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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45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45

 

 

새터에서 북한강 철교 가는 길 8

 

 

북한강 철교 밑 쉼터

 


북한강 철교 다리 밑 쉼터

 

북한강 철교 아래 쉼터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인증센타와 카페를 지나 철교 밑으로 가면 화장실도 있고 강변에 만들어진 비교적 조용한 쉼터이다. 쉼터에 도착하면 나무 가지를 꺽어 쉼터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쓸어 한 곳으로 모으고 주변을 청소한다. 갈 때마다 담배 꽁초를 비롯하여 각종 쓰레기가 사방에 버려져 있다. 사람들은 이제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거의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부모들이 버리니 아이들이 버리고 남이 버리니 너도 나도 버린다. 고속도로는 물론 국도변이나 지방도, 주차장, 공터에는 각종 쓰레기가 넘쳐난다. 홍수시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가 골짜기는 물론 지천이나 하천마다 무수히 방치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족들 중에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으니 그들도 이 땅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이 많다는 뜻이다. 자신만 알고 타인을 무시하는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인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유사시 국가가 국난을 당하면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변신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자신의 이익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기꺼이 국가를 배신할 수 있는 매국노나 앞잡이, 배신자가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쉼터에서 헬멧과 베낭을 벗고 간식을 꺼내 먹으며 시원한 커피도 마신다. 자전거도 간단히 청소하고 정비하기도 하고 땀이나  비에 젖은 옷도 말리기도 한다. 쉼터 위 철교 자전거 도로 옆에는 아담한 카페도 하나 있다. 북한강과 철교, 양수리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도 좋고 전망도 좋아 찿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지나가다가 들어가보고 싶은 카페였지만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 카페를 아는 사람은 가족이나 연인을 데리고 오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지난 며칠 사이에는 아침마다 이곳 두 쉼터에 자전거족들이 쉬고 있어 그냥 지나쳤다. 인증센타와 카페가 있는 곳의 쉼터는 젊은이들이 많고 이곳은 중장년들이 많이 쉬는 편이다. 이곳에서 쉬지 못하면 가다가 팔당대교 밑이나 미사대교 근방 쉼터에서 쉰다.

 

어느 휴일날 남여 젊은이 30여 명이 단체로 이곳에 몰려와서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일부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일부는 그냥 쉰다. 이런 단체 이동은 이동하다가 한 사람이라도 화장실이 급하면 전체가 쉬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음식도 개인의 기호에 관계없이 단체로 시켜 먹어야 하고 개인적인 활동은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게 문제일 것이다. 또 이런 단체가 무리를 지어 자전거 도로를 주행하면 앞뒤 개인간 간격이 조밀하여 다른 사람이 끼어들거나 추월하기도 힘들다. 무리로 이동하더라도 3~5명 단위로 적절히 간격을 두어 이동하면 어떨까. 

 

광기와 사치, 이기심이 넘쳐나고 메너와 배려가 싱실된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것은 예기치 않은 사고가 나기 쉽다. 마음의 상처를 달래며 참고 인내하며 양보하고 배려하며 조심하여 달리는 것이 내가 편하다. 남들이 한다고 나도 잘난척 하며 달리다보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자연의 정취와 풍경, 나무와 숲, 꽃들과 같이 호홉하며 대화하고 자신의 찌든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저 언덕 위에 카페가 있다. 일제 치하에서 이 철교가 건설되었다니 조선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했을지 짐작이 간다. 일본인들은 콘크리트를 칠 때 자갈과 모래를 모두 철저하게 물로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콘크리트를 쳤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건설한 터널이나 도로, 교량과 교각 등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견고하고 튼튼했던 것은 사실이다.

 

일제는 일찍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 신문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 후기에 여러 번의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마지막까지 외척 세력에 의해 형성된 노론 세력에 의한 세도정치에 몰두하여 결국 망국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이등박문도 서양에 유학을 하면서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의 발전상을 눈에 익히고 돌아와 나중에 일본 수상이 되어 대한제국 침탈에 주도적으로 앞장선 인물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영웅일지는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대한제국 멸망을 주도한 원흉이다. 결국 안중근 의사에 의해 할빈역두에서 총탄을 맞고 절명했지만.

