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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66 : 고려의 역사 134 (제18대 의종실록 1) 본문
한국의 역사 366 : 고려의 역사 134 (제18대 의종실록 1)
제18대 의종
의종(毅宗, 1127년 ~ 1173년)은 고려 제18대 국왕(재위: 1146년~1170년)이다. 휘는 현(晛), 자는 일승(日升), 시호는 의종강과장효대왕(毅宗剛果莊孝大王). 인종과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의 맏아들이다.
생애
1134년에 왕태자(王太子)가 되었으며 1146년 인종이 죽자 즉위하였다.
즉위한 뒤에 그는 이미 인종 때에 일어난 이자겸의 전횡과 반란, 묘청의 난 등으로 크게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여 쇠약해진 왕권을 강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무신(武臣)들을 총애하여 친위군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중부, 이의방, 이고, 이의민 등이 발탁되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문신(文臣)들 및 환관(宦官)들과 어울려 유흥과 오락에 깊이 빠지고, 지나치게 불교·음양설(陰陽說)·선풍(仙風)을 중요시하고 유교를 멀리하는 등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였고, 이 과정에서 무신들을 소외시켜 천대받게 만들어 무신정변(武臣政變)의 계기를 낳았다.
1170년 보현원(普賢院)에 거동하였을 때에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의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무신정변이 일어남으로써 무신 정권에 의해 폐위되어 3년간 거제도의 폐왕성(廢王城)에 유폐되었다.
그 뒤 1173년에 김보당(金甫當) 등 의종 복위 세력이 무신 정권에 항거하여 거병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유배된 의종을 모셔와 받들고 경주로 가서 웅거하였다. 그러나 무신 정권이 보낸 군대에게 모두 패하였다.
1173년 의종은 총애하던 장수 이의민에 의해 곤원사(坤元寺) 연못가에서 술을 두어 잔 마신 뒤에 등뼈가 꺾여지고 시체는 그대로 연못에 수장당하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였으며 이후 동생인 명종에 의해 능이 조성되었는데 바로 희릉(禧陵)이다. 현재 희릉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개성 동쪽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계
- 장경왕후 김씨(莊敬王后) - 강릉공 왕온의 딸이며 여동생들도 의종의 동생인 명종과 신종의 왕비가 되었다.
- 효령태자(孝靈太子)
- 경덕궁주(敬德宮主)
- 안정궁주(安貞宮主)
- 화순옹주(和順翁主)
- 장선왕후 최씨(莊宣王后) - 최단의 딸
- 궁인 무비 (宮人 武比)
고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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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의종실록
(1127~1173년, 재위 1146년 2월~1170년 9월, 24년 7개월)
1. 향략주의자 의종의 환관정치와 정중부의 난
묘청의 난 이후 개경의 문신귀족들이 정권을 장악한 가운데 즉위한 의종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친위 세력 형성에 주력한다. 이 때문에 환관과 내시들의 힘이 막강해져 그들과 언간들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전개되고, 그 틈바구니에서 멸시당하던 무신들이 반란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의종은 인종의 맏아들이자 제3비 공에왕후 엄씨 소생으로 1127년 4월 경오일에 태어났으며, 초명은 철, 이름은 현, 자는 일승이다. 1143년에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1146년 2월 정묘일에 인종이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대관전에서 고려 제18대 왕에 올랐다. 이 때 그이 나이 20세였다.
의종은 어린 시절부터 오락을 좋아하고 시를 즐겼다. 특히 격구에 몰입하여 학문을 소홀히 하고 내시나 무장들과 어울려 함께 시합을 하는 일이 잦았다. 이 때문에 모후 공예왕후는 둘째 왕자 경을 태자로 책봉하고자 주장했으나 인종이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공예왕후는 끈질기게 그를 태자에서 폐하고 돌째 왕경을 태자로 삼을 것을 간청한다. 이에 인종의 심임이 두터웠던 예부시랑 장습명이 태자 폐립에 반대하며 자신이 의종을 보필하여 정사를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자청했다.
의종은 정명습의 보호에 힘입어 가까스로 태자직을 보전하다가 부왕 인종이 사망하자 그의 유지에 따라 왕위에 오른다.
이와 같이 의종 즉위에 정명습의 역활이 지대하였기 때문에 왕이 된 이후에도 의종은 정명습에 의해 철저하게 행동을 규제받는다. 의종 즉위 후 한림학사로 승격된 원칙주의자 정명습은 의종을 냉정하게 보필하며 정치 전반에 관한 자문역을 수행하는데, 그가 너무 지나치게 왕의 행동을 규제하는 바람에 의종이 점차 그를 꺼리면서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의종은 환관과 내시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근위 세력을 형성하여 김존중, 정서 등을 측근으로 삼아 정명습을 정계에서 축출하여 죽여 버린다.
의종 초기에는 인종 대의 공신인 원로 김부식과 문하시중 임원후가 이끄는 개경의 문신귀족 세력이 정권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의종은 이들 문신들이 왕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하자 환멸을 느끼고 근위 세력 형성에 주력했던 것이다. 문신들은 대간들을 중심으로 정사에 관한 많은 의견을 내놓았는데 의종이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모두 출근을 하지 않기도 했고, 왕의 측근들에 대해서도 숱한 탄핵을 하여 이어코 그들을 축출하곤 하였다. 의종은 문신들의 이러한 지나친 간섭에 염증을 느끼고 근위 세력을 형성하여 왕권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다.
근왕 세력의 중심 인물은 환관 정함, 내시사령 영의, 형부낭중 김존중 등으로 이들은 대개 내시 또는 내시 출신들이었다. 의종은 이들과 함께 거의 매일같이 격구나 수박회(태껸)를 즐기며 정사를 등한시 하였다. 심지어 어떤 때는 4일 동안 줄곧 격구만 관람하며 아에 편전에 나가지도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의종의 이 같은 행동은 문신들의 지나친 행동 규제에 반발한 고의적인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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