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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강남의 여름 9 : 이 군난(軍亂)을 극복하려면......

 

 

 

강남의 여름 9 : 이 군난(軍亂)을 극복하려면......

 

 

                                                                                   밝아오는 아침

 

지난 6월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에 이어 다시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으로 군대가 장병관리에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각종 뉴스, 언론의 사설이나 칼럼마다 군을 질타하면서 전근대적인 악습이 존재하고 군간부들의 무책임과 무능력, 관리.감독 시스템 미흡, 사건 축소.은폐, 보고 부실, 관심 및 문제사병 선정 및 관리와 형식적인 상담.관리의 문제점, 하급지휘자 능력 부실, 병사들은 변하였으나 아직 변하지 못하는 군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군을 난도질 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엄청난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는 군이 어떻게 적과 싸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고 국민들의 멸시를 받고 있던 군의 사기는 낭떨어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현역들은 군복을 입고 있는 자체가 부끄럽고 군을 빨리 떠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는 물론 앞으로 군에 자식을 보내야 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임 국방장관은 물론 현직 국방장관, 관련 지휘계통에 있는 장관급 장교들까지 좌불안석이다. 그 중에서 육군참모총장이 자의반 타의반 사표를 제출했지만 여론은 그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질타하자, 3군사령관은 물론 6군단장까지 거취에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연이어 다른 여러부대에서도 봇물처럼 병영내 악습에 대한 문제가 제보되어 여론의 힘을 빌어 까발려지고 있다. 

 

