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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96 : 고려의 역사 64 (제5대 경종실록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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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96 : 고려의 역사 64 (제5대 경종실록 2)

두바퀴인생 2011. 7. 11. 05:14

 

 

 

한국의 역사 296 : 고려의 역사 64 (제5대 경종실록 2)

 

 

제5대 경종실록

(955~961, 재위 975년 5월~981년 7월, 6년 2개월)

 

1. 경종의 화합정책과 호족 공신들의 재등장(계속)

 

광종시대 역모에 대한 고변이나 참소는 주로 호족들 치하에 있던 노비나 하급관료에 의해서 이뤄졌다. 공포정치의 시발점이 되었던 왕동과 준홍의 역모사건을 고변하였던 권신 같은 인물로 그 중의 하나였다. 또한 과거를 통해 등용된 신진관료나 귀화인들의 천거로 등용된 하급관료들도 호족들을 제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을 것이다.

 

호족 출신 왕선이 집정에 임명되자 이들 참소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복수전이 펼쳐졌다. 왕선은 경종에게 복수법 마련을 건의하였는데, 이는 광종 대에 참소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복수의 권한과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왕선을 비롯한 호족 세력의 강력한 건의에 밀려 경종은 복수법을 허락하였고, 이 때문에 곳곳에서 복수전이 벌어졌다.

 

경종이 복수법 건의를 받아들인 것은 광종 대의 공포정치 이후 왕실에 등을 돌린 호족들을 달래고 화합정치를 모색하기 위한 조처였다. 하지만 복수전이 가열되면서 경종의 화합정치에 대한 열망은 퇴색되고 정국은 팽팽한 대결국면으로 치닫는다.

 

비록 호족 출신인 왕선이 집정에 임명되었지만 광종 대에 과거로 등용된 신진 관료들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때문에 복수전을 펼치려는 왕선과 호족 세력을 견제하던 신진관료들의 힘싸움은 불가피했다. 그런 가운데 호족들의 복수전은 시작되었다.

 

호족들의 복수전은 약 1년 간 실시되는데, 그런던 중에 태조 왕건과 천안부원부인 임씨 사이에서 태어난 효성태자와 태조의 제10비 숙목부인 소생 원녕태자가 살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왕선은 복수법을 빌미로 왕에게 보고도 않고 종실의 어른을 살해했던 것이다. 이는 곧 효성태자와 원녕태자가 광종대에 호족들의 숙청에 깊숙이 개입하였음을 의미한다.

 

호족들의 복수전으로 인해 종실의 어른이 살해당하자 경종은 곧 복수법을 금하고 왕선을 파직시켜 귀양 보냈다. 그리고 순질과 신질을 좌우집정에 임명하고 그들에게 내사령을 겸하게 하였다.

 

집정제를 좌우집정제로 바꾼 것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또한 왕명을 출납하는 내사령을 좌우집정에게 겸임시킨 것은 자신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신하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조처였다. 따라서 경종의 좌우집정제 도입은 권력의 집중을 막고 동시에 왕명의 권위를 살리는 이중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좌우집정제를 확립한 경종은 전시과를 마련하여 토지제도의 혁신적인 변환을 꾀한다. 고려 경제의 토재가 농업인 만큼 토지제도의 변환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토지를 힘의 기반으로 하고 잇는 호족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려 초부터 역분전 제도 등 몇 차례에 걸쳐 토지제도의 정착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앗는데, 경종이 비로소 전시과를 마련하여 토지제도를 정착시킨 것이다. 이는 고려 개국 후 토지제도가 차음으로 마련됐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인 개가가 아닐 수 없다.

 

관품(관리의 품계)과 인품(덕망이나 학문의 업적)에 따라 토지를 분급하는 제도인 전시과를 마련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지배 계층 전체를 정부의 토지제도 틀 내에 흡수하려는 획기적인 조처였으며,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