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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여름 7 : 삶의 목적과 가치

       

 

 

강남의 여름 7 : 삶의 목적과 가치

 

 

 

                                                                                   새벽 하늘 모습

 

 

 

영욕의 땅, 한반도......

우리 민족 5천년 역사 이래 요즘같은 이런 풍요는 한 번도 없었다. 일부 왕족과 지배층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백성들은 평생 노예처럼 살면서 수탈당하기 바빴고 가난과 굶주림을 면하지 못했으며 초목근피로 묵숨을 연명했던 5천 년 역사의 우리 민족이었다. 지배층과 가진자들은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민초들은 대를 이어 가난과 굶주림을 면치 못했다. 지배층은 국난을 당하면 도망치기에 바빴고 백성들은 약탈, 방화, 학살, 강간을 당하고 문화재가 도굴, 반출되었고 포로가 되어 중국으로 왜로 끌려갔다.

 

나당연합군에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을 포함한 왕족, 귀족, 기술자 등 수만 명이 끌려가고, 고구려가 망하고 보장왕을 포함한 20만 명 이상이 포로가 당나라로 끌려가 역사의 연기처럼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고려가 몽고 100년 지배 동안  공녀와 기술자, 포로로 끌려간 숫자는 알 수가 없다. 말년에는 고려 사회가 거의 몽고화되기 직전 명나라가 일어나매 몽고가 북원으로 쫓겨 물러가자 공민왕의 개혁으로 절대권력과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던 친몽파를 모조리 숙청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아마 거의 몽고 백성이 될 뻔했다.

 

이성계의 쿠테타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조가 들어서서 왕자의 난, 정종을 거쳐 태종의 왕권강화, 세종의 문화통치, 문종의 조졸, 세조의 권력찬탈과 사육신, 단종의 죽음, 예종의 조졸, 성종의 유교통치, 연산군의 왕권강화와 폭정, 중종반정과 왕권의 실추, 반정공신들의 권력장악, 인종의 조졸, 명종의 수렴청정과 허약한 왕권, 서자 선조의 등극 등 거의 200년 동안 외침이 없는 평화기를 누리면서 양반사대부의 지배하에 나라는 권력찬탈, 문약과 파벌 싸움, 계속된 처참한 사화와 숙청, 삼정의 문란 등으로 내부적으로 썩을 대로 썩어가고 있던 중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큰소리치던 조선군은 연전연패, 그것도 오합지졸, 졸장들로 싸워보지도 않고 물자와 무기를 버리고 함선을 침몰시키고 대부분 도망치기에 바빴다. 겨우 정발의 부산포 전투, 송상현의 동래성 전투,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가 유일하고 도성 및 한강 방어, 임진강 방어, 평양 방어전은 군대가 방어전을 벌였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조선군은 왜군이 온다는 풍문만 듣고도 도망치기에 바빴다.

 

선조는 의주까지 도망치고 요동 망명을 생각하고 있던 차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이순신의 승전보, 명나라 군의 지원이 가시화 되면서 기사회생하여 다시 명나라와 왜가 협상을 벌이는 등 지리한 7년이 지나 정유재란이 재발하여 왜군이 물러날 때까지 수십만 명의 조선인 살상과 학살을 포함하여 포로로 끌려간 정확한 숫자는 알 수도 없다.

 

선조가 갑자기 죽고 인목대비의 고심어린 결단으로 어렵사리 등극한 광해군과 대북파는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부담스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무리수를 두는 데 바로 '칠서의 난'을 조작하여 어린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사이 광해군은 요즘 드라마 <화정>에서 보듯이 후금과 명나라의 싸움에 조선군을 파견하여 후금에 항복하는 등 외나무 줄타기 외교전을 펼치면서 중립외교에 고심한다.

 