군을 매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라 돌아가는 꼴이 가관이다. 60만 대군 중 대대급 의무대에서 일어난 폭행사건으로 병사가 사망하였고 그 가족들이 문제를 제기하여 언론에 공개된 사건이다. 입이 좀 돌아간다는 사람마다 군 대부분이 이런 식이라며 군 사건을 비난만 하고 문제점만 들먹이지 군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는를 스스로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 40~60대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에 대한 추억이 별로 달갑지 않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내에서는 구타와 체벌이 부대마다 존재하였고 대부분 간부와 상급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행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구타에 대한 금지 지시가 강력하게 내려와 간부들에 의해 저질러지던 대부분의 구타는 사라졌으나 반면에 병사들 사이에서는 은밀하게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폭력을 미화한 풍조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몰라도 학교폭력, 사회폭력이 미화되어 조폭 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졌던 것이 사실이다. 조폭이 영웅시되던 시절이 지나자 그것이 그대로 학교로 전이되었고 군대로 전이되어 음성적인 폭력이 취약지역 병사들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군 자체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이 자라면서 충과 효는 물론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서 대부분은 잘 교육되며 성장하였으나 일부는 경제적인 격심한 양극화, 수많은 결손가정, 늘어나는 이혼, 경제적 파탄, 취업과 결혼의 어려움 등 제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정신적 장애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가진자에 대한 불만, 자신보다 학력이 고학력자에 대한 열등의식, 지역적인 차별의식, 자신이 받았던 대로 후임에게 전가하려는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인성 등 정신적으로 파괴되고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차장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불법 페기물을 몰래 내다 버리고, 다른 차가 비켜가기 힘든 골목길에 자신의 차를 버젓이 세우고 볼일보는 젊은이, 학교폭력조직에 가담하여 약자를 괴롭힌 경험, 가출 청소년들이 갖가지 못된 범죄를 저지르며 혼음과 노숙으로 밑바닥 생활을 경함한 젊은이, 최근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처럼 청소년들의 범죄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국으로 사회가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일부 젊은이들이 징병제에 의해 억지로 군에 입대하고 신병을 거치고 나서 후임병이 들어오면 계급적인 우월감을 앞세워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자행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약, 도박, 혼음, 동성연애, 유흥가 알바, 조직폭력 등 사회에서 각종 유흥가 서비스 알바에 종사하면서 잘못된 사고와 습관이 몸에 베인 탓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이혼하고 경제적인 압박을 받으며 다른 젊은이처럼 정상적인 가정과 학교, 그리고 각종 사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학도 가지 못한 젊은이들이 유일하게 사회적 불평등과 불만,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을 표출할 곳이 바로 군이며 부자집, 고학력 후임병에 대한 무차별식 분노의 폭발이기도 할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망가진 젊은이들을 군대가 수용하면서 각급 지휘관들이 겪는 고충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군을 그렇게 함부로 매도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즘 사건에 대한 방송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군을 매도하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군생활을 사건의 주모자처럼 불성실하게 한 것은 물론 후임병에 대한 학대에 쾌감을 느끼면서 자행했던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군이 올바른 사고와 태도의 민주시민을 만드는 용광로이며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곳인데 그런 군생활을 대부분 불성실하게 하면서 시간만 떼우고 자기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별 보람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변화와 흐름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군의 책임도 크지만 정신과 육체가 망가진 젊은이를 군에 던져 놓고 사건이 발생하면 군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는 책임전가나 마찬가지다. 죽은 병사들은 억울할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지 못한 군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이 문제는 정부와 국회, 사회단체, 군 등 군.관.민 모두가 합심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한 이러한 사고는 또다시 재발될 것이다. 과연 내 자식은 어떻게 키웠고 충과 효를 알고 이웃과 사회를 배려하고 개인보다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바른 심성과 태도를 가진 반듯한 젊은이로 만들었는지를 부모들은 스스로 곰곰히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래도 성실하게 상급자에 복종하며 후임병들을 친동생처럼 사랑하며 지내고 있는데 일부 문제사병들이 저지르는 일을 군전체가 그런 것으로 치부하고 비난을 화살을 쏟고 있는 것은 일종의 군에 대한 증오심의 발로이다. 칼럼이나 사설에 군대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은 그렇게 군을 홤부로 매도하지 않는데 매도하는 인간 대부분은 방위, 면제, 상근 등으로 군대생활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부류들이거나 군 생활을 대략대략하면서 병원이나 의무실, 법무관실, 군종병, 연예사병 등 한직에서 시간감 떼우며 성실하게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방송예능프로 '진짜 사나이'처럼 군대가 그렇게만  훈훈하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카메라 앞에선 연예인들이 벌이는 연극같은 군생활을 전부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프로는 좋은 점만 보여주는 연극같은 '가짜 사나이'들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진짜 사나이' 프로가 군생활을 호도하고 문제점을 감추는 식의 프로라며 그 프로를 없애라고까지 한다. 실제 군에서는 호주인 샘 헤밍턴같은 병사는 훈련소에서부터 왕따내지 이미 자살을 했거나 탈영을 했을 것이고, 핸리같은 병사는 이미 왕따는 물론 부대적응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조기전역을 시키거나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대 대대급 의무대에서 폭행사건이 나서 병사가 죽고 말았다. 때린 상급자는 정신이상자로 분류된 병사다. 집중관리가 필요했던 병사였으나 대대나 의무대에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처럼 전적으로 의무대라는 취약지역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대장, 군의관을 포함한 간부들이 처벌받아야 한다. 이런 취약지역에서는 한 두 사람의 이상성격의 고참 병사에 의해 이런 악습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제대로 관리.감독만 했어도 사망에 이르는 불행은 막을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예비역 입장에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훈련강도가 높고 간부들의 사고가 바로 서 있다면 이러한 사고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하급지휘관의 관심과 의지, 부하를 친동생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절대 중요하다. 중대급만 해도 200여 명 가까운 병사들이 모여 있는 관계로 별의별 병사가 다 있다. 마음 편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부대생활은 엄정한 군기가 바로서 있어야 하고 지휘관들의 지속적인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공명정대한 신상필벌과 엄정한 군기가 필요하다. 훈련, 경계, 작업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어야 하는 관계로 고참병에 의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인 관찰과 감독이 중요하다. 내무반, 화장실, 식당, 초소, 창고 등 취약지역에 대한 지휘관의 불시 순찰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시켜야 하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항상 사고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또 부대가 한가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지속적인 훈련과 운동, 휴가, 포상을 강도높게 추진해야 함은 물론 각종 안전사고 예방, 문제사병 집중관리, 취약지역 불시 순찰, 병사 신체검사 및 건강진단 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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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디에 있으며 개선안은 무엇인가?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문제는 GP,GOP 등 분.소초를 포함하여 소파견대, 공병, 통신, 보급, 병참, 병기, 탄약, 화학, 의무 등 취약 병과, 군 상급지휘관들의 병사관리에 대한 무감각한 사고와 의식 수준, 군 초급지휘자 및 지휘관의 낮은 자질, 군사법기관인 군 법무관과 헌병 등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며 사건의 축소.은폐.감추기에 급급한 군사법제도,  기무부대 미활용 등이 문제의 핵심이다.

 

일부는 옵부즈맨 제도, 휴대폰 사용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심야에 간부들이 보이지 않는 곳인 내무반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취약지역에서 병사들끼리 벌어지는 문제를 간부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순찰이 미흡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옛날에는 소대장이 내무반에 칸을 막고 지냈지만 지금은 소대장 등 간부가 내무반에 병사들과 같이 기거하면서 지낼 수도 없다. 병사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소대장이 소대장 운영비로 회식을 시켜주어도 병사들이 소대장은 내무반에서 나가라고 한다. 또 성추행은 이미 90년데 중반부터 군내에 시작되었다. 

