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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01 : 고려의 역사 69 (제6대 성종실록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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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01 : 고려의 역사 69 (제6대 성종실록 3)

두바퀴인생 2011. 7. 17. 17:30

 

 

 

한국의 역사 301 : 고려의 역사 69 (제6대 성종실록 3)

 

 

제6대 성종실록

(960~997, 재위 981년 7월~997년 10월, 16년 3개월)

 

1. 유학 정치이념의 실현자 성종과 중앙집권 체제의 완성(계속)

 

고려가 내부적으로 이 같은 문화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동안 외부적으로는 거란의 군사적 위협이 강화되고 있었다. 거란은 체제정비를 완료하고 고려를 압박하면서 과거의 고구려 영토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거란은 발해를 몰락시킨 후 당연히 고구려의 옛땅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가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침략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거란의 엄포가 있자 고려 조정은 숙의 끝에 거란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결정하고, 거란에게 고려는 신라의 뒤를 이은 것이 아니라 고구려를 승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에 거란은 993년 10월 소손녕을 대장군으로 삼아 80만 대군이 고려에 내침한다.

 

거란군이 침입하자 성종은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 서희를 중군사, 최량을 하군사에 임명하여 친히 군사를 이끌고 서경에 진을 쳤다. 하지만 국경의 봉산군이 함락되어 많은 고려군이 포로로 붙잡히자 서희는 군대를 이끌고 봉산을 향해 북진했다. 이에 소손녕이 항복을 권유하는 위협적인 서신을 보내자 서희는 오히려 그와 담판을 짓고 압록강 동쪽의 6주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변까지 확대되고 고려와 거란 사이에 있던 여진의 세력은 더욱 위축된다. 

 

이 사건 이후 고려는 외교적으로 송나라를 섬기고 있었지만 막강한 힘을 형성한 거란이 등장함으로써 송과는 문화적.정치적 외교를 펼쳐 선진 문물을 들여오고, 거란과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외교를 펼치는 실리주의 전략을 구사한다.

 

이처럼 성종 대엔 행정조직의 정비를 통한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유교를 정착시켜 교육제도의 변혁을 꾀했으며, 사회 전반에 충효사상을 심어 정신적 기반을 다졌다. 또한 거란과의 외교적 성과로 강동 6주를 얻어 영토를 확장했고, 992년 4월에 송나라에 사은사로 갔던 한언공이 대장경을 들여와 불경사업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도 햇다.

 

그러나 22세에 왕위에 올라 16년 동안 고려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성종은 997년 마침내 병을 얻고 말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병이 위독해지자 경종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개령군 왕송을 불러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는 자신이 경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데 대한 보답 차원으로 생각된다. 이 때 평장사 왕융이 왕의 건강 회복을 위하여 대사령을 내리자고 하였으나 성종은 다음과 같이 거절한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죄 있는 자를 용서함으로써 억지로 연명을 구할 수 있겠소. 또 만일 내가 미리 대사령을 내리고 죽으면 나를 계승하여 즉위한 사람이 무엇으로 왕의 은혜를 베풀수 있겠소."

 

997년 10월 무오일에 왕이 생을 마감하니 향수는 38세요, 재위기간은 16년 3개월이었다. 묘호는 성종이라 하였으니, 이는 무릇 나라의 기반을 닦고 체제를 완성한 왕에게 붙이는 것이었다.

 

이제햔은 <고려사>에서 성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종은 종묘를 세우고 사직을 설치하였으며 학비를 넉넉히 주어 선비를 양성하고 복시를 치러 인재를 등용하였고, 수령들에게는 백성들을 잘 돌보게 하고 효자와 절부를 표창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였다. 또한 매양 친필교서를내릴 때마다 풍속을 변혁하는 간곡한 내용을 담는 것을 임무로 알았다..... 그리고 성종은 채 늙기도 전에 자기 후계자를 세웠으니 국사에 대한 생각이 원대하였으며 죽어가면서도 함부로 대사령을 내리지않았으니 이는 생사의 이치에 밝은 식견을 가졌음이라. 가히 성종과 같은 분이 정치에 뜻을 둘 만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오오 어진 임금이 여기에 있었구나!"

 

성종의 능호는 강릉이며 개성 남쪽 교외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