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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51 : 고려의 역사 19 (후삼국 실록 12) 본문
한국의 역사 251 : 고려의 역사 19 (후삼국 실록 12)
국운을 건 명승부들
임해해전(932년 9월)
-백제 수군 개성을 안방처럼 드나들다-
병산에서 대승한 뒤로 왕건은 공산전투의 패배를 설욕했다고 자부했다. 반면 견훤은 그 뒤로 좀처럼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다. 왕건은 그 기회를 이용해 서라벌로 가서 경순왕을 맞아 동맹을 맺었다. 왕건의 이런 조치는 서라벌 주변의 민심이 여전히 신라 왕실에 호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왕건은 신라 왕실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여 신라의 호족들을 자기편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 상황에서 932년 6월에는 백제 장군 공직이 투항해왔고, 그 여세를 몰아 왕건은 7월에 직접 일모산성(충북 청주 문의면)을 정벌하였다. 일모산성은 북진책을 구사해온 백제의 교두보 같은 역활을 하던 곳으로 견훤의 충격이 컸다.
하지만 한동안 견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고려의 허를 찌를 요량으로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해 9월, 견훤은 마침내 그 품고 있던 창날을 드러냈다.
견훤의 공격은 엉뚱하게도 수군을 통해 이뤄졌다.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해상전에서 왕건을 이겨보지 못한 그가 수군을 이용하여 개성 앞바다를 치고 들었던 것이다.
이 무렵, 나주 지역이 거의 백제군 수중에 들어 있었음을 감안할 때, 견훤은 나주 회복을 위해 그동안 수군 양성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게 분명했다.
일길찬 상귀가 이끄는 백제 수군은 서해를 거슬러 올라와 예성강으로 짓쳐들었다. 이 예상치 못한 공격에 우왕좌왕하던 고려군은 졸지에 예성강 주변의 염주, 백주, 정주에 정박중이던 함선 1백여 척을 잃고, 왕궁으로 밀려드는 백제군을 맞아 고전을 거듭했다.
이미 함대를 모두 잃은 터라 물위에 떠 있는 백제군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상귀는 유리할 땐 배에서 내려 육지로 치고 들고, 불리하면 배로 돌아와 바다로 나와버리는 전술을 구사하며 개성 주변을 마음대로 유린했다.
상귀의 전술에 휘말린 왕건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고, 그러는 동안 상귀는 저산도에 상륙하여 고려군이 애써 길러 논 군마 3백여 필을 탈취해 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해군장군 상애의 함선이 들이닥쳤다. 상애는 개성 앞바다를 거쳐 북쪽으로 거슬러올라 고려의 최북단 대우도(평북 용천)를 공격하였다. 왕건이 대광 만세에게 수군을 내주고 대우도를 구원토록 했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고려 수군으로선 상애의 함선과 대적이 되지 않았다.
만세가 패전하여 후퇴하자, 상애의 함선은 대우도에 머물며 육지로 상륙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고려군은 그저 해안선을 지키며 그들을 구경만 해야 했다.
그 일로 왕건이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데, 문득 반가운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당시 백령도에 귀양 가 있던 유금필의 편지였다. 유금필은 대우도가 약탈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백령도와 그 주변의 어부들을 모아 수군을 조직하고 상애의 함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유금필과 구려군의 지속적인 공격에 밀려 상애는 함대를 이끌고 퇴각하였다.하지만 상귀와 상애 형제의 해상을 통한 공격은 왕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육군에서 밀리더라도 해군에서는 항상 우위에 있다고 자부해온 왕건은 그토록 위용을 자랑하던 고려 해군이 무력하게 무너지고 안방마저 유린당했으니,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견훤의 입장에서 보면, 왕건의 해군에 밀려 턱밑 나주를 내주고 20년간 절치부심하여 강력한 해군 만들기에 주력하여 얻어낸 회심의 역습이었다. 건국 이래 대야성을 줄기차게 공략하여 20년 만에 그 숙원을 이뤘던 사실에서 보았듯이 임해해전은 견훤 특유의 근질김과 무인 정신이 만들어낸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고창의 고려군 3천이 이미 견훤의 대군에 포위당한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왕건은 쉽사리 고창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고창 주변은 완전히 백제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응책에 부심하던 왕건은 여러 방책을 강구하였으나 뽀족한 타개책을 찿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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