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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64 : 고려의 역사 132 (제17대 인종실록 11) 본문
한국의 역사 364 : 고려의 역사 132 (제17대 인종실록 11)
제17대 인종실록
(1109~1146년, 재위 1122년 4월~1146년 2월, 23년 10개월)
4. 김부식과 삼국사기
묘청의 난을 제압하여 인종시대의 후반기 정치를 주도한 김부식은 원래 경주 출신으로 신라 왕족의 후예이다. 신라가 망할 즈음 그의 증조부 김위영은 왕건에게 귀의하여 경주 지방을 관장하는 주장이 되었다. 그 후 고려가 통일된 뒤에도 경주의 호족으로 남아 있다가 김부식의 아버지 김근에 이르러 중앙정부로 진출하게 되었다.
김근에게는 부필, 부일, 부식, 부철 네 아들이 있었다.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여윈 네 형제는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매년 임금이 그들의 어머니에게 곡식을 내렸다. 또한 맏이 부필을 제외한 부일, 부식, 부철은 당시 관계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림직에 제수되어 가문의 영광을 얻었다.
네 형제 중 부필은 윤관과 함께 병마판관으로 여진정벌에 참여하였으며, 둘째 부월은 벼슬이 중서시랑문하평장사, 셋째 부식은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문하시중, 넷째 부철(후에 부의로 고침)은 지추밀원사에 이르렀으나 이자겸의 난 이후의 인종시대는 이들 형제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 중에서 부식의 역활이 탁월했다.
김부식은 1075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입지, 호는 뇌천이다. 1096년 과거에 급제하여 안서대도호부 사록과 참군사를 역임하고, 직한림에 발탁되었다. 이후 한림원에서 줄곧 근무하며 학문을 쌓아 예종 대의 경전과 역사 강의를 도맡았다. 인종 집권 후에는 아자겸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주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그리고 박승종, 정극영 등과 함께 예종실록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 후 호부상서, 한림학사 등을 지냇으며, 이자겸이 유배된 후 정치적 능력을 인정받아 재상직인 정2품 중서문하 평장사에 올랐다.
이 즈음 묘청이 세력을 형성하여 서경천도론을 내세우자 그는 형제들과 함께 개경 세력을 규합하여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이 같은 김부식 등 개경 세력의 강력한 반대로 서경 천도계획을 실현시키지 못한 서경 세력은 1135년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도모했다. 이에 김부식은 3군 원수로 임명되어 반란군을 토벌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문하시중에 올랐다.
이 때 그는 함께 묘청의 난을 진압했던 유언이(윤관의 4남)를 탄핵하여 좌천시켰는데, 1140년에 사면령이 내려져 윤언이가 정계에 복귀할 기미가 보이자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세 번이나 사직을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 무렵 그의 형과 동생도 사망하고 없었고 자신의 지지 세력들도 거의 탄핵을 받아 물러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별수 없이 정계은퇴를 결심했던 것이다.
인종은 그의 이 같은 씁쓸한 정계은퇴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9명의 젊은 관료를 그에게 보내 <삼국사기>의 편찬을 명령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많은 사료들이 불타고 없어졌기 때문에 사료복원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었지만 인종은 과거사를 정립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신하의 자세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왕명을 받은 김부식은 그 후 5년 간의 작업 끝에 <삼국사기>를 완성하여 인종이 죽기 2개월 전인 1145년 12월 왕에게 올렸다.
중국의 정사체로 기록된 <삼국사기>는 총 50권으로 본기(本紀) 28권(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통일시라 12권) 지(志) 9권, 표(表) 3권, 열전(列傳)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사기가 열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비해 <삼국사기>는 본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본기의 주요 내용은 정치, 천재지변, 전쟁, 외교 등으로 분류된다. 또 '잡지'라고 이름 붙여진 지에서 제1권은 제사와 음악, 제2권은 색복, 수레, 용기, 집을 다루고 있으며 제3권에서 6권까지는 지리, 7권에서 9권까지는 직관 및 중앙관부, 궁정관부, 무관과 외직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표에서는 박혁거세 즉위년(서기 57년)부터 신라 56대 경순왕까지 연표로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열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데, 뚜렷한 편찬 기준도 없고, 왕후.공주 열전도 없어 중국 사서의 열전에 비해 매우 빈약한 편이다.
이 책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은 김부식을 포함한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안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은 등 8인의 참고와 김충효, 정습명 등 2명의 관구 등 총 11명이다. 이들 10인의 편찬 보조자들은 김부식과 가까운 인물이었으며, 주로 자료 수집과 정리를 담당하였다.
<삼국사기>는 이들 편찬자들의 독자적인 저술이 아니라 <고기>, <삼한고기>, <신라고사>, <구삼국사>, 김대문의 <고승전>과 <화랑세기>, <계림잡전>, 최치원의 <제왕연대력> 등의 국내 문헌과 <삼국지>, <후한서>, <진서>, <위서>, <송서>, <남북사>, <신당서>, <구당서>, <자치통감> 등의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기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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