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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15

마음이 가는 곳에, 두바퀴가 머무는 곳에 15

 

 

경기남동부 자전거 주행 8차 - 5

 

 


 

 

 

8차 주행로 : 대성리역 - 신청평대교 - 설악 입구 고개 정상 - 다락재 고개 - 명월리 명달고개 - 352번 도로 - 소나기 마을 - 북한강변길 - 신청평대교 - 청평역 - 호평동 

 

 

3층 영상실에는 소나기 장면을 연출하여 다양한 음향과 영상들이 전시실 가득히 흐르면서 감동에 젖게 만든다. 천둥과 번개가 치며 소나기 내리는 장면, 개울 물 속에 물고기가 노니는 징검다리,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모습,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동심원을 그리는 물결, 비가 갠 뒤의 아름답게 펼쳐지는 초원과 산하 등등 소나기 속 장면을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잠시 소나기 소설로 들어가 소녀를 만나고 소년을 만나 같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소나기를 맞는 상상을 그리게 되었다. 

 

 

 


수숫단과 원두막

 

 

영상실을 나와 바깥 잔디밭과 수숫단, 원두막, 물이 흐르는 짐검다리, 물속 조약돌, 소년소녀 조각상을 둘러보았다. 소나기 단편 소설에 나오는 여러 장면을 사실처럼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모습을 눈여겨 보았는데, 내 생각에 과거 실제 농촌 현실과 소년.소녀의 조각상 인물에 대해서 몇 가지 나의 편협한 견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소나기 마을을 만들면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고 만들었겠지만 내가 본 모습은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부분을 제시헤본다. 

 

먼저, 잔디밭에 만들어 놓은 수숫단이 마치 구석기 시대 살던 사람들의 움집같다. 우리 농촌에서 수숫단에 저런 구멍을 만들지 않는다. 말리기 위해 밭에 그냥 묶어서 세워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굳이 저런 움막을 만들었을까. 밭에 저런 움막을 만들 이유가 없다. 농촌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었을 게다. 원두막과 움막에서 비를 피했다고 하는데 수숫단 속에 있다가 계속 비가 내리기 때문에 원두막으로 피한 게 아닐까. 수숫단 속에는 비가 스며들기 때문에 비가 계속 내리면 소용이 없다. 

 

 


소년과 소녀 조각상

 

다음은 소년.소녀 조각상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보면서 느낀 점은 얼굴이 비교적 큰 편이고 촌티와 도시티가 나지 않는다. 내성적인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당찬 소녀의 적극적인 도전 모습이 떠오르지가 않는 조각상이다.

 

내 생각에는 소녀의 얼굴은 하얗게 창백하고 몸은 가녀다란 모습의 연약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소년은 얼굴이 검고 촌티가 나는 수수한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조각상은 환상을 깨는 모습이라 좀 실망스럽다. 

 

소녀가 징검다리에 앉아서 건너갈 길을 막고 조약돌을 던진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투정의 간접적인 표현이 아닐까. 나는 소녀의 적극적인 접근 공세에 소년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들판을 달리고 들꽃을 꺽어 소녀에게 주고 그러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비를 피하기 위해 수숫단과 원두막으로 이동한다. 비가 내린 뒤 개울물이 불어 소년은 소녀를 업고 건너는 과정에서 옷에 꽃물이 들고 따스한 온기가 서로의 몸에 교감되면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의 문이 열리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둘 사이에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소녀가 비를 맞고 돌아가서 앓았다는 이야기는 몸이 약한 소녀였다는 점이다. 그녀가 갑자기 죽은 원인과 병명은 알 수 없으나 원래 몸이 약한데다 선천적인 질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녀가 죽으면서 윤초시 집안은 대가 끊어지고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 윤초시 집안이 마을을 지배하던 집안이었든 대지주였든 간에 몰락은 작가가 많은 작품에서 표현했던 주제였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영원한 승자가 없듯이 지배자는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는 암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연한 초목의 잎이 부드럽고 연한 것은 벌레들이 달려들기 쉽다. 그래서 금방 구멍이 나고 변질되어 떨어지거나 단풍이 들거나 썩게 된다. 사람이나 동식물도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는 얼굴이나 모습이 아름답고 꾸밈없이 때묻지 않고 청초하고 순수하다. 그런 얼굴과 모습이 치열한 경쟁의 삶을 통해 엄청난 격변을 겪으면서 부모의 얼굴처럼 찌들고 흉물스런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야생 동물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종복번식에 최선을 다하지만 사랑과 배신, 미움, 갈등을 겪으면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상처받고 병들거나 뼈가 뿌러지고 잇빨과 발톱이 빠지고 힘이 없어지면 무리에서 도태당한다. 식물도 종족번식을 위해 물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받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나면 잎은 단풍이 들어 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땅으로 떨어져 씨앗이 땅에서 잘 자라도록 거름이 된다. 

 

이처럼 모든 동식물이 종족번식을 위해 치열한 먹이 경쟁을 벌이다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상처받고 죽어가고 썩어가듯이, 자손과 종족번식의 임무를 마치고 나면 몰락과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라색 꽃들판

 

소나기 마을을 탐방하면서 막혀 있던 동심의 순수성이 내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녹쓴 자전거에 기름칠 하면 잘 굴러가듯이 소나기 마을은 삶에 찌들은 나의 가슴에 기름칠을 해주었다. 반세기가 넘는 과거로의 회기가 그맘큼 어려운 것이었다. 소나기에 대한 내 머릿속의 기억은 윤초시내 증손녀, 시골 소년, 소나기, 움막, 징검다리, 조약돌, 들꽃, 이루지 못한 순수한 사랑, 소녀의 죽음 등만 기억에 가물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소나기 마을을 방문하고 소나기에 대한 내용을 다시 살피면서 잘 몰랐던 내용을 다시 접하게 되었고 작품의 우수성에 감탄을 자아내게 되었다. 

