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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1257 : 로마 제국 962 ( 로마 제국과 기독교 10 ) 본문
로마의 역사 1257 : 로마 제국 962 ( 로마 제국과 기독교 10 )

로마 제국과 기독교 10
마르쿠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초상을 볼 때마다 품격있는 훌륭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약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에 비해 공화정의 창설자 유비우스 브루투스의 얼굴은 불굴의 의지를 느끼게 하고,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굴복시킨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명장 한니발을 이긴 인물답게 국난조차 자양분으로 삼아버릴 만큼 활력이 가득찬 생기발랄한 얼굴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얼굴은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기고, 정치를 하면 반드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고, 연설이나 저술처럼 말을 무기로 삼을 때에는 정적까지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설득력을 발휘하는 얼굴이다. 이런 사람을 이기려면 육체적으로 말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단행한 공화파 브루투스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카이사르의 웅대한 구상을 구체화한 제국의 초대 황제가 아우구스투스다. 고대의 세 미남 가운데 하나라는 이 남자의 얼굴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떨리게 하는 냉철함이 감돈다. 미남인 만큼그 냉철함이 더욱 인상적이다.
그 다음은 티베리우스 황제다. 그는 세간의 평판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귀족적 성품의 뛰어난 지도자였고, 다음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지방 출신다운 소박함과 안정감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다음은 트라야누스 황제와 하드리아누스 황제다. 오현제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의 얼굴은 그들이 통치한 시대의 로마 제국을 반영하여 자심감 넘치고, 게다가 성과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에게만 볼 수 있는 의기양양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이런 로마 지도자들의 얼굴에 비해 3세기 황제들은 어떠한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황제들의 얼굴은 고상하지만 나약해 보이고, 하층민으로 태어나 출세한 사람은 그저 사납고 우락부락할 뿐이다. 그리스의 조형미술이 이상적인 미를 추구한다면, 로마의 조형미술은 현실의 자료를 강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런 로마에서는 지도자의 초상도 그들이 통치한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있다.

서기 3세기 말의 로마 제국
기독교의 신은 인간에게 살아갈 길을 지시하는 신이다. 반면에 로마의 신들은 살아갈 길을 스스로 찿아내는 인간 옆에서 도와주는 존재다. 절대신과 수호신의 차이라 해도 좋다. 하지민 이 차이가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해 확신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전쟁에 이긴 장군을 기리는 개선식은 카피톨리노 언덕에 서 있는 최고신 유피테르의 신전에서 승리를 보고하고 그 승리를 베풀어준 신들에게 감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로마의 신들은 계속 이기고 번영하던 시대에는 참으로 적절한 종교였다.
그런데 3세기의 로마는 패배할 때가 많아졌고, 승리해도 적이 쳐들어온 뒤에야 반격하여 이기게 되었버렸다. 이렇게 되자 로마인들은 신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 신들은 로마를 버렸다고 절망하는 사람도 나오게 된다. 고대에는 신과 인간의 거리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가면 이런 시대에 기독교의 신은 어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모두 신의 뜻이다. 야만족의 살육도, 그들에게 가축처럼 끌려가는 것도, 전염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가난 때문에 겪는 고통도, 죽음까지도 모두 신이 바라신 일로 생각한다. 아니, 신이 인간에게 주는 시련이다.
따라서 고통은 인간을 정화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면 아우슈비츠가 되어버리지만, 여기서 논하고 있는 것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비참한 현실도 신이 내린 시련이고, 고통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게다가 죽은 뒤의 평안까지 보장해준다고 가르친다. 내세를 보고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리 평안을 보장헤도 그렇지 않다고 반박당할 여지가 없다. 기독교의 이런 교리는 인간에게 흠잡히지 않는 참으로 훌륭한 상품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가 그후에도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언제까지나 인간 세계에서 비참함과 절망감을 추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시말해 팍스 로마나가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고 있던 시대의 로마인에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필요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매혹되는 로마인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남이 믿는 신까지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참모습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진 로마인에게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 것은 로마의 신들이 설 자리를 잃고 지쳐서 인간을 지켜줄 힘을 잃어버렸다고 로마인들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기독교 신은 강하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과 신의 거리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고대에는 신이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제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황제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탄압했다. 그것은 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는 것은 곧 로마 제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독교도는 로마 제국을 타도할 의도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의도를 곧이 말한다면 제국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유대의 독립만을 원했던 유대교도가 가련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리고 계속 약해지고 피폐해져가고 있던 로마 제국에 대한 기독교의 로마 제국 탈취는 이민족의 침입과 더불어 착실히 진행되어 갔다.
카르타고 주교를 지낼 때 순교하여 성인이 된 키프리아누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친구 데메트리아누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소개한다.
<......중략...... 제국은 늙어가고 있네. 제국이 젊고 활력이 넘치던 시대와 같은 든든함을 이 늙어가는 제국에 아직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종말이 다가오면 무엇이든 약해지는 법이라네. 일몰이 다가오면 햇빛이 약해지고 아침이면 달빛도 약해지는 법이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일세. 이것이 신의 섭리일세,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은 죽을 운명일세. 성숙한 뒤에는 노화가, 늙은 뒤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네. 강력했던 국가도 약해지고, 거대했던 것도 약해지네, 약해지고 작아지다가 이윽고 사리지는 것일쎄.>
친구 데메트리아누스가 이 편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했는지 어떤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편지를 쓴 키프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관철하고 결국 순교한다. 노화하는 로마 제국이 온몸의 피를 기독교라는 새로운 피로 바꿔 넣으면 젊은 활력을 되찿을 수 있다고 믿었을까. 그 답은 그후의 로마 역사에서 살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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