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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813 : 조선의 역사 355 (제23대 순조실록 2) 본문
한국의 역사 813 : 조선의 역사 355 (제23대 순조실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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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대 순조실록 ( 1790~1834년, 재위 : 1800년 7월~1834년 11월, 34년 4개월)
1. 순조의 등극과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계속)
1804년 순조가 열다섯이 되던 해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정조의 유탁을 맏은 영안부원군 김조순 밀문에 의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김조순은 본래 정조편에 서 있던 시파계 일문이었으나, 규장각대교 당시 탕평을 건의하는 등 당색을 드러내지 않는 처신으로 벽파 세상이 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순왕후는 근 5년 동안의 수렴청정을 거두고 물러앉은 뒤 1년 만에 죽었는데, 벽파의 기둥이었던 정순왕후가 죽자 벽파는 다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동안 실권을 쥐고 있던 김관주는 정조의 뜻을 배신한 죄와 왕비의 삼간택 방해를 방조한 죄목으로 귀양가다가 병사하고, 정순왕후의 오라버니인 김귀주는 이미 죽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조를 해치려 한 죄목으로 역적의 율로 다스려졌다.
이후로 국왕의 장인인 국구가 된 김조순은 나이 어린 왕을 곁에서 모시면서 세도정치의 첯 장을 열게 된다. 후대 사가들은 김조순이 그런 대로 청류임을 표방하여 어떤 종류의 벼슬도 사양하며 오로지 국왕의 보필에 전념을 다했다고도 하지만 벽파가 물러난 조정의 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김이익, 김이도, 김달순, 김명순 등 안동 김씨 일문이었다.
이들이 조정의 요직을 모두 차지해버리니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견제 세력이 없는 정권은 부패하게 마련이다. 안동 김씨 일문이 요직에 앉아 한 가문의 영달을 위해 갖가지 전횡과 뇌물 수수를 일삼으니 공평한 인사의 기본인 과거제도가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신분질서의 급속한 와해와 함께 왕조 사회의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정치 기강이 문란해지고 탐관오리 등이 횡횅하고 농민층에 대한 수탈이 극심해지자 농민층의 항거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도정권의 성립 초기부터 시작된 농민들의 민란이 전국 각지에서 5차례에 걸쳐 크게 일어났으며, 마침내 1811년 순조 11년 '홍경래의 난'으로 발전하였다.
홍경래의 난
서북인 차별 대우 철폐와 세도정권의 가렴주구 혁파, 정도령의 출현 등을 기치로 내세운 이 반란은 물락 양반과 유랑 지식인, 서민 지주층의 재력과 사상(私商)이 결합되어 나타난 대규모 반란으로 단순한 농민 반란이 아니라, 체제 변혁까지 도모하는 정치적 반란이기도 했다. 광산 노동자, 빈농, 유민들을 봉기군의 중심 부대로 삼고서 홍경래 스스로 '평서대원수'라 칭하고 각지에 격문을 띄워 출병했다. 그리하여 거병한 지 열흘 만에 관군의 별다른 저항 없이 가산, 정주 등 청천강 이북 10여 개 지역을 점령햇다. 그러나 곧 관군의 추격을 받은 봉기군은 그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어 정주성으로 후퇴해 들어간다. 정주성으로 퇴각한 농민군은 보굽로가 끊긴 채 무려 4개월 동안 관군과 대치하다가 1821년 4월 마침내 관군에 의헤 제압되고 말았다.
이씨 왕조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새로운 정치체제를 기치로 내걸었던 이 난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은 자못 큰 것이었다. 홍경래의 난은 농민층의 자각을 가져왔고 조선 후기 사회의 붕괴를 가속화시킨 사건이었다.