명분만 앞세운 서인들은 명나라에 대한 보은을 주장하지만 이미 명은 운을 다한 나라로 후금이 거세게 일어나는 나라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군주였다. 전란이 이 땅에 두 번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조선군을 파견하면서 강홍립에게 주문하듯이 명에 대한 명분도 세우고 유사시 후금에 대한 투항하여 조선군 전력을 살리라는 어명을 내리게 된다. 이런 행동에서 광해군의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드라마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편 조야에서는 폐모론이 대두하고 권력욕에 불타는 능양군의 주도로 폐륜군주를 몰아내기 위한 반정 모의가 진행되다가 드디어 인조반정이 성공하게 된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등극한 인조는 망해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버리지 못하고 명분론에 매달리는 한편 반정 주체세력에게 휘둘리면서 실질적인 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이괄의 난'이 발생하여 홍역을 치르고 후금의 요구에 불응하다가 정묘, 병자호란을 당하여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을 하고 청의 속국이 되었으며 소현, 봉림, 3학사를 포함하여 50만 명이 넘는 포로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인조를 뒤이은 효종의 북벌 구상도 당시 청은 '삼번의 난'을 진압할 정도로 군사력이나 국력이 조선이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또한 노론의 적극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뒤를 이은 숙종의 환국정치, 영조의 탕평책, 정조의 개혁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숙종이라는 나이어린 임금을 앉혀놓고 정순왕후가 섭정을 하는 동안 조선은 다시 구시대로 복귀하게 되었고 현종, 철종 시대를 통해 노론 실세들이 장기간 권력을 잡고 외척 등의 세도정치가 나라를 어지럽히더니 결국 마지막 무대는 흥선, 고종, 민비가 등장하여 조선을 말아먹고 말았다. 조선은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왕족, 친일파들이 합세하여 나라를 일제에 들어 바쳤으니 세계사에서도 보기드문 사례다.

 

일제 36년 동안 일제에 끌려가 죽은 조선인의 숫자는 알 수가 없다. 국내에서 학살, 고문사, 태형사, 총살을 포함하여 중국 등지에서 죽어간 독립군, 독립투사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일본 민족의 지배층은 한반도에서 쫓겨난 백제인의 후손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들은 정한론과 임나일본부설, 한반도 침략 야욕이 반복되는 것은 지난 과거의 원한에 사무친 한이 있기 때문이리라. 

 

일제는 물자와 자본을 갈취하고 문화재를 반출하며 민족정기를 없앤다 하여 유명산마다 쇠못을 박고 병참기지로 건설하기 위해 철도를 놓고 도로를 닦았다. 댐을 만들고 광산을 파고 공장을 지은 것이 모두 중국 침략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함이었다. 3 .1만세 사건은 민족자결주의라는 허황된 속임수에 빠져 맨손으로 일제에 저항한 운동이지만 무차별 진압으로 민초들의 애꿋은 목숨만 수도없이 잃게 만들었다.

 

일제가 망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던가? 민족주의자도 친일파로 변신했고 지식인들은 일제 관원으로 진출했고 젊은이들은 군인으로 지원했다. 그들은 조선 민중의 수탈, 자원 갈취, 독립군과 독립투사 체포와 사살, 학살에 앞장섰고 일본말을 사용하고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영원히 일본인이 되려고 발빠르게 변신했다. 친일파 지식인들은 연설, 논설, 강연 등을 통해서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제를 위해 앞장서서 전쟁터로, 광산으로, 공장으로, 위안부로 나가도록 독려했고 그것이 우리 민족이 갈 길이라고 선동했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일본군에 지원하고 정신대로 끌려가고 공장, 광산의 노동자로 끌려갔다. 조선 부녀자들은 젊은 꽃다운 나이에 일본놈의 성노리개가 되었고 씨받이가 되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우리 자력도 아닌 강대국 미국에 의해 해방은 되었지만, 미국의 일본 본토 지배 야욕에 대신하여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졌다. 미국에 의해 식탁통치안이 거론되다가 소련의 반대로 무산되자 남.북은 미.소에 의해 각각 별도로 정권을 세웠다. 해방 당시 조선은 사회주의 사상이 만연하여 여운형에 의한 자치정권이 지방 각지에 수립되어 있던차, 미군정은 임시정부, 민족주의자, 여운형의 자치정부 등을 인정하지 않고 친일파를 재등용하여 정권을 인수하였다. 수차례의 미.소공위가 결렬되고 38선이 봉쇄되자 남한 지역에서는 남로당에 의한 반란, 폭동이 사방에서 전개되었고 미군정은 공산당 토벌이라는 미명하에 무수한 양민들이 그 와중에 수도 없이 학살되었다. 이런 혼란 와중에 남.북에 미.소에 의해 각각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섰고 북의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친일파, 지주 등 민족반역자, 자본가들을 무차별적인 숙청으로 권력 안정화를 기하였으나 남한의 미군정은 선거를 실시하여 수립된 이승만은 행정.군사를 장악하기 위해서 친일파를 재등용하는 등 정권 안정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미명하에 6.25 남침전쟁을 일으키는데, 소련은 최신형 전차 등 무기를, 중공 모택동은 장개석의 국민당을 중원에서 몰아내고 통일이 되자 남아도는 골치아픈 전력인 조선인으로 구성된 홍군의 최정예부대인 10만 명이나 되는 팔로군을 김일성에게 보내주었고 이에 김일성은 빠른 시간내에 군대를 조직하고 6.25 남침전쟁을 도발했다.

