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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허수아비춤> 조정래 작 : 3. 돈은 귀신도 부린다(3)

 

 

 

<허수아비춤> 조정래 작

 

 

 

 

 

3. 돈은 귀신도 부린다(3

 

"이봐, 자넨 돈 힘이 얼마나 크고 세다고 생각해?" 윤성훈이 박재우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예에......?" 박재우와 함께 강기준도 놀라 윤 총본부장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놀랄 것 없어. 이건 사적 입장에서 묻는 거야. 뭐가 좀 헷갈려서 말야.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어." 윤성훈은 데이터에 그려진 도표를 볼펜 꼭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갑작스레 말머리를 돌렸다.

 

" 예 저도 그런 생각이 좀 들기는 했습니다."

 

"글쎄, 그렇다니까." 윤성훈은 반색을 하면서,

 

"무슨 말 뜻인지 알겠지?" 박재우를 빤히 쳐다보면서 강한 탐색 욕구를 품은 눈길을 보냈다.

 

"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지요. 돈은 귀신도 부린다!" 박재우는 마치 무슨 결의문의 구호를 외치듯이 그는 앉음새까지 고치며 굳센 어조로 말했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윤성훈은 물음표를 달았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강기준은 느낌표를 달았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하물며 그깟 사람쯤이야. 이 얼마나 기막힌 말입니까. 돈이면 인간사에 안 될 것이 없다는건데, 그 생략이 참으로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 생략법은 곱씹을수록 문학적입니다. 생략에서 오는 운치가 아주 그만이거든요." 박재우는 어떤 시구의 감동에 취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응, 그 말 듣고 보니 그렇구. 자본주의도 아니었던 그 옛날에 벌써 그런 말이 나온 걸 보면 인간 세상이란 예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라니까."

 

"우리 속담에 돈에 대한 게 꽤나 많은데,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는 어떻습니까?" 박재우의 말에 윤성훈은

 

"허......!" 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건 이런 게 있는데,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 윤성훈이 말했다

.

"예,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강기준이 말했다.

 

"돈 있어 못난 눔 없고, 돈 없어 잘 난 눔 없다, 고도 했어요." 박재우가 말했다.

 

"그걸 요즘 말로 하자면, 돈은 살아 있는 신이다, 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전지전능한 힘이 여기 어디든 안 통하는 곳이 없다 그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 어떤 조직, 그 누구한테든 통하고, 먹히고, 효과가 납니다. 그건 돈이 생겨난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이 인간을 지배해 온 인간의 역사를 다시 확인시켜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박재우의 대답은 태봉그룹에서의 경험자 답게 자신에 차고 확실했다.

 

"그래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가끔은 있지 않을까요?" 강기준이 말하자, 박재우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아주 드물게 한둘씩 있지. 그러나 그런 존재들은 전혀 문제가 안돼. 왜 거, 우리 경제학의 유치원생 교본에 나오는 것 있잖아. 그 위대한 그레셤 법칙,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런 거북하고 깔끄러운 존재들은 자체 내의 힘으로 구축되고 말아. 차차 직접 움직여 보면 아주 실감 나게 알 수 있을 거야." 박재우는 노련한 포수 같은 여유로움을 보이면서 입술로만 웃었다.

 

"그것 참 믿기 어려운 일이야. 저 옛날부터 아부하고 뇌물써서 손해 보는 일 없다고 했지만, 이런 데까지 뇌물이 먹혀 들어가다니......" 윤성훈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도표 위의 두 지점을 볼펜 끝으로 콕콕 찍었다.

 

" 예, 총본부장님 말씀 일리가 있습니다. 다른 데는 모두 뇌물이 통하더라도 최소한 그곳에는 통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신 거지요. 저도 처음 설마했었고, 한편으로는 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다른 데와 별다를 것 없이 통하는 걸 보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박재우가 떨떠름하게 웃으며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 돈 힘이 참으로 무섭고 위대하군." 윤성훈도 쓰디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어느 인류문화사가가 말했습니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한 권력은 돈이었다. 이 세상 만물은 태양 광선의 변형으로 생겨난 것이고, 만물이 태양의 지배를 받듯이, 그 말대로만 생각하시면 별로 실망하실 것도 없습니다. ... 중략...특히 미국의 현실 속에서 대통령들이 어떻게 자본가들의 손에 의해서 가려지고 뽑히고, 좌지우지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데, 그거 아주 서늘하고 섬뜩합니다. 또한 일본의 정치권력도 자본가의 관계에서 별다를 것이 없고,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도 모두 어슷비슷하게 이웃사촌 관계입니다. 세계 자본주의 흐름이란 유럽에서 미국을 거치고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왔으니까. 그건 이미 오래된 오염 상태였던 거지요. 그러니 그런 데까지 통한다고 해서 별로 놀라실 거 없습니다. 어쩌면 자본주의 역사가 가장 짧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더 깨끗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긴 그래. 자본주의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저 까마덕한 2천여 년 전에 사마천이 <사기>에서 말했었지.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 그러니 자본주의야 더 말해 뭐 해."