 

GP, GOP를 포함하여 격오지 통신중계소, 공사파견대, 의무대, 통신대, 보급소, 탄약/ 정비지원시설 등 소파견지는 선임병의 천국이다, 재수없게 가정과 학교에서 자라면서 정상적인 사고를 갖지 못한 성격이 괴팍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성격을 가진 선임병을 만나면 그 파견대는 지옥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소파견지를 최대한 줄이고 파견지에는 반드시 간부가 같이 상주하도록 해야 하며 자리를 비우지 않토록 해야 한다. 파견지에서는 대민사고, 유류 등 각종 군수물자 절취 판매, 민간인에 대한 강간/강도/성추행, 강.절도 등의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옛날에는 공병은 시멘트 등 각종 공사물자 절취판매, 통신은 격오지 중계소 관리문제와 밧테리/통신선 등 각종 통신물자 절취판매, 그리고 통신선 작업시 등 대민사고 빈발, 보급소는 물자 절취판매, 탄약/정비지원시설은 엔진 등 정비물자 절취판매 등이 상존하는 등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였고 이로인한 각종 사고가 날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래서 소파견지를 최대한 축소하고 간부가 상주하며 각종 비리와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

 

한국군의 의무병은 군에서 가장 편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통상 부대에서 의무병 선발은 경력있는 병사가 별로 없기에 외모가 말쑥하거나 학력이 높거나 간호경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선발하는 데 부모들이 일부러 군에 입대하기 전에 자식을 간호학원을 다니게 하여 의무병으로 선발토록 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군의관은 불법으로 야간에 민간병원에 알바도 나가고 의무실은 의무하사관에게 맡기고 병사관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군의관은 보급되는 의약품 절취 및 외부로 반출은 물론 환자 부모로부터 뇌물을 받고 환자 병사를 병원에서 군생활 대부분 기간을 편히지내다가 제대하게 하거나 바로 의가사제대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야전병원, 수도병원 등에 입원한 환자는 속은 멀쩡한 사이비 환자가 많고. 이들은 대부분 군의관을 통해서 뇌물을 먹이거나 정치권이나 권력층의 자녀, 의대 선배 자녀들은 군의관이 진단만 내리면 디스크 등 잘 확인이 안되는 병명으로 별 환자도 아니면서 병실에 입실하여 편하게 잘 놀다가 군생활을 모두 마치고 나가는 병사도 많다고 한다.그래서 전군의 의무병과와 병원 입원 환자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과 개혁이 필요하다. 

 

법무관들은 헌병과 공조하여 사고를 축소.은폐하는 경향이 많은데 통상 지휘관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법무관은 사고 병사 부모로부터 뇌물을 받고 형량을 줄이던가 집행유예, 불기소 등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법무관들은 군에서 가장 한직이다. 군역을 필하기 위해서 법무관을 지원하였지만 그 중에는 미래를 보장받은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 변호사를 개업해도 수입이 불투명한 부류들이다. 지휘관의 의도에 따라 법을 적용하고 헌병과 공조하여 헌병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 청렴한 장교들에게 헌병의 동향보고서만 믿고 사실여부를 가리지도 않은채 갖가지 불리한 혐의를 씌워 상급부대로부터 징계.처벌을 주고 군복을 벗게 만든다. 법무관 및 헌병들은 뇌물과 비리에 물들어져 있고 사고를 낸 병사의 부모들은 그들의 먹이에 불과하다. 사고를 쳐도 군에서 크게 형량이 부과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러한 비리사슬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살인죄 적용도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몀 코걸이식의 법적용이다. 그만큼 군법무관들의 사고와 태도가 정의롭지 못하고 비리와 부패에 물들어 찌들어진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 사고의 원흉은 지휘관, 군법무관, 헌병들의 합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세부분이 한국군 발전에 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과 사정이 필요하다. 

 

또 헌병과 기무는 말단부대까지 요원이 배치되어 있으며 부대 근무를 열심히 하는 지휘관을 좋아하지 않고 수시로 용돈을 주며 격려해주는 지휘관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병부대보다 공병, 통신, 병참, 보급, 병기, 탄약 등 특수병과 부대를 선호하고 전방보다 후방부대를 선호한다. 그래서 후방부대의 큰 비리사건에는 대부분 헌병과 기무가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청렴하게 근무하는 후방부대 지휘관 대부분은 담당 헌병수사관.기무부대원으로 인해 지휘관들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부산 군수사 등 후방부대 헌병, 기무는 수시로 용돈을 요구하고, 만약 용돈을 주지 않을 경우에는 지휘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부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부정적인 사실을 수집하여 소문만 듣고도 유추판단하여 육군본부 헌병감실이나 기무사령부로 동향보고를 올린다. 그러면 헌병감실이나 기무사령부는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채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해당 병과 감실로 통보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면 해당 병과 감실에서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고 전병과로 전파된다. 또 전화로 병과 망신시키지 말라며 질책하고 차후 보직은 불리하게 처리되고 조금만한 사고가 나면 바로 징계로 처리한다. 그래서 군 법무관실과 헌병병과, 기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과 사정이 필요하다.