 

1950년 6월 25일 38선 전역에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개시한 인민군은 최신예 전차를 앞세우고 축차적으로 투입된 국군을 무력화시키며 38선 전역을 돌파하여 남하였고 국군은 맨주먹으로 전차에 맞섰지만 허망하게 무너졌다. 국군 주력이 철수하기도 전에 한강대교가 폭파되자 국군 주력은 대부분 지리멸렬되어 무기와 장비를 버리고 부대가 흩어지면서 맨몸으로 한강을 건너 남으로 개별적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상황은 조선의 임진왜란 당시의  재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임금 선조가 도망치듯이 이승만 대통령은 한밤 중 특별열차를 타고 누구보다도 신속히 부산까지 도망쳤다가 다시 대전으로 올라와 충남지사 공관에서 대전방송국 관계자를 강제로 연행, 데려와서 라디오로 대국민 메세지를 전달했다. 적전차가 서울 시내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군이 성공적인 반격을 하고 있다면서 서울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모두가 거짓말이었음은 바로 인민군이 서울에 진주한 뒤에야 알았다. 그래서 수많은 인사와 지식인, 애국지사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있다가 북으로 끌려갔다.

 

적이 한강을 건너 다시 남침을 개시하기 직전 맥아더 장군이 노량진 언덕에서 한강 전선를 시찰한 후 동경으로 돌아가 급히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오산 지역 방어에 1차적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미군 방어선은 적전차에 유린되면서 힘없이 무너져 후퇴하였고 뒤이어 대전 방어전에 투입된 미 24사단도 적의 침투전술에 후방이 교란되면서 퇴로가 차단되자 전전선이 일시에 무너져 흩어지고 말았다. 이어 낙동강 전선까지 계속 밀린 유엔군과 국군은 다부동/왜관 전투, 포항 전투, 영천 전투, 고령 전투, 진주 전투 등 필사적인 노력으로 낙동강 방어전을 펼치면서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던 중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일거에 전세가 역전되면서 적전선이 무너지자 국군과 유엔군은 신속히 추격하여 38선을 돌파하고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하여 거의 통일을 눈앞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부전선의 유엔군 주력이 대부분 붕괴되면서 장진호까지 진출했던 미해병 제1사단도 많은 피해를 당하면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탈출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전개하여 흥남까지 겨우 철수하였다. 미군은 흥남에서 10만이 넘는 민간인을 배에 태우고 해상으로 철수하였다. 서울이 다시 중공군에게 점령되는 등 휴전선 일대에서 밀고 밀리는 3년간의 지리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휴전이 성립되었고 전국토는 초토화, 수많은 장병과 유엔군, 양민들이 희생되었다.

 

다시 휴전선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전쟁이 종식된 것이 아니라 휴전이 성립되어 남북이 서로 가슴에 한을 품고 총칼을 겨누며 전후복구에 매진하였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정권 안정화와 전후복구에 매진하였으나 점차 장기 영구집권을 시도하였다. 이에 3.15 부정선거 등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인 데모가 일어났고 4.19 학생혁명이 일어나 데모대가 경무대로 몰려가는 등 세가 기울자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다. 혁명 주체 세력인 학생들이 정치 권력에 개입하여 정권을 뒤흔들었고 남북통일을 외치며 '북으로 가자!'고 선동하는 등 남한 사회는 극도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 평화공세를 펼치며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흡수통일 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망국의 분위기마져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정희에 의한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강력한 군사정권이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사회정화를 시도하면서 경제발전을 내걸고 전국민의 단결을 호소했다. 그래서 우리는 10여 년 사이에 5천 년 이래 기적같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약 당시 군사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강력한 군사정권하에서 경제발전을 통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지 못했다면, 어쩌면 극도의 정치.사회적인 혼란을 겪다가 지금도 동남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극빈국으로 전락하여 국민들은 굶주림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젊은이들은 중국, 일본, 미국 등지로 새로운 세상을 찿아 떠났을 지 모른다. 아니면 극심한 정치.사회적인 혼란을 겪다가 이미 북한에 흡수통일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우리는 월남 패망에 앞서 현해탄에는 보트피플이 넘쳐났을 것이고 가진자와 권력층은 해외로 도망치기 바빴을 것이다. 월남이 겪었던 그런 불행을 우리가 먼저 겪어야 했을 것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운이 좋았던가 아니면 역사의 흐름이었던 것일까?

