육사 동기생 모임 등 일체의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고 모든 연락처도 없앴다. 차도 팔고 골프채는 물론 테니스채도 모두 버렸다. 오로지 줄곧 매일 자전거만 탔다.
난 혜연이가 생각날 때마다 이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듣는다. 늦은 밤 적막한 고요함이 넘치는 가운데 혼자서 옛 연인을 그리워하며 듣는 이 음악은 당신을 더욱 순화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