 

다음은 기무부대 활용방안이다. 헌병은 사고조사업무를 맡고 기무부대는 사고예방 정보확보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기무부대는 군사보안을 주 업무로 하고 있으나 부대내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까지 항상 동향을 감지하고 파악하고 있는 전군에 거미줄같은 조직망을 갖춘 조직이다. 그들은 항상 부대 유무선을 감청하고 도청하며 부대 돌아가는 동향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말단의 파견지까지 동향파악이 가능한 조직이다. 이런 조직을 지휘관을 감시하고 부대비리나 캐며 권력에 기웃거리고 뇌물이나 받으며 향응 접대에 빠져 국고를 축내는 집단으로 만들지 말고 그들을 활용하여 사고예방을 위한 정보 및 첩보수집 임무를 추가로 부여하여 말단부대까지 문제사병을 집중관리하고 추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음은 초급간부들의 병사관리 능력이 저조한 수준이다. 분.소대장 등 초급간부들의 자질이 병사들 수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학력은 물론 경력도 미흡하고 나이도 비슷하다. 그래서 병사들을 지도하고 이끌 능력이 미숙하다. 초급간부의 선발에 군이 애를 먹고 있는 것은 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지원자가 줄었고 부족한 초급간부를 보충하기 위해서 상병 계급의 병사를 설득하여 일정 보수 목돈을 주고 임용시키는 방법을 구사하였다. 또 장교의 경우는 제3사관학교와 학군장교 등은 단기교육을 받고 임관되는데 학군장교는 대학을 졸업한 학력으로 그래도 병사들과 학력수준이라도 맞출 수 있으나 제3사관학교 같은 경우 옛날에는 고등학교 졸업자로 모집하였고 지금은 전문대 이상으로 좀 달라졌지만 학력이 병사들 수준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무식한 소대장이 무식한 병사를 마음대로 구타를 해도 수수방관했고 그것이 병영생활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를 포함 모든 초급간부는 임관 전이나 후 이등병부터 하사관까지 일정기간(1~2년) 견습생활을 실무부대에서 병사들과 똑같이 경험하도록 하고 이들로 하여금 옵브즈맨 하부 역활도 담당하게 하는 방법이다.물론 별도의 민간기구로 옵브즈맨 시스템을 만들고 기무부대와 연계토록 하여 각 부대 옵브즈맨 예하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일반 병사들이 전혀 알 수 없도록 배치함은 물론 병사들 상호간에도 누가 초급간부 출신인지를 감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일정기간 견습을 마치고 실무부대에 배치된다면 경력면에서는 누구보다도 우수하고 학력면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도 있고 병사들을 잘 돌보고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군 지휘관들이다. 한국군의 진급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휘관들은 대부분 전투부대육성보다 보직과 진급에만 목을 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보직이 진급이 되고 진급이 되려면 좋은 보직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한국군에서는 야전근무보다 국방부, 육본 등 상급부대나 수도권, 그리고 인사권을 쥔 보직이 가장 유리하다. 아무리 똑똑한 장교라도 만약 제 때에 진급이 되지 못하면 바로 바보가 되고 무능력자가 되는 것이 한국군의 현실이다. 특히 육사 출신은 올라갈수록 동기생들 간에 경쟁이 벌어지는 데 진급 1차 탈락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대부분 강한부대를 만들기보다 진급을 위해 안전사고방지에 전전긍긍하는 소심없는 졸장들만 양성하고 있다. 진급에 목을 메지만 가진 것이 없어 뇌물을 상급자에게 제공할 능력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대 공금을 횡령하거나 부하들에게 뒤로 용돈을 요구하고 생일 등 때가 되어도 찿아오지 않는 부하는 평정을 좋지 않게 쓴다. 사업계획이나 예산도 없는 공사를 벌이고 사무실을 수리하게 하고 노래방을 설치하게 하는 등 구시대 사고를 버리지 못한 지휘관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대대장 이상 지휘관은 마누라까지 가세하여 공관을 대대적으로 고치는 것은 물론 부하 부인들을 불러 모아놓고 고스톱을 치거나 외식은 물론 미장원, 사우나, 마사지, 쇼핑, 카페 등에 대리고 다니면서 돈을 내게 하고 뇌물을 챙긴다. 그런 부인들은 평정을 잘 주도록 남편에게 이야기 하고 그런 자리를 피하는 아첨과 뇌물에 무감각한 부인은 왕따시킴은 물론 남편도 형편없는 평정을 주게 된다. 그래서 진급 요령을 모르고 오로지 군 임무수행과 부대관리에만 정신을 쏟는 못난 남편을 만나 우리집 마누라는 가는 곳마다 왕따를 당하였고 설움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진급에 목을 멘 지휘관들에 의해 형량을 줄이거나 불기소 처리하는 경향도 많은데 바로 축소.은폐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지휘관은 재임간 자신의 부대에서 사고가 나면 장차 진급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을 선택하여 장성까지 진급한 장군들이 병사 한 사람 사고 때문에 줄줄이 군복을 벗는 다는 것도 군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지를 군 스스로 자각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장군이라는 그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이며 값어치가 그만큼 비천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진급에 목을 메고 지금까지 형식적인 부대관리로 보신근무를 해 온 결과일 뿐이다. 정치권에 빌붙어 진급을 요청하고 뇌물을 먹이고 부하로부터 챙기고 때가 되면 상급자 집을 방문하고 강한부대와 병사관리보다 무엇에 더 많은 정신을 쏟아 왔는지 스스로 살펴볼 일이다. 깡통 계급장에 연연하여 치졸한 장군 이력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중간에 전역해도 남부럽지 않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30~40대에 진급에 누락되어 사회로 나오면 가장 바보가 군출신이다. 한창 자라는 자녀들이 있고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나이에 사회로 나오면 변변한 직장도 구하기 힘든 현실이기에 더더욱 뇌물과 진급에 목을 메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역 장교들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보장이 어느정도는 필요하다. 육참총장처럼 전직국방장관, 현국방장관을 포함하여 3군사령관, 6군단, 육본인사참모부장, 국방부 인사담당관 등 모두 과감하게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고 군복을 벗을 수 있는 장군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군의 진급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최소한 장군급이면 군사학이나 전문분야에 대한 박사학위 정도의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영관, 위관 장교들도 급에 따라 군사학이나 전문분야 학사, 석사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규정화 해야 할 것이다.

