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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75 : 고려의 역사 143 (제19대 명종실록 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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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75 : 고려의 역사 143 (제19대 명종실록 4)

두바퀴인생 2011. 9. 30. 03:41

 

 

 

한국의 역사 375 : 고려의 역사 143 (제19대 명종실록 4)

 

제19대 명종실록

(1131~1202년, 재위 1170년 9월~1197년 9월, 27년)

 

2. 무신정권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

  

정중부의 무신의 난 이후 조정의 권력은 무신난을 주도한 일부 무장들에게 장악되었다. 이들 무장들은 과격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는데, 정중부, 양숙, 진준, 기탁성, 이소응, 홍중방 등의 무반과 고위 인사들은 온건파에 속했고, 이의방, 이고, 채원 등 하급 무장들은 과격파에 속했다.

 

흔히 정중부가 무신난을 주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의방, 이고, 채원 등 하급 무장들이 난을 주도하고 정중부는 그들의 계획에 동의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하급 부장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반란을 꾀하고 있었던 데 반해 정중부 등 고위직 무장들은 반란을 실행할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반란은 자연스럽게 과격한 소장 무장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중부의 동의가 없었다면 쉽사리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고, 설사 실행한다손 치더라도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중부의 역활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반란의 공적은 반란이 성공한 이후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반란 자체를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한 이의방 등의 소장 세력이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정중부 등의 고위 세력보다 정치적인 입김이 강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무신난 이후 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당연히 이의방 등의 소장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장군 한순을 비롯하여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무장 세력이 이의방과 이고가 조정의 대신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며 탄핵하기 시작하자, 이의방과 이고가 그들을 살해하면서 권력은 자연스럽게 소장 세력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소장 세력을 대표하는 이의방과 이고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되는데, 이는 이의방에게 권력이 기울자 이고가 정권을 독차지 하기 위해 나머지 세력들을 규합하여 이의방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고는 이의방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할 욕심으로 승려 현소, 수혜 등과 결탁하여 무뢰배들을 동원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태자 가관식날 거사를 결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고는 가관식에서 선화사로 참석하도록 되어 있었고, 승려 현소와 수혜는 법운사에서 무뢰배들을 소집해 놓았다가 일시에 연회장을 급습하여 이의방 세력을 제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고의 사령이 그 음모를 눈치 채고 자신의 아버지 김대용에게 고하였고, 김대용은 다시 내시장군 채원에게 고변했다. 이에 채원은 이의방에게 이고의 역모계획을 알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고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이고는 그날 궁문 밖에서 이의방의 철퇴에 맞아 죽었고, 그 도당들도 순검군에 의해 모두 체포되었다. 또한 이고의 어머니는 살해되고, 아버지는 평소에 이고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유배에 그쳤다. 

 

이렇게 되자 권력은 채원과 이의방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의방은 채원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조정에서 백관들이 보는 가운데 그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채원의 측근들과 지지 세력도 모두 체포하여 제거함으로써 이의방은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그 후 이의방은 대장군 겸 지병북사로 승진하였다. 이 때 귀법사의 승려 1백여 명이 도성 북문을 습격하여 무신들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에 이의방은 군사 1천을 동원하여 승려들을 물리쳤다. 그러자 다음 에는 승려 2천여 명이 도상 동문 밖에 집결하여 성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리고 이의방이 성을 닫고 수비태세를 갖추자 승려들은 성밖 민가를 불태우며 이의방 형제를 죽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의방은 군대를 동원하여 승려들을 물리치고,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시켰다. 또 병사들을 풀어 중광사를 비롯하여 주요 사찰을 허물고 재물을 약탈하여 오다가 승려들에게 다시 빼앗기기도 하였다.

 

이의방이 사찰들을 공격하려 했을 때 그의 형 이준의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이의방은 그의 말을듣지 않고 사찰을 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의방 형제는 큰 싸움을 벌였다.

 

이준의가 이의방을 꾸짖으며 말했다.

" 너에겐 세 가지 큰 죄악이 있다. 첯째는 임금을 추방하고 살해한 후 그 집과 첩을 강탈한 죄요, 둘째는 태후의 딸으을 협박하여 간음한 죄요, 셋째는 국정을 마음대로 독단한 죄다."

 

이 말을 듣고 이의방은 형 준의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아우 이린의 장인인 문극겸이 이의방을 꾸짖으며 말린 덕분에 이준의는 죽음을 면하고 달아 났다. 그 후 이준의는 한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이의방의 분노가 가라앉은 다음에 동생에게 사과했다.

 

이처럼 이의방은 권력을 위해서는 형제도 죽일 만큼 대단히 잔혹한 인물이었다. 또한 명예욕도 강하여 좌승선이 되자 곧 자기의 딸을 태자비로 삼게 하여 왕실에까지 힘을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