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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210 : 발해의 역사 13 (제5대 성왕 대화여) 본문
한국의 역사 210 : 발해의 역사 13 (제5대 성왕 대화여)
제5대 성왕 대화여
성왕(成王, ? ~ 794년, 재위 : 793년 ~ 794년)은 발해의 제5대 왕이며, 이름은 대화여(大華璵)이다. 문왕의 손자이다.
793년에 포학한 행동을 한 대원의가 왕위에서 쫓겨나자 그 뒤를 계승했다.
연호를 중흥(中興)으로 고치고 수도를 동경용원부에서 이전의 도읍지였던 상경용천부로 천도하였다. 발해 멸망까지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왕위를 계승한 지 몇 달 만에 사망한다. 그 재위 기간은 반년에도 못 미쳤다.
가족관계
참고
발해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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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상) · 고왕 · 무왕 · 문왕 · 대원의 · 성왕 · 강왕 · 정왕 · 희왕 · 간왕 · 선왕 · 대이진 · 대건황 · 대현석 · 대위해 · 대인선 |
결국 대원의는 즉위 한 지 1년 만에 '국인'에 의해 피살되었고 대화여가 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여기서 국인이란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왕위계승에 관여한 점으로 보아 지배층, 엄밀히 말하면 권력집단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국인은 주로 왕족을 의미하겠지만, 문왕 사후의 일련의 사건을 권력투쟁의 과정으로 파악할 때 여기에는 귀족세력까지 포함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국인은 폐왕을 살해하고 성왕을 추대하였다는 점에서 발해 지배층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원의에 반대하여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을 의미한다.
대원의는 건국집단 출신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즉위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때의 국인은 문왕대 추진된 체제정비 과정에서 성장한 귀족세력을 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정비는 당례와 율령의 수용을 통해 이루어졌으므로, 이들은 대당관계의 개선과정에서 사면된 친당파가 주축을 이루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배층 일반을 의미하는 국인과 구분하여 대원의 지지세력에 대립되는 이들을 잠정적으로 국인세력으로 표현하기로 한다.
그러나 대원의의 피살과 성왕의 즉위, 그리고 상경 환도로 이어지는 이후의 정치과정이 국인세력의 승리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다. 성왕이 국인세력에 의해 추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경 환도 후 곧바로 사망한 사실은 자연사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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