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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303 : 고려의 역사 71 (제6대 성종실록 5) 본문
한국의 역사 303 : 고려의 역사 71 (제6대 성종실록 5)
제6대 성종실록
(960~997, 재위 981년 7월~997년 10월, 16년 3개월)
3. 중앙집권 체제 마련을 위한 행정조직의 개편
성종 대 치세의 일관된 정책은 중앙집권 체제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성종은 귀족들과 제휴를 모색하는데, 제휴책으로 노비안건법을 폐지하여 광종대에 노비에서 면천됐던 사람들을 다시 노비로 환전시켜 귀족들에게 돌려주기도 하였다.
중앙집권 체제 마련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중앙관제와 지방조직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성종은 집권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조직 정비작업을 추진한 결과 중앙에는 3성 6부제가 정착되고 지방에는 12목이 확립될 수 있었다.
3성 6부제를 통한 중앙관제 확립
3성 6부제는 고려 중앙관제의 토재를 이루는 제도로서 그 골격은 당나라의 것을 본 뜬 것이다. 이기서 3성이란 중서성, 문하성,상서성을 일컬으며 6부란 이, 호, 예, 병, 형, 공부를 가리킨다.
6부는 형식적으로는 3성에 딸린 부속 조직이지만 그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3성에 못지않은 중요한 역활을 했기 때문에 이들 조직을 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3성 내에 6부가 종속되는 형태를 띤 당나라의 3성 6부제와 고려의 3성 6부제도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3성체제의 시초는 982년 성종이 내문하성과 어사도성, 그리고 어사 6관을 설치하면서부터였다. 태조 대에 이미 광평성, 내의성, 내봉성 등의 체제가 있긴 했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당나라 제도와 관계가 없다. 태조 대의 3성은 태봉의 체제를 답습한 것으로 독자적인 면모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3성 체제는 중앙집권화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호족연합체를 유지하는 기능만 했을 뿐이다. 따라서 중앙집권화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던 성종에게는 당나라 제도를 모방한 강력한 3성체제가 필요했다.
982년에 설치된 3성체제는 내사성과 문하성이 내문하성으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2성체제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또한 선,병,민,형,예,공관 등으로 이뤄진 6관은 어사도성의 부속기관으로 존재했다. 따라서 이때의 3성체제는 과도기적 형태를 띠고 있었다.
3성체제가 본격화 된 것은 995년 어사도성이 상서도상으로 바뀌던 때부터다. 이 때 내사문하성은 중서문하성으로 바뀌었고, 중서문하성은 중서성과 문하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기관을 합쳐 중서문하성으로 불렀으므로 말하자면 고려는 줄곧 2성체제를 유지한 셈이다. 이처럼 2성체제를 형성한 것은 고려가 당나라처럼 사회가 복잡하지 않아 굳이 3성 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3성체제였다.
3성의 하부구조로 6부가 있었다. 6부는 어사 6관에서 비롯되는데, 995년 어사도성이 상서도성으로 변경되면서 6관도 6부체제로 변화되었다.
6부의 서열은 이, 병, 호, 형, 예, 공부 순이었는데, 이는 당나라가 이, 호, 예, 병, 형, 공부 순을 유지하고 있던 것에 비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당나라가 병부를 네 번째 유지하고 있던 것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나라가 병부를 네 번째 서열에 둔 것에 비해 고려는 병부를 두 번째 두었다는 것은 이는 고려가 그만큼 병권을 중시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형부가 예부보다 서열상 위에 놓인 점도 당나라에 비해 변방이 안정되지 못했고 풍속에 대한 강제성도 약했던 당시 고려의 사회적 특징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비록 당의 제도를 본받기는 했지만 고려인들이 내부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제도를 형성하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6부는 형식적으로는 3성의 하급 조직이었지만 3성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국왕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행정제도의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이렇듯 성종은 3설 6부제를 확립함으로써 중앙집권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 성공하게 된다.
중앙관제의 근간이 된 3성 6부제 이외에도 고려는 송의 제도를 본받아 3사와 중추원을 채용하고, 독자적인 필요성에 의해 도병마사와 식목도감 등의 합좌기구를 마련한다.
이러한 체제는 고려 중기까지 그대로 유지되다가 무신정권 이후 중방, 정방, 교정도감 등이 설치되면서 권한과 기능이 위축된다. 게다가 1275년 충렬왕이 즉위하면서 원나라의 압력에 의해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첨의부로 통합되어 3성체제는 급격히 약화된다. 또한 1279년에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정되어 국가의 모든 중대사를 주관하게 된다. 그리고 1362년에 중서성은 도첨의부, 상서성은 3사로 각각 개편되면서 3성체제는 완전히 소멸된다.
한편 6부 역시 1275년 이후 원의 압력에 의해 전리사, 군부사, 판도사, 전법사 등 4사로 축소되었으며, 도평의사사 설치 이후에는 그 권한이 더욱 약화되었다. 그러다가 1356년 공민왕의 개혁으로 일시적으로 6부의 기능이 되살아 났지만, 1362년 전리사, 군부사, 편도사, 전법사, 예의사, 전공사의 6개사로 개편되었다. 또 1368년 선부, 총부, 민부, 이부, 예부, 공부로 부활하여 1389년 이, 호, 예, 병, 형, 공조의 6조로 개편된다. 하지만 6조는 기능이 제대로 발휘도지 못해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6부 체제는 훗날 조선의 6조체제의 근간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그 역사적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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