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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658 : 조선의 역사 200 (선조실록 65)

두바퀴인생 2012. 7. 26. 00:52

 

 

 

 

한국의 역사 658 : 조선의 역사 200 (선조실록 65)

 

 

 

                                              

                                                                                           임진왜란 경과                                                                                                                    

                                                                                                                                                                                   

 

제14대 선조실록(1552~1608년, 재위: 1567년 7월~1608년 2월, 40년 7개월)            

 

 

 

 

 

 

 

 

 

 

임진왜란 전투목록

 

아래 임진왜란 전투 목록임진왜란 중 있었던 전투 목록이다. 시간 순으로 작성되었으며, 모두 음력으로 날짜순대로 표시했다. 주요 전투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592년

  • 다대포 전투 : 4월 13일 ~ 4월 15일
  • 부산진 전투 : 4월 14일
  • 동래성 전투 : 4월 15일
  • 경상도 및 충청도 함락 : 4월 17일~4월 28일
  • 상주 전투 : 4월 25일
  • 충주 탄금대 전투 : 4월 28일
  • 한강 전투 : 5월 2일
  • 옥포 해전 : 5월 7일
  • 합포 해전 : 5월 7일
  • 적진포 해전 : 5월 8일
  • 해유령 전투 : 5월 16일
  • 임진강 전투 : 5월 18일
  • 기강 전투 : 5월 18일
  • 사천 해전 : 5월 29일
  • 당포 해전 : 6월 2일
  • 당항포 해전 : 6월 5일
  • 용인 전투 : 6월 5일
  • 무계 전투 : 6월 6일
  • 율포 해전 : 6월 6일
  • 정암진 전투 : 6월 8일
  • 여주 전투 : 6월 10일
  • 제1차 평양 전투 : 6월 15일
  • 웅치 전투 : 7월 7일
  • 이치 전투 : 7월 8일
  • 한산도 대첩 : 7월 8일
  • 제1차 금산 전투 : 7월 9일
  • 안골포 해전 : 7월 10일
  • 우척현 전투 : 7월 10일
  • 제2차 평양 전투 : 7월 17일
  • 영천성 전투 : 7월 24일~7월 27일
  • 지례 전투 : 7월 29일
  • 제3차 평양 전투 : 8월 1일
  • 청주 전투 : 8월 1일
  • 제1차 경주 전투: 8월 2일
  • 제2차 금산 전투 : 8월 18일
  • 영원산성 전투 : 8월 25일
  • 장림포 해전 : 8월 29일
  • 화준구미 해전 : 9월 1일
  • 다대포 해전 : 9월 1일
  • 서평도 해전 : 9월 1일
  • 절영도 해전 : 9월 1일
  • 초량목 해전 : 9월 1일
  • 부산포 해전 : 9월 1일
  • 연안 전투 : 9월 2일
  • 제2차 경주 전투 : 9월 8일
  • 북관대첩 : 1592년 9월 16일~1593년 1월 28일
  • 창원 전투 : 9월 27일
  • 제1차 진주성 전투 : 10월 10일
  • 독성산성 전투 : 12월 11일

 

1593년

  • 제4차 평양 전투 : 1월 9일
  • 성주 전투 : 1월 15일
  • 벽제관 전투 : 1월 27일
  • 웅포 해전 : 2월 10일~3월 6일
  • 행주 대첩 : 2월 12일
  • 제2차 진주성 전투 : 6월 29일

 

1594년

  • 제2차 당항포 해전 : 3월 4일
  • 영등포 해전 : 10월 1일
  • 장문포 해전 : 10월 4일

 

 

1597년

  • 칠천량 해전 : 7월 16일
  • 고령 전투 : 8월 15일
  • 남원 전투 : 8월 16일
  • 황석산성 전투 : 8월 16일
  • 어란포 해전 : 8월 27일
  • 직산 전투 : 9월 7일
  • 벽파진 해전 : 9월 7일
  • 명량 해전 : 9월 16일
  • 제1차 울산성 전투 : 12월 24일

 

1598년

  • 절이도 해전 : 7월 19일
  • 제2차 울산성 전투 : 9월 21일
  • 사천성 전투 : 9월 28일
  • 순천성 전투 : 9월 20일~10월 7일
  • 노량 해전 :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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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대첩도

임진왜란 해전 목록

 

아래의 목록은 임진왜란의 해전 목록이다. 정렬 순서는 시간순이다.