 

문제사병 분류와 근무를 별도로 세분화하여 집중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문제사병을 어떻게 분류하고 사고 우려가 있는 병사를 일반부대에 배치함은 지휘자는 물론 다른 병사에게도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부족한 병사를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배치함은 이러한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방안을 연구하여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병사는 별도부대(헌병부대)에서 관리하면서 교화시켜 제대시키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사병 선별은 세심한 자료검토와 관찰, 면담을 통해서 정상적인 병사가 문제사병으로 뷴류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편부, 편모 슬하에서 자란 병사가 반드시 문제사병이 아니듯이 충분한 면담을 통해서 부대배치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병무청에서는 이러한 정신과 육체적으로 군생활에 부적합한 병사를 어떻게 분류하고 군생활을 안전하게 할 수 있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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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군대시절을 돌아본다.

별로 잘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70~90년대 군생활을 되돌아본다.

 

70년대 중반 소대장 시절에는 내무반에서 병사들과 같이 지냈고 그 당시 소대장실이 내무반 귀퉁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탈영 등 문제사병은 당시 소, 돼지 등 사육을 담당하여 별도로 관리되고 있었다. 그래도 상급자들에 의한 구타는 빈발하였으나 병사 상호간에는 구타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군대에 들어온 병사도 많았고 일자 무식자도 소대에 4~5명 이상 되었으며 탈영 등 전과자가 많았고 당시는 무장탈영하여 자살하는 병사도 많았던 시절로 사고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전방 중대장 시절에는 백두산부대에서 근무했는데 독립중대였다, 중대장 보직기간동안 임무를 수행하되 단 한 병의 병사도 다치거나 죽는 일이 없도록 목표를 두고 관심을 쏟았고 내무반, 취사장, 화장실, 창고, 탄약고 등을 수시로 순찰하였고 각종 훈련을 다른 부대가 추종할 수 없도록 철저하고 강하게 훈련했다. 각종 임무가 많아 바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병사를 관리했다. 그래서 대대장이 우리 중대에 문제사병 및 부사관을 대부분 보내면서 "중대장이 잘 관리하리라 믿네!" 이 말 한마디에 아무 말 못하고 "알겠습니닷!" 하면서 대대장님이 믿어주니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겠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탈영 전과자, 음주주폭 하사, 불우사병, 타부대 사고 후 전입자 등 4~5명이 점차로 배치되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두 명이 나를 무척 괴롭혔다. 먼저 음주주폭 하사는 밤만되면 부대울타리를 몰래 빠져나가 술이 만취되어 들어오면 내무반을 다니면서 잠자는 병사들 머리통을 발로 차고 다니는 해괴한 하사가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런 행위가 자주 계속되자 참다 못한 병장들이 들고 있어나 술취한 하사를 집단구타했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벼르고 있던 차에 결국 초저녁부터 술에 취한 하사가 내게 발견되었고 난 그 하사를 아침까지 나무에 묶어 두었다. 아침에 출근하니 그대로 묶어져 있었고 인사계(행정부사관)를 시켜 중대장실로 불렀다. 그러자 그 하사는 중대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끓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했다면서 빌었다. 그래서 개과천성이라도 할 것 같아 잘 타일러 훈방했고, 부대 개구멍 울타리를 보강하고 보초도 철저하게 수하하도록 했고 무단 이탈을 방지하였다. 그 후로는 몰래 술을 퍼마시고 들어오면 조용해졌다. 그러나 7개월 후 야외훈련을 나갔는데 어디서 마시고 왔는지 만취되어 병장들과 싸우고 있어 포박하여 밤새도록 나무에 묶어두었다. 상습적이고 습관적인 주폭 하사 한 명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훈계하고 격려하고 잘 타이르며 중대장 끝날 때까지 관리하면서 대대장을 원망한 적은 없다. 당시만해도 간부들이 중대 주부식이 나오면 쌀, 고기 등  주요 부식은 일부분씩 수시로 집으로 가져갈 때였다. 유류, 자재 등 각종 물자도 틈만 나면 팔아먹는 등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던 시절이었다. 병사들은 그런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중대장인 나를 진심으로 믿었고 나 나름대로 병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마지막에 지휘검열에 대비하여 전방 작전지역에 훈련을 나가다가 고개길에서 나의 잘못으로 교통사고가 나서 몇 명이 다쳤으나 다행히 모두 완쾌되어 무사히 전역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 우리 중대원 병사들은 참으로 착했고 성실했다. 

