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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71 : 고려의 역사 139 (제18대 의종실록 6) 본문
한국의 역사 371 : 고려의 역사 139 (제18대 의종실록 6)
제18대 의종실록
(1127~1173년, 재위 1146년 2월~1170년 9월, 24년 7개월)
3. '정중부의 난'과 문신귀족의 몰락(계속)
이러한 의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그의 직위는 어느듯 상장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의종은 임종식, 환뢰 등의 문신들과 함께 향락적인 생활에 젖어 자주 미행을 나가곤 했다. 의종은 사흘이 멀다하고 연회를 베풀었고, 걸핏하면 호위병들을 대동하고 궁궐 밖으로 행차하였던 것이다.
연회는 때론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계속되곤 하였다. 이럴 때면 호위병사들은 굶주린 채 추위나 더위를 이겨내며 경비를 서야 했다. 이런 일이 몇 해 동안 계속되자 금군들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마침내 정중부 이하 금군의 여러 장수들은 반란을 도모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1170년 8월 29일 마침내 그들에게 기회가 왔다. 그날도 의종은 화평재로 나가 연회를 열고 문관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러나 호위군사들은 굶주린 채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좌승선 임종식, 기거주 한뢰, 이복기 등의 문인들이 왕의 총애를 믿고 무관들에게 무례하게 굴어 병사들의 분함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의방과 이고가 정중부에게 거사를 도모할 것을 요청했다. 왕과 함께 시를 짓고 놀고 있는 문관들 중에는 한때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바 있는 승선 김돈중도 있었다. 여전히 김돈중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있던 정중부는 그가 흥청망청 놀고 있는 모습을 보자울화가 치밀었다. 이때 이고가 정중부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문관들은 의기양양하여 취하도록 마시고 배부르게 먹고 있는데, 우리 무관들은 굶주리고 지쳐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정중부는 마음을 굳히고, 이의방과 이고에게 말했다.
"그래, 지금이 거사할 기회다. 하지만 왕이 여기를 떠나 환궁하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그렇지 않고 보현원으로 가면 실행에 옮기는 거다."
이런 다짐을 한 그들은 왕의 명령을 기다렸는데, 의종은 환궁하지 않고 보현원으로 가서 다시 연회를 계속하고자 했다. 그래서 다음 날 보현원으로 가기 위해오문까지왔을 때 문신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 그리고 술기운이 돌자 주변을 둘러보더니 호위병들의 어깨가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수박회 시합을 시켰다. 그는 사기가 저하된 무관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수박회가 시작되자 대장군 이소응과 장교 하나가 시합을 벌였다. 그러나 이소응은 무인이기는 하나 힘이 약한 탓에 수박회 도중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던 한뢰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도망가는 이소응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이소응은 섬돌 아래로 떨어져 쳐박혔고, 왕과 주변의 문신들이 손뼉을 치며 이소응을 비웃었다.
이를 보다 못한 정중부가 앞으로 나섰다.
"한뢰 이눔! 이소응이 비록 무관이나 벼슬이 3품인데, 어째서 너눔 따위가 이렇게 심한 모욕을 주느냐!"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의종은 정중부를 달래며 말렸다. 이 때 이고는 칼을 뽑고 정중부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정중부는 때가 아니라며 중지시켰다.
그러나 황혼이 깃들 무렵 의종의 행렬이 보현원 근처에 이르렀을 때 이고와 이의방은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그들은 왕명이라고 속이고 순검군사를 한 곳으로 집결시켰다. 그때 왕은 막 정자 안으로 들어섰고, 다른 신하들은 다른 신하들은 밖으로 나오며 자리를 찿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고와 이의방은 임종식과 이복기를 칼로 쳐 죽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한뢰는 환관들의 도움을 받아 급히 왕 앞으로 달려갔다. 보고를 받은 의종은 환관 왕광취로 하여금 의고와 이의방을 처치하도록 하였다.
이에 정중부는 한뢰를 죽이라고 명령하며 배윤재를 왕에게 보내 한뢰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뢰는 왕의 옷에 매달려 나오지 않다가 이고가 칼을 뽑아들고 들어가 위협하자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내 이고의 칼에 맞아 즉사하였다.
이를 본 문관들이 무관들을 꾸짖자 이고 등은 환관 및 내시, 그리고 주변에 있던 문관들을 모조리 살륙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 하나가 달려와 정중부에게 김돈중이 도망갔다고 보고하자 정중부는 당황하며 말했다.
"김돈중이 궁으로 도망가서 태자를 받들어 성문을 걸어닫고 우리를 반란군으로 몰면 낭패다."
정주부는 급히 수하를 김돈중의 집으로 보냈다. 수하들이 돌아와서 김돈중이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정중부 등은 거사가 성공하였다며 기뻐하였다.
그들은 곧 군사를 이끌고 대권로 달려가 별감 김수장을 죽이고 수십 명의 궁궐 관원들을 척살했다.
"문관의 관을 쓴 눔들은 한낱 서리라도 모조리 죽여라"
무관들이 이렇게 소리치며 판이부사 허홍재를 비롯하여 50여 명의 고급관료들을 살해했다. 이를 목격한 의종은 정중부에게 살인행각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으나 정중부는 뭉그적거리며 왕명을 받들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정권을 장악한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무신들은 환관 왕광취, 백자단, 그리고 내관 영의, 유방의 등을 죽여 저자에 효수하고, 의종의 사저인 관북택, 천동택, 곽정동택 등의 재산을 탈취하여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며칠 후 정중부는 의종을 폐하고 의종의 아우 익양공 호를 왕으로 세웠다. 이렇듯 다소 우발적으로 근왕병들이 일으킨 정중부의 난은 결국 문신귀족들을 대거 참살하고 급기야 왕을 교체하는 무신시대를 열게 되었고, 고려 사회는 새로운 변혁기로 접어든다. 무신시대는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현, 일가로 이어져 명종 대에서 고종 대까지 1백 년이나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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