 

친일파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고 유령처럼 따라다니던 한 지도자에 의해서 혁명이 일어났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그에게 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풍요가 우리가 잘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배들이 피땀으로 기적적으로 이룬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시 동네 친구들과 산에 나무하려 가면 배가 고파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고 칡뿌리를 캐어 먹던 어린 시절을 지금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시장에는 먹거리가 넘치고 가는 곳마다 먹자골목이 사방에 만들어졌다. 얼마나 못 먹었으면 이토록 먹는데 신경을 쓰는 민족일 것일까. 배가 터저도 좋으니 흰쌀밥과 고기국을 한 번 실컨 먹어봤으면 하는 배고픈 유전자가 우리 부모들 몸에서 이미 형성되어 내려왔고 우리들 몸에도 전수되어 베어 있다.  

 

이제 먹고 살만하니 먹방이 유행하고 요리 프로가 유행이다. 이제는 남자가 요리를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을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이제는 직위와 금력을 이용하여 젊은 남자를 성추행, 성폭행하는 시대다. 대부분 국민들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고 배설하는 쾌감을 느끼며 비만을 걱정하고 얼굴 성형을 걱정하고 다이어트와 몸매를 걱정하는 시대, 오래 살기 위해서 보도 듣도 못하던 각종 불로 건강식품이 수만 가지가 나타나고, 각종 건강, 장수 프로가 유행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정착된 자본주의 세상, 재물이 인간에 앞서고, 인륜과 도덕, 효, 애국심에도 앞서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도박에 빠지고 불륜에 빠지고 이혼은 스팩이요 결혼은 연습에 불과한 세상, 돈이 권력을 만들고 귀족을 만들고 사람도 죽이고 살리는 절대신이 된지 오래다. 

 

 

 

 

 

삶의 목적과 가치

우리들의 삶의 목적과 가치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은 입신출세를 하고 양귀비 같은 부자집 절세 미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많은 자손을 낳고 부귀영화를 자손대대로 누리는 것이 삶의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라가 있어야 민족이 있고 사회가 있고 가정이 있을 것인데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위태롭기만 하다. 해방 후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는데 과정도 절차도 없이 받아들이다보니 정치는 후진성에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고 조선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대기업 위주위 경제개발로 사회적 기업이 거의 전무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세습하는 사회다. 정치 권력은 경제 권력에 예속되어 가진자들 편에서 부를 독식하고 있으며 부가 권력을 만들고 권력이 부를 쌓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심한 양극화는 자본 귀족과 자본 천민을 양산하고 깊은 갈등은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당은 우두머리당이요 정책이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정당 우두머리와 지역을 위한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에는 사사건건 정쟁을 일삼고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개혁은 용두사미요 낙하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도없이 사람이 바뀌어 내려간다. 군을 비롯한 국가 예산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 군사무기 개발과 도입에 방산비리와 부패로 썩어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공직사회도 보조금은 먼저보는 놈이 임자다. 국가보조금을 자신들의 용돈 정도로 생각하는 공직사회, 중앙과 지방이 가리지 않고 국가 예산을 곳감 빼먹듯이 빼먹고 있다. 국가 예산 유용에는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으며 사회는 가정과 사회가 가치관이 상실되어 충성심, 명예심, 애국심, 도덕성, 윤리의식, 양심을 저버린지 오래다. 

 