 

다음은 탈영전과자였다. 이 병사는 평소에 조용히 잘 근무했는데, 친척이 상급부대 영관급 장교였다. 그 영관 장교가 사단에 검열나와서 우리 중대를 찿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 병사를 잘 돌봐 달라면서 부탁했다. 그러나 그 병사가 마지막 전역을 앞두고 큰 사고를 쳤다. 저녁에 울타리(당시 부대 울타리는 철조망과 나무로 대충 얽어놓은 엉성한 상태였다)를 빠져나가 마을 구멍가게를 찿아가서 술을 먹다가 젊은 부인이 혼자 장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창문을 타고 넘어가서 여자를 겁탈하려 한 사건이었다. 창문에 발을 먼저 내밀고 들어가려다가 여자가 술병으로 마구 때렸고 그래도 들어가서 겁탈하려 하자 여자가 소리치며 심하게 반항하자 자신의 웃옷을 벗어 놓은채 도망처 온 사건이었다. 이튼날 남편이 그 병사 군복 웃옷을 들고 부대를 찿아와서 중대장을 만나겠다고 정문에서 난리를 쳤다. 행보관으로 하여금 남편을 진정을 시키면서 헌병대에 연락도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내일이면 전역인데 사건이 문제화되면 그 병사는 다시 군 형무소에 갈 판이었다. 그래서 행보관에게 부모에게 연락하여 사실을 전하고 급히 부대를 방문토록했다. 결국은 부모가 나타나서 남편을 만나 원만하게 잘 해결하였고 그 병사는 무사히 전역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병사는 지금쯤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어 섰을 것이며 죽지 않았다면 이 땅에 아직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대대참모는 다목리에서 근무했고 상이한 성격의 두 지휘관을 만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부하를 믿고 맡기는 사람과 부하를 믿지 못하여 모든 것을 일일이 꼼꼼하게 따지고 원칙만 고집하는 두 사람의 성격은 참모 입장에서 꼼꼼한 사람을 모시기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군대는 너무 대충대충해도 안 되지만 너무 꼼꼼해도 안 된다. 부하를 노예부리듯이 박대하고 무시하는 지휘관을 많이 보았다. 공문 한 건 결재 들어가면 관련근거를 일일이 따지고 그 서류를 모두 챙겨서 보여주어야 하고 상급부대 지시사상에 대한 인접부대 동향까지도 파악하여 보고해야 하는 지휘관은 참모들을 훈련시킨다는 면도 있지만 나무나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다고 월등하게 결과가 좋게 나오는게 아니라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그 꼼꼼하던 대대장은 내가 떠난 온 후에 그해 겨울 대대 의무실에서 환자들이 술을 먹고 잠이 든 사이 불이나서 보초서던 술취한 환자 병사 한 명이 타 죽었고 그로인해 대대장은 보직해임되어 한직을 떠돌다가 전역하였으나 얼마안가서 홧병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대대장 시절은 철원에서 근무했는데, 마찬가지로 한 명의 병사도 죽는 일이 없도록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했다. 당시 대대의 임무는 비무장지대내 박살선 공사(GP-GP를 잇는 철책공사)를 실시했는데, 수색대대, 전초대대, 보병 2개대대, 공병중대 등 대규모 병력과 장비가 들어가서 지뢰제거 작업과 동시에 도로를 내고 철책과 교량설치공사를 수행했다. 사방에 지뢰가 발견되고 수거하고 철책을 운반하고 형틀을 짜고 기둥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붓고 양생하고 물골에는 물막이 공사를 하고 형틀을 설치하고 철근을 조립하고 콘크리트를 붓고 양생하여 교량을 설치하는 등 그 어려운 임무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골에 포크레인으로 물을 퍼내면 자연산 장어와 붕어, 가물치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것으로 공사단장인 부사단장, 인접대대, 중대장 등 간부들에게 상납 및 분배하고 몇 마리는 집에서 양념을 발라 구웠는데 과연 그 맛이 달랐다.