 

일본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했다. 그들이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제로 전투기는 미국 전투기 성능보다 우수했고 미공군 전투기들이 일본의 제로 전투기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태였다. 전함끼리 야간 전투를 할 때도 미해군보다 우수한 포술과 어뢰 공격으로 미군을 괴롭혔다. 어뢰 성능이 우수하여 미군 어뢰보다 정확도나 성능이 우수했다, 항공모함도 숫자가 많았고 공격 전술도 우수했다.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이 일방적으로 당하여 패색이 짙었지만 항공모함 수리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하여 전장에 재투입하여 숫적인 열세를 극복해나갔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분기점인 미드위에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점차 전세는 미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일본은 해상 전력과 공군력에서 막데힌 손실을 초래하여 전투력이 점차 약화되자 카미가제 특공대를 투입하는 등 필리핀 해전에서 최후의 발악을 했지만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던 것이다. 일본군은 미군에 비해 전투력과 전술은 우수했지만 전략적인 면에서 미국의 거대한 잠재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패인이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독립투사가 목숨을 던지며 일제에 항거했지만,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우리의 보훈정책이 열악한 가운데 역대 정치권은 포로 환송 노력은 물론 실종 및 전사자 유골 찿기를 등한시해왔고, 탈출 국군 포로나 유족들에 대한 보훈 정도도 미약한 실정이다. 지금도 광복회와 친일파 간의 재산 환수 법정 다툼은 지속되고 있지만 대부분 친일파 쪽 승리로 끝나기 일쑤다. 그것은 해방 후 친일파를 제등용했던 자유당 정권의 실책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적 통치 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이 기존 세력이었던 친일파를 재등용한 덕분에 그들의 재산은 법적으로 합법화가 은밀히 추진되었고 지금의 재판에서 승리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친일파 후손들은 자본이 우선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자본을 가진 가진자, 즉 사회적 상충부를 형성하여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 않는가.

 

 

 

 

태풍의 영향으로 연일 흐린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수요일에는 모처럼 하루 종일 푹 쉬었다. 

 

요즘은 날씨가 더운 탓에 한낮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여명이 트기 전 마치터널을 지나면 마석 방향에서 동이 터오른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붉은 동쪽 하늘의 모습은 오랫만에 보는 장관이다. 마석을 경유 새터를 지나 금남리-조안면-북한강 철교-팔당-깔딱고개-왕숙천을 경유하는 코스로 남양주시를 한바퀴 돌고 사능역 자전거 점포에 도착하면 대략 9시 이전이 된다. 

 

 




아침 여명
 

 

 

점포 사장님이 점포 문을 열면 가게 펼치는 것도 도와주고 청소도 거든다. 가끔 아이스크림이나 막국수를 먹는 날에는 메밀전병을 사서 간식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다른 간식도 가끔 가져간다. 주인 아주머니가 답례를 한다. "사모님, 답례하시면 저의 기쁨이 반감됩니다" 며 답례를 하시지 말라고 했다. 지금 작은 아들이 군에 가 있는데 내가 군대 이야기를 자주하다보니 관심이 높아진 경우다.  

 

여름철 자전거 점포 매출은 대체적으로 적은 편이다. 더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님이 찿아왔을 때를 생각하여 문을 닫지 못하고 매일 가게문을 열어야 한다면서 무던히도 성실하게 일하시는 사장님 모습이 보기에 좋다. 성격도 나와 비슷하고 생각도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다.가끔 궁금한 점도 물어보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기술도 옆에서 간접적으로 눈에 익힌다. 손님이 없을 때는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로 대화하고 손님이 많을 때는 바쁜 상태라 그냥 말없이 돌아온다. 8월 1~3일 사이에는 휴가도 떠났다.

 

 

 

과일 간식

 

통상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하기 때문에 모닝빵에 참치와 양파를 넣어 통에 담고 과일 간식은 바나나, 토마토, 샬구, 복숭아를 썰어서 설탕을 넣고 얼음을 넣은 다음 통에 밀봉하여 베낭에 넣는다. 대구 절친이 보내준 토마토는 아직도 먹고 있는데 정성어린 선물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기타 과일은 과일 가게에서 조금씩 구입하여 간식으로 사용한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나에게는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