조선 후기 민란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민란과 역모사건이 끓이지 않았으며, 1821년 순조 21년에는 서부지방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10만여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목숨을 잃었다. 또한 순조의 34년 제위기간 중 19년에 걸쳐 수재가 일어나는 등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았다. 순조는 집권 초기에는 정순왕후를 둘러싼 경주 김씨의 일문 아래 있었다. 순조 역시 세도정권의 정황을 모를 리 없었기에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아서 풍양 조씨 일문을 중용하였고, 1827년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함으로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권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외척 세력인 풍양 조씨 일문의 세도정권을 만들어냈을 뿐, 군형과 견제가 이루어지는 정계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처럼 세도정권은 사회문제는 도외시하고 일문의 영달과 영예에만 관심을 쏟게 만들어던 것이다.
한편 학문을 좋아한 순조는 20권 20책에 달하는 개인 문집인 <순재고>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학문의 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여 <양현전심록>, <대학유의>, <정조어전홍재전서>, <서운관지>, <동문휘고> 등을 간행하게 하였다.
순조는 34년 간의 치적을 남기고 1834년 11월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는 순원왕후 김씨에게서 1남 4녀를 두었으나 효명세자가 22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손자인 환으로 하여금 왕통을 잇게 한다. 그의 능호는 인릉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다.
2. 순조의 가족들
순조는 순원왕후 김씨 와ㅣ에 숙의 박씨가 있을 뿐이다. 순원왕후 김씨가 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를 비롯하여 1남 4녀를 낳고, 숙의 박씨가 1녀를 낳았다.
가족 관계
- 부 :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
- 모 : 효의선황후 김씨
- 사친 : 현목수비 박씨
- 왕비 : 순원숙황후 김씨(純元王后 金氏)
- 아들 : 문조 익황제(文祖 翼皇帝)
- 손자 : 헌종 성황제(憲宗 成皇帝)
- 양손자 : 고종 태황제(高宗 太皇帝)
- 장녀 : 명온공주(明溫公主, 1810.10.13 ~ 1821.6.13, 동녕위(東寧尉) 김현근(金賢根)에게 하가)
- 차녀 :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0.26 ~ 1832.5.12,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에게 하가)
- 아들 : 대군(1820.2.23 ~ 1820.5.26)
- 삼녀 :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6.10 ~ ?,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에게 하가)
- 양자 : 철종 장황제(哲宗 章皇帝)
- 아들 : 문조 익황제(文祖 翼皇帝)
- 후궁: 숙의 박씨(淑儀 朴氏)
- 딸 : 영온옹주(永溫翁主, 1817.10.11 ~ 1829.4.8)
순원왕후 김씨(1789~1857년)
안동 김씨 세도정권의 창조인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달이다. 1800년 정조 24년 초간택, 재간택을 거쳐 삼간택을 앞두었을 때 갑자기 정조가 죽자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외척 김관주와 권유 등의 방해로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마침내 1802년 순조 2년 10월 왕비로 책봉된다.
순원왕후 김씨는 아버지 김조순과 오라비 김좌근으로 이어지는 안동 김씨 일문의 집권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한때 세자비의 외척인 풍양 조시 일문에게 정권의 주도권을 내주기도 하지만 헌종 대에 이르러 다시 회복하였으나 헌종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자 자손이 없는 왕통을 누가 이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때 순원왕후 김씨는 조대비 일문이 미쳐 손을 쓰기 전에 재빨리 원상에 권돈인을 지명하고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강화도령 원범(철종)을 지목하여 왕위를 잇게하였다. 또한 자신의 외가인 김문근의 딸을 왕비에 책봉함으로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권이 절정기를 맞게 한다.
순조와의 사이에 1남 4녀를 두었으며 1857년 창덕궁에서 죽었다. 능호는 인릉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다.
효명세자(1809~1830년)
순조의 순원왕후 사이에서 났으며 이름은 영, 자는 덕인, 호는 경헌이다. 1821년 순조 12년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녕부사 조만영의 딸을 맞아들여 가례를 올렸다.
1827년 부왕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이때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구현에 노력하였으나 대리청정 4년 만인 22세에 죽는다. 이때 그의 외척인 조씨 일파가 대거 등용되어 안동 김씨 일파와 정치적 세력 투쟁을 벌임으로서 정국이 혼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이들 헌종이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뒤 익종에 추존되었으며 1899년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능호는 수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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