 

날짜 해전 장소 조선군 일본군 비고
1592년 6월 16일
(음력 5월 7일)
옥포 해전 거제시 옥포 이순신 도도 다카토라 조선군의 첫 승리
1592년 6월 16일
(음력 5월 7일)
합포 해전 진해시 웅천동 이순신
1592년 6월 17일
(음력 5월 8일)
적진포 해전 고성군 거류면 통영시 광도면 이순신
1592년
(음력 5월 29일)
사천 해전 사천시 용현면 이순신 구루지마 미치유키 처음으로 거북선을 사용
1592년
(음력 6월 2일)
당포 해전 통영시 산양읍 이순신 카메이 코레노리
1592년
(음력 6월 5일)
당항포 해전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 이순신
이억기
1592년
(음력 6월 6일)
율포 해전 거제시 장목면 이순신
1592년 8월 14일
(음력 7월 8일)
한산도 대첩 통영시 한산면 이순신
원균
이억기
와키사카 야스하루
1592년 8월 16일
(음력 7월 10일)
안골포 해전 진해시 안골동 이순신
원균
이억기
구키 요시아키
1592년
(음력 8월 29일)
장림포 해전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화준구미 해전 부산시 사하구 몰운대 인근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다대포 해전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서평포 해전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감천항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절영도 해전 부산시 영도구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초량목 해전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이순신
1592년 10월 5일
(음력 9월 1일)
부산포 해전 부산시 동구 좌천동 이순신
1593년 3월 6일
(음력 2월 10일)
웅포 해전 경남 진해시 웅천동 이순신
1594년
(음력 3월 4일)
제2차 당항포 해전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 어영담
1594년
(음력 10월 4일)
장문포 해전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이순신
1597년 8월 28일
(음력 7월 16일)
칠천량 해전 거제도 인근 칠천량 원균
이억기
배설
도도 다카토라
와키사카 야스하루
고니시 유키나가
조선군의 유일한 패배.
원균, 이억기 전사
1597년
(음력 8월 27일)
어란포 해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 어란포 이순신
1597년 10월 16일
(음력 9월 7일)
벽파진 해전 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진 이순신
1597년 10월 25일
(음력 9월 16일)
명량 해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진도군 녹진리 이순신 도도 다카토라
구루시마 미치후사
가토 요시아키
와키사카 야스하루
1598년
(음력 7월 19일)
절이도 해전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이순신
1598년 10월 19일 -
11월 6일
장도 해전 전남 순천시 장도 이순신
진린
고니시 유키나가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노량 해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이순신
진린
고니시 유키나가
시마즈 요시히로
와키사카 야스하루
소오 요시토시
가토 기요마사
이순신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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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전량 해전 패전 책임에 대한 고찰(계속)

 

 

"삼도 수군 통제사 원균은 수군을 이끌고 지체없이 부산으로 나가서 적을 섬멸하라."

 

지엄한 임금 선조의 어명이 하달되었다. 원균은 이제 주저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당시 한양 조정에서는 '왜눔들이 구름처럼 바다를 건너온다는데, 삼도수군 통제사 원균은 250여 리 떨어진 한산도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다니 이게 될 말인가?' 며 비난의 여론이 비등하였다. 부산포 공격을 거부하던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을 명령불복종으로 파직하여 잡아들인 다음 갖은 고문으로 죽음 직전에 갔다가 임금 선조의 아량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백의종군까지 시켜가며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 다음 용감무쌍하고 자신 있다던 원균을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 통제사에 임명해 주었는데 이제와서 부산 진격을 미루면서 주저하고 있다는 점에 선조와 조정은 매우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균이 듣지 않거든 무사하지 못 할 것이라고 전해라! 네가 직접 같이 배를 타고 출전하여 적을 치는 것을 네 눈으로 보고 오라!"

전선의 지휘관이 불가하다는 부신 진격을 선조는 선전관 김식을 떠나보내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국가 통수권자는 전쟁의 목표를 정해주고 승리를 위해서 제반 지원 사항을 지원만 해야 한다. 그러나 선조는 전술 목표까지 정해주면서 시일을 정하여 강압적으로 독촉하고 있다. 한마디로 무지한 욕심이다. 적의 간계에 놀아난 선조와 조선 조정은 이렇게 전술.전략에 대해 무지하였고 조선 수군을 괴멸당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목숨도 아깝고 통제사 자리도 아까웠던 원균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전선을 거느리고 부산으로 향하게 된다. 비극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자, 여기에서 원균이 진정 나라와 수군을 위한다면 그리고 적을 쳐부수기를 원했다면 안골포와 가덕도의 적을 먼저 쳐부수는 데 일차적인 전력을 집중했어야 했다. 그것이 물론 수군만으로 안되었다면 아떻게던지 선조와 조정을 설득하여 수륙병진 공격을 도모했어야 했다. 그래서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최선책으로 이순신처럼 끝까지 거부하여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던가, 아니면 차선책으로 스스로 통제사직을 사직을 하던가, 아니면 하책으로 조선 수군을 이끌고 부산으로 진격하여 이기면 다행이고 아니면 전체 수군과 같이 괴멸당하면서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던가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그 중에서 가장 졸렬한 하책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원균은 조선 수군의 위험을 뻔하게 알면서도 부산포로 출발한 그의 심정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아마도 선조와 조정, 도원수 권율 등 부당한 명령을 내린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내린 명령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두고보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출항하였는지도 모른다.

