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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72 : 고려의 역사 40 (태조실록 10) 본문
한국의 역사 272 : 고려의 역사 40 (태조실록 10)
태조 실록(877-943년, 재위 : 918년 6월-943년 5월, 25년)
4. 태조 왕건의 가족들(계속)
신명순왕후 유(劉)씨 (생몰년 미상)
신명순왕후 유씨는 충주 사람으로 내사령 유긍달의 딸이다. 그녀는 태자 태, 정종, 광종, 문원대왕 정, 증통국사 등의 다섯 아들과 낙랑과 흥방 두 공주를 낳았다.
유씨는 다른 어떤 왕후보다도 많은 자식을 낳았고, 그녀 소생 중에 두 명의 왕이 되었으나 <고려사>는 그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또 유씨 소생 낙랑공주는 신라 마지막 왕 김부(제56대 경순왕)와 혼인하여 왕건이 신라 세력을 포용하는 데 지대한 역활을 하였다.
왕건이 유씨와 결혼한 시기는 920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태자 태의 출생연대가 정종과 광종이 두살 터울임을 감안할 때 920년경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씨는 900년을 전후해서 태어났을 것으로 짐작되며, 왕건이 왕이 된 이후에 처음 맞이한 왕후였던 만큼 당시의 세력 판도와 관련된 정략결혼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왕비의 후비 중에 충주 출신은 그녀 하나뿐이었는데, 이것은 곧 그녀의 아버지 유긍달이 충주를 대표하는 유력한 호족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녀의 소생 광종이 954년 봄에 숭선사를 창건하여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신정왕후 황보씨(?~983년)
신정왕후 황보씨는 황주 사람으로 삼중대광 황보제공의 딸이다. 그녀 소생으로는 성종의 아버지 대종 왕욱과 광종의 비 대목왕후가 있다.
그녀가 제4비가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신명왕후보다는 늦게 결혼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녀 역시 신명왕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건이 호족 세력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취한 정략결혼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 건국 초기에 해당하는 920년경에 결혼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황보씨는 태조가 죽은 후 40년을 더 살았으며 사망 당시 나이는 여든 살 가량이었다. 며느리 선의왕후가 일찍 죽은 바람에 성종을 비롯한 손자들에 대해 많은 애정을 쏟았다. 효덕태자와 성종, 경장태자 등은 그녀가 직접 양육하였다.
태조의 부인 중에 황주 출신은 두 명이었는데, 그녀를 먼저 택한 것을 보면 황보제공이 황해도의 유력한 호족임을 알 수 있다. 성조조에 남긴 조문에 따르면 그녀는 덕이 많고 성격이 후덕하였으며, 검소하고 슬기로워 백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능은 수릉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고, 다만 개성 근처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성왕후 김씨(생몰년 미상)
신성왕후 김씨는 신라 왕족이며 경순왕의 큰 아버지 김억렴의 딸이다. 김씨가 왕건의 제5비가 된 것은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935년 직후이므로 936년 초가 될 것이다.
935년 11월 신라 제56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왕건은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고려 사신은 경순왕에게 왕건이 신라 종실과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에 경순왕은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 보냈다.
김씨 소생으로 안종이 있는데, 그는 제5대 왕 경종의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와 결혼하여 제8대 왕 현종을 낳았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정덕왕후 유씨(생몰년 미상)
정덕왕후 유씨는 경기도 정주(승천) 출신이며, 시중 유덕영의 딸이다.
그녀는 제6비였지만, 결혼은 제5비 신성왕후 김씨보다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 소생 선의왕후가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 대종과 결혼하고, 문혜왕후가 제3비 신명왕후 유씨 소생 문원대왕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결혼 시기는 신정왕후 황보씨와 비슷한 시기인 920년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출생연대도 신정왕후와 비슷한 시기인 903년쯤일 것이다.
그녀 소생으로 왕위군, 인애군, 원장태자, 조이군 등의 네 왕자와 문혜왕후(문원대왕 비), 선의 왕후(대종 비) 등이 있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대종 욱(?~969년)
대종 욱은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이며, 제6대 왕 성종의 아버지다. 그의 출생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광종 20년(969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욱은 태조와 제6비 정덕왕후 유씨 소생 선의 왕후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효덕태자. 성종, 경장태자, 헌애왕후(경종 제3비), 헌정왕후(경종 4비) 등을 두었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태왕으로 추존되어 묘호를 대종이라 하고 능호를 태릉이라 하여, 대묘에 합사했다.
안종 욱(?~997년)
안종 왕욱은 신성오아후 김씨 소생이며, 제8대 왕 현종의 아버지다. 981년에 경종이 죽자 그의 제4비 헌정왕후 왕보씨가 사가로 나와 거처하였는데, 왕욱은 그녀와 정을 통하여 임신케 했다. 이 일이 발각되자 성종은 왕욱을 귀양보냈으며, 그가 귀양가던날에 헌정왕후는 아이를 낳고 죽었다.
성종은 헝정왕후가 죽은 후 왕욱의 아이를 보모에게 맡겼는데, 아이가 두살이 되자 아버지를 찿으므로 왕욱에게 보냈다. 왕욱은 귀양지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죽음이 임박해오자 아들에게 금 한주머니를 주면서 이렇게 유언했다.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이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에 매장하되, 시체를 엎어 묻어달라."
유언을 남긴 왕욱은 성종 15년(997년)에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의 아들 현종이 1010년에 왕위에 오르자 효목대왕에 추존되었고, 묘호를 안종이라 했다.
현종은 1018년에 그의 능을 검릉에 옮겼으며, 1028년에 능호를 무릉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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