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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428 : 고려의 역사 197 (제30대 충정왕실록) 본문
한국의 역사 428 : 고려의 역사 197 (제30대 충정왕실록)
제30대 충정왕
충정왕(忠定王, 1337년 ~ 1352년)은 고려 제30대 국왕(재위: 1348년 ~ 1351년)이다. 휘는 저(胝), 첫 봉작은 경창원군(慶昌院君)이고, 시호는 충정(忠定大王)이다. 외척인 윤시우와 배전 등의 발호로 정사가 문란해졌고, 왜구의 계속된 침입을 막지 못하여 공민왕의 정변으로 폐위되었으며, 배소에서 암살당했다. 충혜왕의 서자로, 충혜왕과 고려 출신 희비 윤씨의 아들이다.
왕자 시절
어머니 희비 윤씨는 파평 윤씨 찬성(贊成) 윤계종의 딸로 고려 여인이었다. 태어나자마자 경창원군(慶昌院君)에 봉군되었고, 7세에 부왕의 죽음을 본다. 1348년(충목왕 4)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에 봉작되었다.
그러나 이복 형 충목왕이 후사없이 죽게 되자 이복 형 충목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의 뒤는 아들 왕제 대신 그의 숙부 공민왕이 차지하였다.
즉위와 폐위
즉위 초반 원나라의 공주인 덕녕공주가 배후에서 섭정을 하려 하였으나 그의 생모인 희비 윤씨 및 윤계종의 친족들이 반발하였다.
외가 친척인 윤시우와 배전 등이 세도를 형성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1350년에는 고려 국내에서 처음으로 왜구의 습격이 있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1351년, 어린 군주가 계속 되는 고려의 상황에서 불만을 품어, 이때 충정왕과 함께 충목왕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던 강릉대군(江陵大君:恭愍王)에게로 민심이 쏠리자, 1351년 윤택(尹澤)·이승로(李承老) 등은 원나라에 투서를 보내 "충정왕은 나이 어려 국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폐위시켜 달라"고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이후 공민왕 옹립을 도모하는 원나라의 의해서 강화도에 옮겨졌다.
공민왕이 고려에 귀국한 후 그는 강화도로 추방당했다. 1352년에 자객에 의해 암살되었다.
사후
후궁에게서 얻은 서자 1명인 왕제는 혈통을 이어 개성왕씨 시중공파의 파조가 된다. 능은 개성(開城)의 총릉(聰陵)에 안장되었다.
가계
- 부왕 : 충혜왕
- 모후 : 희비 윤씨
- 이복형 : 충목왕
- 이복누이 : 장녕옹주
- 비 :
- 아들 : 시중공(侍中公) 왕제(王濟), 그의 아들 시중공 왕제는 왕위는 계승하지 못하였지만 혈통을 이어갔다.
- 숙부 :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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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대 충정왕실록
(1338~1352년, 재위 1349년 7월~1351년 10월, 2년 3개월)
1. 충정왕의 짧은 치세와 비참한 최후
충정왕은 충혜왕의 둘째 아들이자 희비 윤씨의 소생으로 1338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지, 몽고식 이름은 미사캄타아지다. 1348년 4월에 경창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2월에 충목왕이 죽자 덕녕공주가 덕성부원군 기철과 정승 왕후에게 서무를 대신하게 하고 충목왕의 죽음을 원에 알렸다. 부고를 받은 원의 순제는 이듬해 2월 왕자 저를 입조하라고 했다.
하지만 고려 조정에서는 왕자 저를 왕으로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정, 손수관, 이군해, 민평, 최유, 윤시우 등이 그를 데리고 연경으로 떠나려 하자 전법관들이 회의를 소집하여 그들을 저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원나라 사신의 힘에 밀린 전법관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연경에 도착한 왕자 저는 그해 5월 순제로부터 고려 제30대 왕에 책봉되어 7월에 왕위에 올랐다. 이 때 그의 나이 12세였다. 이 때부터 덕녕공주와 충정왕의 모후 윤씨 사이에 치열한 세력다툼이 전개되었다. 덕녕공주는 정동행성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희비 윤씨는 왕과 그 측근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펴 1349년 8월 그녀를 위해 경순부가 설치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이들 두 사람의 세력다툼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1350년부터 경상도 일원을 중심으로 왜구가 기승을 부렸다.
1350년 2월에는 왜구가 고성, 죽말, 거제 등지에 나타나 노략질을 일삼자 고려 조정은 합포천호 최선과 도령 양관에게 군사를 내주어 3백여 명의 왜구를 죽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더욱 심해져 3월에는 연성군 이권을 경상.전라도 도지휘사로, 첨의 참리 유탁을 전라.양광도 도순무사로 보내 왜구를 방어하도록 하였다. 이에 왜구들은 4월 순천부에 침입하여 남원, 구례, 영광, 장흥 등지에 있는 운수선을 약탈하는 등 민심을 흉흉하게 하였다. 또 6월에는 왜선 20척이 합포에 침입하여 그곳의 병영 및 고성, 회원 등의 민가를 불살랐다.
왜구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1월에는 동래군에 침입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13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자연도와 삼목도에 침입하여 민가를 거의 불사르고 백성을 잡아갔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속수무책이었다. 관리들은 출전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고 오히려 왜구를 피해 피난을 떠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전국이 왜구로 인해 뒤숭숭한 가운데 원나라 순제는 고려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린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강릉대군 왕기를 왕으로 세웠다. 충정왕은 강화도에 유배되고 왕기는 1351년 10월 원의 책봉을 받아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공민왕이다.
강화도에 유배된 충정왕은 몇 개월을 그곳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3월 공민왕에 의해 15세의 어린 나이로 독살되었다. 능은 총릉이며 남긴 가족은 없었다. 실록은 1385년 '충혜왕실록'. '충목왕실록'과 함께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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