또 우리대대는 각종 임무수행별 분.소.중대장으로 하여금 우수병사를 선발하여 대대적인 포상조치를 하였으며 신병 100일, 집안 길흉사 등에는 별도로 포상조치했다. 물론 박살선 공사에 투입되었던 중대는 교대로 전중대원이 포상휴가를 보냈다. 또 분기별 태권도를 포함한 체육대회를 실시하였는데 당시 상급부대와 사단에서 전 병사 태권도 유단자화를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가, 포상, 진급 등 모든 부분에 계급별 태권도 수준을 정해서 달성토록 했으며 달성하지 못하는 병사는 진급, 휴가, 포상 등 모든 혜택에서 누락시켰으나 신병 100일, 집안 길흉사는 제외시켰다. 1년에 4번 분기별로 개최한 체육대회는 축구, 배구, 족구, 태권도 종목을 시행하였고 그 중 태권도 점수를 가장 많게 배정했다. 태권도는 전중대원이 지정된 형과 자유형 2가지를 실시하고 부대대장과 주임원사, 부사관들이 심판관이 되어 심사했다. 몰론 자유대련과 격파도 포함했다. 그랬더니 전 대대원이 태권도에 비상이 걸려 각 중대별로 막사 뒤에 야간에 외등을 설치해 놓고 밤늦도록 중대원이 태권도에 몰입하여 기합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곤 했다. 그래서 년말에 군사령부와 사단에서 심사관이 나와서 태권도 유단자 심사를 했는데, 우리대대는 년초에 유단자가 거의 제로 수준이던 대대원이 약 반수가 유단자가 되었다. 사단 인사참모가 깜짝 놀라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고 사실을 이야기해줬더니 사단장에게 보고했던 모양이다. 사단장은 결재시에 아무말 없었으나 눈초리가 조금 온화해진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체육대화가 끝나면 우승기를 수여하고 다음 분기에 또 우승기를 놓고 대회를 개최하였다. 각 종목별 상품도 준비하여 시상해주고 휴가증도 여러 명에게 수여했다. 종료 후 연병장에 중대별로 탁자를 펼쳐놓고 막걸리와 안주를 준비하여 전 병사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고생할 때는 하도라도 운동경기를 통해 단결력을 도모하고 포상휴가에 회식까지 시켜주면 병사들은 사기가 치솟는다.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하루 하루 임무수행에 바쁜 나날을 보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고생하면 포상이 뒤따랐기 때문에 불평이 없었고 우수병사에 선발되기 위해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말단 분.소대장의 지시를 잘 따랐다.

가까운 철원여고 교장의 요청으로 며칠간 용접병을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보답으로 그해 년말에는 교장 이하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여고생과 위문품을 가득 싣고 나타나 대대식당에서 대대전장병을 위문했다. 여고생들의 발랄한 에어로빅 댄스와 무용, 노래 등 흥겨운 시간동안 전 대대원은 고성과 함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여고생들의 위문품 속에는 각종 생활용품과 편지가 가득하였고 각 중대별로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아마 나중에 편지를 주고 받다가 결혼한 병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대대내에서 역대로 사고가 많아 나던 중대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창고 주변에서 중대원 전체를 모아놓고 고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그 후로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또 난 거의 매일 취사장을 불시 방문하여 부식고 저장상태, 조리대 청결상태, 조리병 건강상태, 반찬을 시식해보고 취사병을 격려했고 중대 내무반은 물론 화장실, 샤워실, 관물대, 비품보관소,행정반을 수시로 둘러보면서 병사들 복지에 최우선을 두었다. 장교숙소, 창고, 화장실, 울타리, 위병소, 수송부, 연료고, 탄약고, 막사옥상을 하루 한 번 이상 둘러보고 취약지역은 즉시 보강지시를 내렸다. 병사들이 제대 신고하는 어느날 한 병사가 하고싶은 말을 하라고 했더니 "추운 겨울날 위병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데 대대장님께서 퇴근하시면서 콧물을 흘리는 저를 보시고 장갑낀 손으로 저의 콧물을 훔쳐주셨던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했다. 그 병사는 무척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또 대대막사 옥상에서 병사들이 술을 먹는다는 제보를 받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철초망을 설치하여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또 부대울타리 철망을 조사하니 술병이 드나든 곳이 반질반질하여 철조망을 치고 보강했다. 또 술은 드나드는 차량에 몰래 숨겨 들어온다고 해서 정문에서 차량검문을 철저하게 하도록 했고 인접 대대장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대대 차량이 과속하면 반드시 알려주라고 하여 수시로 정보를 듣고 과속하는 대대차량이 발각되면 수송관은 물론 운전병은 종일 군장을 메고 얼차려를 시켰다.