역사를 보면 수많은 위대한 인물도 모두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름만 남긴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이룬 위대한 인류 사회의 공헌에 감사한다. 좁게는 가정과 사회, 한 나라, 한 민족을 위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넓게는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삶의 혜택을 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많다. 우리의 삶의 목적과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이름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국가와 사회, 가정은 잊은지 오래고 오로지 돈을 위해서 평생 목숨을 걸고 살며 배부른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배설의 쾌감을 즐기며 흐뭇한 표정으로 잇빨 수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간 도살장 돼지처럼 소리없이 사라질 것인가?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상실하고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아프리카 열대 초원의 동물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먹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가난과 배고픔은 머리를 맑게 하지만 재물에 찌들은 배부른 인간의 정신 세계는 탁하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출세와 재물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좀 더 좋은 것, 좀 더 맛있는 것, 좀 더 비싼 것, 좀더 넓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오늘도 야생의 맹수처럼 살아가는 축생들이 어디 한 둘인가? 혀끝을 지나가는 단맛은 순간에 불과하다. 위와 내장 속에서는 맛있는 것이든 아니든 모두가 섞이고 부서지고 분해되어 각기의 영양분이 몸 전체의 세포로 전달된다. 인간도 어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배 속에는 인분과 분뇨가 가득하고 혀를 통한 말을 포함하여 구멍마다 나오는 분비물은 더러운 성분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예쁜척 고고한척 해봐야 사실 껍질을 벗겨놓고 보면 오십보 백보 차이다. 시간과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부자, 혈통, 지위, 권세가 우리들의 삶의 목표라면 너무나 허망한 것들이 아닌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충신이나 역적이나 이름 남기기는 마찬가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가는냐가 중요하다. 성경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쉽게 자라지만 이 세상 풍진세파를 견디내기 힘들다. 그러나 산 정상 근방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은 어렵게 뿌리를 내리고 빗물을 머금고 거친 풍진세파를 이겨내며 고고하게 자란 바위 위의 소나무처럼 그 모습이 옥토의 소나무와 너무나 다른 것처럼 바로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잘난 나 자신을 뽐내고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하고 남이 가지면 나도 가지려는 타인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적응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만의 청빈한 삶을 살아간다면 어쩌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 될 것이다. 욕심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고 자만은 추락에 앞서 찿아오는 법이다.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를 위해 평생을 봉사하며 살아가는 사람, 불우 이웃, 노약자, 청소년 가장, 극빈 가정, 불치병에 걸린 사람 등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사람, 국가 예산을 아끼며 진정한 목민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청빈하고 가난한 공무원, 음지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져가는 이 사회를 지탱시켜주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은 역사서에는 이름이 남을 수도 없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묻혀......

알렉산드 대왕의 위대한 정복과 제국은 흔적도 없다. 세계 역사에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가장 넓은 몽골 대제국을 세운 징키스칸의 무덤은 그 흔적도 찿을 수도 없고 그 후손들은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몽골 고원에서 세계 빈국으로 목숨을 겨우 연명하고 있다. 한니발의 빛나는 승리는 로마 역사에 기록으로 몇 줄만 남아 있지만 카르타고 제국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카르타고 한니발을 제압한 자마전투의 승자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민생구제를 위한 투쟁을 벌이다가 죽임을 당한 그라쿠스 형제, 로마 군제 개혁으로 로마군을 다시 일으켜세우고 수많은 전투에서 패배를 몰랐던 위대한 군사적인 천재 마리우스, 마리우스를 제압하고 로마에 반기를 든 소아시아 폰토스 왕국의 미트라다테스 왕을 제압하고 로마 공화정을 반석위에 올려 놓은 군사.정치의 천재 술라, 지중해 해적을 최단 기간내에 소탕하고 소아시아를 정복하였으며 카이사르와 패권을 다투다 목숨을 잃은 폼페이우스, 로마 최고의 갑부이며 3두 정치의 한 사람으로 소아시아 원정에서 패전하여 쇳물을 뒤집어 쓰고 비참하게 전사한 크라수스, 현재 유럽 대부분 지역인 갈리아 정복을 성취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하여 폼메이우스와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품에 안은 로마 역사의 위대한 독재자 카이사르 등도 역사책에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 그흔적은 찿기 힘들다.

 

길바닥에 널부러진 길고양이 시체를 보면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 길바닥 개미처럼 언제 밟혀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도 도로마다 각종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각종 재난으로 목숨을 잃는 것은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동물 모두가 마찬가지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듯이 힘이 없는 자는 반드시 강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지금의 인간 세상에서 힘은 완력이 아니라 재물이 바로 힘이다.

 

숨막히는 닭장에서 사육되어 도축된 닭을 우리는 먹고 있다. 소, 오리, 돼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분노를 우리가 먹고 그 분노가 그대로 우리 몸속에 저장된다. 가난한 자는 평생 노예처럼 살아야 하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만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재물은 인간의 삶을 결정했고 그 재물을 바탕으로 권력을 쟁취했다. 그리고 권력을 이용하여 더 많은 재물을 모았다. 그래서 갖지 못한자들의 분노는 새벽 길거리 쉼터에 널부러진 소주병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박살나서 깨진 소주병은 분노를 참지 못하여 내던진 병이다. 서민들의 삶은 분노로 찌들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도 모두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허상을 보고 사는 인생, 깊은 산속에 혼자 사는 사람이 무슨 꿈이 있을 것이며 분노가 있을 것인가? 인간 세상에서 떨어져 탐욕을 벗어나야 된다. 타인지향적인 삶을 청산하고 자신만의 진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을 무서워 하고 내세를 기대하지 말자. 스스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그 날이 오면 훌훌털고 도시를 떠나야 한다. 어차피 인생이란 역사의 수레바퀴에 묻혀 돌아가다 떨어지는 흙부스러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