 

난 황순원 작가의 작품과 삶을 살펴보면서 언론 인터뷰 한번 하지 않았던 그의 고매한 정신과 삶에 숙연해진다. 그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오로지 작품으로 자신을 대변했고 고지식하고 외골수의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생각된다. 그가 죽기 전에 작품 초안들은 모두 정리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뒷말을 남기지 않고 그의 작품이 흠이 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행각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평가하면서 멋대로 추측하여 많은 사족을 달긴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유명한 시 하나로 장관까지 꿰찬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가 장관을 하면서 문학.예술인을 위해 무슨 큰 사업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방송이나 언론, 권력에 얼굴을 내밀기를 좋아하는 인간도 많다. 제자들을 수족처럼 부리고 이용하면서 저녁이면 음주오락을 즐기고 성추행, 성폭행을 일삼던 많은 문학.예술인을 접하기도 했다. 지자체어서 초빙하여 문학 마을을 만들어 선전.이용하다가 나중에는 헌식짝버리듯 버림당한 작가도 있다.

 

 

 


한강 자전거길 장미

 

 

순수와 서정이 거의 사라진 지금의 현실, 자녀를 데리고 한번 쯤은 소나기 마을을 방문하여 잠시 둘러보며 순수와 서정의 감상에 젖어 잠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마음 속에 찌들은 삶의 찌거기를 씻어내고 다시 동심의 세계로 회귀하여 순수, 서정, 동심, 첯사랑이 무언지, 모두 이루고 성취하는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왜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깨닫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에서 만남과 삶이 행복과 즐거움을 주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만나서 후회하고 결혼하여 살면서 상대의 진정한 내면을 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반면 이별과 죽음은 이루지 못한 첯사랑, 사랑해서 안될 사람, 짧은 만남과 긴 이별, 연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 사고로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뒤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남자, 영혼 결혼식, 장애인을 선택하여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 헤어진 남편과 아내를 잊지 못해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 등등 과정만 순수하다면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깊게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 자신이 이루지 못한 첯사랑의 아련한 추억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것은 짧은 만남과 이별이라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소나기 마을 탐방을 마치고 아련한 추억에 빠져 북한강변 문호리로 행했다. 문호리에서 우회전하여 신청평대교 방향으로 2차선인 491번 도로를 타고 청평으로 향했다. 옛날에 차량으로 이 길을 다닐 때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 길을 가다보니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좀 어려운 길이다. 고개도 여럿 있어 힘들고 무엇보다도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아 위험한 길이다. 

 

491번 도로는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야한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차량에 신경을 쓰면서 한참을 달리다가 노견에 파진 조그만한 구덩이를 못보고 지나다가 앞타이어가 빠져 팅겨오르면서 비틀대다가 그만 넘어졌다. 마침 뒤따르는 차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일어나서 우선 자전거를 세우고 이리저리 살폈다. 별 이상은 없어 보인다. 무릎과 팔꿈치에 약간의 찰과상 정도라 다행이었다. 도로가에서 잠시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도로 상태를 저런 상태로 방치해놓은 지자체에 화가 났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피하지 못한 것을. 자신을 한탄하고 자전거를 다시 점검한 다음에 출발했다. 하루 지나면 아마 통증이 좀 올 것 같다. 통상 이런 경우 자전거족들은 '낙차'라고 하던데 그냥 '넘어졌다'고 하면 어떨까 생각된다. 

 

고개길도 여러개 넘어야 했고 차량이 많아 신경쓰면서 주행하다보니 몸이 지친다. 신청평대교까지 오늘따라 거리도 멀다. 주변에는 음식점, 캠핑장, 수상스키장, 카페, 모텔 등이 즐비하다. 북한강 남단의 이 도로는 비교적 한적한 도로라 남의 눈을 피해 오는 연인들이 많이 찿는 곳이라 한다. 

 

신청평대교를 지나 청평역에 도착, 전철을 타고 호평동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의암호 전경

 

 

4월 중순부터 새로운 길을 찿아 주행하기 시작한 경기 동남부 주행은 5월 초순 아카시아꽃이 피어날 때쯤 대략의 주행을 마쳤다. 그래서 경기 남동부와 강원 서부 일대 주행로 탐방은 이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동안 새로운 길을 찿아 다니면서 많은 고개길로 넘었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새로운 신천지도 많이 구경했다. 아직도 가보지 못했고 넘지 못한 고개길도 많아 보인다. 3주 가까이 다니면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무리한 탓인지 온몸과 다리가 뻐근하다. 이 피로가 가시려면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평생 가보지 못하고 구경하지 못할 뻔했던 좋은 구경을 하고 나니 감동이 밀려온다. 이제는 어떤 고개길도 두려움없이 넘을 수 있고 주파할 수 있다. 나의 이런 자전거 주행 코스는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중장년층이나 전기자전거로 주행이 가능한 나이드신 어르신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그러나 무리는 마시라. 남에게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새로운 길을 즐기면서 주행하고 보고 느낀 점을 소감으로 글을 올린 것뿐이다. 

 

 






의암호반 감자밭.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감자꽃이 피고 있다. 소나기 마을 방문을 끝으로 도전과 성취를 이루고 순수와 서정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십대의 소녀들처럼 산천의 초목들이 연한 잎을 피우며 삶을 시작하고 있다. 5월의 신록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으며 일년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나도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나에게 남겨지고 주어진 인생 시간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방문해주시고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