 

간부들의 출.퇴근은 물론 근무자세도 수시 점검하였고 문제가 있는 간부는 한 두 번 경고 후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징계를 내렸다. 후배 소대장이 전입와서 얼마지나지 않아 가까운 읍내에서 심야에 음주만취 상태에서 근방 주차장에 주차된 택시를 절취하여 북상 도주하다가 민통선 검문소에서 검문에 불응하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달리다가 급커브에서 논바닥에 쳐박혀 빠지는 사고가 났다.  아침에 출근하니 대대에 경찰, 택시주인이 달려왔고 사단 상황실에도 보고되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사단 참모장에게 보고하고 대대장이 처리할 것이니 사단장에게 보고되지 않도록 상황보고에는 빼기로 했다. 사고 소대장 아버지가 예비역 육군대령이라 급히 연락을 했더니 아버지가 금방 달려왔다. 이것은 정상적으로 처리하면 영창이 아니라 군법회의감이지만 소대장 아버지가 해결하도록 위임했다. 그 소대장은 지금 아직도 군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다른 후배 중위인 행정장교가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출근하지 않고 장교숙소에도 들어오지 않은채 행방불명되었다. 특히 전방 지역에서는 행방불명이 되면 가장 걱정되는 것이 월북사고다. 대대 전 간부를 풀어 주변 일대 여인숙, 여관, 술집 등을 뒤지게 하고 부대 주변 일대를 수색하였으나 찿을 수가 없었다. 정오가 다 되자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보고를 주저하고 있는데, 마침 행정장교가 나타났다고 주임원사가 보고했다. 알아본즉 술에 취해 가까운 지역에 있는 허럼한 술집 안방에서 잠을 늦도록 잤다고 했다. 난 정신상태가 문제라 생각하고 엄청나게 혼을 내고 훈계를 하고 앞으로 잘 하도록 격려하였으나 근본적으로 정신상태나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장교였다. 8~10년 정도 후배인 그들이 자질이 의심되었고 실제 당시 응시인원이 미달되던 시절이 있었다. 후배들이 무능력과 한심한 근무태도로 안타까운 심정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금 군의 중추적인 영관, 장군 계급이 이 당시 동기생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가장 무능한 기수들이 군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된다. 그래서 난 후배장교의 평정을 "군을 위해서 빨리 조기전역시켜야 할 장교로 판단됨"이라고 썼다. 사단 참모장이 전화가 와서 너무 나쁘게 쓴 게 아니냐고 물었으나 내가 그동안의 사실을 전부 설명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7년 후 그 후배장교를 강원도 현리에서 만났는데 소령 계급장을 달고 나타났다.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아 전직부대에 알아보니 근무태도가 엉망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입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신고도 받지 않고 나한테 한시간 이상 다시 훈계를 받고 대대 작전장교로 배치되었으나 나중에 대대장이 손사래를 칠 정도로 무능한 장교임이 드러났다.  

결국 대대장 2년 동안 한 명의 병사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문제를 유발한 병사는 없었으며 병사 대부분을 무사히 제대시켰고 대대원의 4배수(약 1,200명) 정도가 포상휴가 조치를 받았고 대대는 박살선 공사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였으며 눈이 펑펑 내리는 88년초 어느 겨울날 이취임식을 통해 대대장을 무사히 마치고 정들었던 대대를 떠나 국방대학원에 입교했다.

 

이후는 계룡대 육본, 강원 현리 0군단, 창녕 00군단, 포천 0군단, 장성 학교기관 등 기타 지역 부대에서 군무했는데, 사정상 생략한다.

​* 혹시 이 글을 읽어시다가 당시 죽곡리 백두산부대(21사단) 공병 3중대(78~79년), 다목리 15사단 공병대대 작전과(79년), 철원 청성부대(6사단) 공병대대(86~87년)에서 저와 같이 근무하신 분은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아래 덧글로 혹시 연락주시면 소주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