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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98 : 고려의 역사 66 (제5대 경종실록 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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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98 : 고려의 역사 66 (제5대 경종실록 4)

두바퀴인생 2011. 7. 13. 04:59

 

 

 

한국의 역사 298 : 고려의 역사 66 (제5대 경종실록 4)

 

 

제5대 경종실록

(955~961, 재위 975년 5월~981년 7월, 6년 2개월)

 

2. 경종의 가족들

 

경종은 현숙왕후 김씨, 헌의왕후 유씨, 헌애오아후 황보씨, 헌정왕후 황보씨, 대명궁부인 유씨 등 5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헌애오아후 황보씨에게서 1남을 얻었으니 그가 고려 제7대 왕 목종이다.

 

이들 5명 중 헌숙, 헌의, 헌애, 헌정왕후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목종은 목종실록에서 다루기로 한다. 대명궁부인 유씨에 대해서는 태조와 정덕왕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원정태자의 딸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헌숙왕후 김씨(생몰년 미상)

헌숙왕후 김씨는 신라 경순왕 김부의 딸이다. 935년 태조가 자신의 딸 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보냈는데, 헌숙왕후는 이들 사이에서 출생한 듯하다.

 

경종은 즉위하자마자 975년 10월에 경순왕 김부의 관작을 높이고 공신 칭호를 준다. 또한 식읍은 종래 것과 합쳐서 1만 호로 늘려준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배려인데, 이 때에 헌숙왕후를 왕비로 받아들인 일 때문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비록 헌숙왕후가 경종의 제1비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와 가장 먼저 혼인한 부인은 아니다. 다만 늦게 혼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제1비로 삼은 것은 신라 왕족과 고모인 낙랑공주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보인다.

 

신라 왕족에게 이같이 특별한 배려를 한 것은 아마 정치적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라 왕족을 비롯한 경상도 쪽 호족들은 광종의 공포정치에 희생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종 즉위 이후에 상대적으로 세력이 급성장했고 경종은 이러한 신라계 호족들의 힘을 이용하여 충주 및 평산 호족들을 견제하려 했다.

 

그녀가 언제 죽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죽은 후 경종의 영릉에 합장되었다.

 

헌의왕후 유씨(생몰년 미상)

경종의 제2비인 헌의왕후 유씨는 광종의 동복동생 문원대왕 정과 태조의 6비 정덕왕후 소생 문혜왕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원대왕 정은 광종의 친동생이므로 경종과 헌의왕후는 친사촌지간이다.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유씨 성은 아버지 문원대왕의 외가쪽 성을 따른 것이다.

 

경종의 제1비 헌숙왕후가 경종 즉위 이후에 왕후에 책봉되었다면 헌의왕후가 경종과 가장 먼저 결혼한 부인이 된다.

 

광종은 태조에 의해 족내혼을 했는데,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에게도 족내혼을 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족내혼은 순수 혈통으로 왕위를 잇는다는 의미 이외에도 왕의 위상이 격상되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에 왕권강화에 매진했던 광종은 당연히 아들에게 족내혼을 시켰을 것이다. 헌숙왕후와의 혼인을 경종 즉위 이후로 잡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헌의왕후 유씨의 사망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어디에 묻혔는지도 전해지지 않는다.

 

헌애왕후 황보씨(964~1029년)

경종의 제3비인 헌애왕후 황보씨는 태조와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인 대종의 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태조와 정덕왕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선의왕후이다. 그런데 그녀가 어머니 성인 유씨 성을 따르지 않고 황보씨 성을 따른 것은 친할머니 신정왕후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경종은 헌애왕후의 친동생도 왕비로 맞아들이게 되는데 그녀가 곧 현종의 어머니 헌정왕후이다. 이렇게 두 자배를 왕비로 맞아들였다는 것은 황주 황보씨의 세력이 막강했음을 대변해준다.

 

특히 경종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모두 황주 황보씨에 적을 두고 있고, 어린 시절 그들에 의해 양육되었기 때문에 외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이 때문에 경종은 황주 황보씨 세력을 경계하고 있던 광종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헌애왕후는 997년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한다. 이 때 목종의 나이는 18세나 되었으나 그녀는 정권욕이 강했기 때문에 섭정을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 때 그녀는 천추전에 거주하였으며, 스스로를 천추태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섭정을 하던 그녀는 김치양과 간통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 아들로 하요금 목종의 대를 잇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 중신들은 안종과 헌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대량원군(현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고자 하였다. 당시 대량원군은 헌애왕후의 강요로 머리를 깍고 삼각산 신혈사에 머물렀는데, 헌애왕후는 그를 죽이기 위해 몇 번이나 자객을 보내고 독살을 계획했지만 실패한다.

 

그러다가 1009년 강조가 군사를 일으켜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헌애왕후의 인척들을 귀양보낼 때 그녀도 황주로 내쫓긴다. 이 때 강조는 목종을 죽이고 대량원군을 즉위시키게 되는데 그가 제8대 현종이다.

 

황주로 내쫓긴 그녀는 21년간 그곳에 머물다가 1029년 숭덕궁에서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능은 우릉이며 정확한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헌정왕후 황보씨(?~992년)

경종의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는 대종의 딸이며 헌애왕후 황보씨의 친동생이다.

 

왕비로 책봉된 이후 후사가 없었으며, 경종이 죽은 다음에는 친정에서 머물렀다. 이 때 그녀는 태조와 신성왕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욱(안종)과 간통하여 임신하게 된다.

 

그녀가 임신한 때가 991년이니 경종이 죽은 지 10년이나 지난 후였는데, 그녀가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잉태하고 만삭이 되어도 주위 사람들은 그 내막을 발설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이 사실이 알려져 성종의 명으로 안종은 귀양 갔으며, 992년 7월 그녀는 혼자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고려 제8대 왕 현종이다. 아이를 낳은 그녀는 이 때 산고로 죽었다.

 

그녀의 능은 원릉이며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