 

선조의 어명이 내려졌으니 이제는 어떠한 이견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7월 5일. 그날은 비가 내리고 파도가 높아 날씨가 고르지 못해 항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날씨였다. 그래서 장수들이 날씨가 개일 때까지 출발을 연기하자고 하였지만 선전관 김식이 반대하였다. 선조의 명령 때문이었다.

 

"전하께서는 일각이 여삼추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정도의 비로 연기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무리 어명이라하지만 현지 지휘관은 원균인데 이토록 선전관이 독촉한다고 출전을 결심한 원균은 이미 통제사로 곤장을 맞고 체면을 구길대로 구긴 처지라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원균은 조선 수군 전체의 명운이 달린 출전을 결정하게 되었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견내량을 지나 거제도 북단을 돌아 부산포로 향했다. 조선 함대는 거북선 4척, 판옥선 1백 80척, 협선 2백여 척 등 도합 400여 척의 대함대였다. 만약 원균이 자신의 목숨과 직위를 걸고 부산포 공격의 불가함을 들어 스스로 통제사직을 사의를 표명하거나 끝까지 거부하였다면 원균은 선조에게 목숨을 잃었거나 이순신처럼 목숨을 건져 백의종군을 당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 원균은 역사에 다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선조는 또 다른 장수로 하여금 부산포를 치게 하였을 것이며 그 장수가 이순신처럼 영리한 장수였다면 무리수는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선 수군의 괴멸까지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당시 선조가 내려보낸 선전관 김식은 젊고 패기넘치는 젊은 군관이었던 모양인듯 사령선에 원균과 함께 타고 원균이 장수들과 의논하는 자리마다 나타나서 장수들이 폭풍 여울 날씨로 출항이 어려움을 말하면, 그때마다 한마디씩 던졌다고 한다.

 

"성상께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원균과 장수들은 할 말을 잃고 무작정 부산포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여기서 한마디라도 출전이 불가함을 역설하였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조선 함대는 거제도 서북단을 크게 돌아 그 날 밤을 칠전량에서 보냈다. 비는 그치지를 않았고 날씨는 저물어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다음 날, 7월 6일. 날씨가 쾌청하였다. 배마다 깃발을 달고 아침 일찍 칠전량을 출발했다. 안골포와 가덕도 일대의 적을 치지 못하고 곧장 부산으로 간다면 유사시 퇴로가 차단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균은 거제도 동북단에서 남하하여 옥포에 기착하여 중간 기착지를 확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곧장 부산으로 진격할 예정이었다. 선조와 도원수 권율의 강압적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원균의 심정은 궂은 날씨처럼 착찹하기만 하였을 것이다.

 

다음 날 7월 7일. 날씨는 맑고 쾌청하였다. 뱃길로 부산은 1백 리, 한 번 싸우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라고 판단한 원균은 옥포를 출발하여 다대포에 도착하여 적정을 살펴보니 적선 8척이 다대포에 정박중이었다. 그냥 지나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전선 몇 척을 동원하여 왜군들이 뭍으로 도망친 빈 배를 모두 불태웠다. 그 곳의 지형이 수로가 좁은 지형이라 적선을 모두 태우고 나니 이미 오후 2시(미시)경이 되었다. 이미 시간이 늦어져 부산가지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은 밤이 될 것을 알면서도 원균은 부산으로 출발하려고 하였다.

 

그때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원균 배로 와서 하는 말이,

 

"이미 지체시간이 많아 부산에 당도해도 바로 어두어지게 되면 싸움을 시작해도 끝내기가 어렵소이다. 적은 배를 육지에 대고 뭍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아군은 배를 댈 곳이 없소이다. 반대로 표류하거나 지치게 되면 적군의 밥이 되기 쉽상이니 일단 옥포로 철수하는 것이 어떠하오?"라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원균은 옆에 있는 선전관 김식을 의식하고 이렇게 말한다.

 

"가는 데까지 가 봅시다."

 

원균은 선전관을 의식하고 선조의 지시와 명령대로 수행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선조에게 약점을 잡히고 싶지가 않았을 것이다. 대함대를 이끈 장수가 가는 데까지 간다니?  한마디로 아무런 의식없이 무작정 간다는 의미였다. 이 말에서 원균은 적과의 싸움보다는 부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게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적진 속을 아무런 목적없이 이동한다는 것은 적에게 '나 잡아 잡수시오!' 하는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이런 조선 함대의 동태를 일본군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며 부산까지만 간다면 조선 수군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은밀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억기가 돌아가자 원균은 기라졸(수기신호 병사)에게 명령을 내린다.

 

"부산으로 계속 항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