 

"예, 옛말부터 점치고, 관상 보고, 사주팔자 풀이할 때도 건강운이나 출세운 보다도 재물운을 첯째로 쳤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날그날  먹고산다는 게 그만큼 중요하고, 먹을 것은 돈이 있어야 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불변의 진리지. 매일 세 끼 밥 제대로 먹고 살아 있어야만 출세운이고 건강운도 필요한 거니까. 근대 말야, 돈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이런 방대한 조직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장악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라고 치열한 경쟁을 거쳤고, 앞으로도 더 높게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거든. "

 

"예,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다 엘리트고, 꿈도 야망도 크지요.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해야만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돈을 쓰려고 해도 절대로 안 받더리.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은 돈 쓸 구멍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입니다. 권력이 큰 자리일수록, 자리가 높은 사람일수록 확실하게 믿지 않는 돈, 조금이라도 뒤탈이 날 우려가 되는 돈은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자기들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절대 원칙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맨 먼저 착수해야 할 일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그 선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그들이 확실하게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첯째, 우리 일광의 돈은 절대로 뒤탈이 나지 않는다. 둘째, 만에 하나 로비 증거가 드러나도 그 상대를 절대 불지 않고 100% 보호한다. 이 두가지 사실이 그들 사회에서 암암리에 알려지게 되면 우리의 일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되고 순풍에 돛을 달게 됩니다. 태봉그룹의 성공은 그 두가지를 철두철미, 완전무결하게 해냈기 때문입니다.."

 

'옳아, 그거 틀림없는 사실이야. 우리가 그동안 관계해 온 사람들도 그것을 굉장히 신경 썼거든. 그러지 않고서야 그 좋은 철밥통을 어떻게 지켜내겠어. 지난번 회장님 사건 때도 보니까 변호사를 통해서 가는 건 받아도 우리가 직접 시도하는 건 절대 안 받더군.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보신주의야. 근대 그들이 상대하는 데 학연.지연.혈연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아시다시피 그들에게도 절대적입니다. 백 마디의 말, 백 번의 만남을 능가하는 믿음이 당장 생겨버리니까요. 그 세가지를 기본으로 해서 로비 대상에 따라 배치해야 합니다."

 

"대상이 수백 명으로 끝나는게 아닌데, 그거 보통 문제가 아니겠군."

 

"학영.지연.혈연도 중요하지만 우리 그룹에서 차지하고 있는 직위도 중요합니다. 직위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 세 가지를 능가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룹 수백 명 임원들은 기본적인 로비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2차적으로 19만 사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로비 대상자들과 학연.지연.혈연이 연결되는 사람들을 찿아내야 됩니다. 그 복잡한 일은 컴퓨터가 간단하게 해결해 줍니다. 그러면 또 몇백 명이 획보될 겁니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뭐가 문젭니까, 뽑으면 되지요."

 

"허어! 이 사람 이거, 보기보다 훨씬 시원시원하고, 부드럽게 말도 잘하고 그러네."

 

'아니 그럼 답답해 보이고, 말할 줄도 모르게,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지요?"

 

" 그 눈매하고, 입매하고, 거만하고 고집스런 인상아닌가? 강기준 자네 보기엔 어떼?"

 

"괜히 곤란한 질문 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직계 선배에다 직속상관인 거 모르시는 모양이지요?"

 

" 그래, 눈치 빨라 좋네. 보신주의는 공무원들의 전매특허만이 아닌 것 용케 알고 있군."

 

" 말이 났으니 말이지 거만하고 고집 세게 보이는 건 바로 총본부장님이십니다."

 

'그건 순 모략이야. 사원들이 나한테 붙인 별명이 뭔지 알아? 한명회야. 그 간신으로 유명한 한명회 말야. 그래도 가방끈 긴 티내느라고 간신배라고 하지 않고 그리 봐준걸 고마워해야지. 그런 간신한테 아첨하는 기술만 있지 거만하고 고집이 있을  리 있어? 근데 말야, 저쪽에서는 로비 대상자들이 퇴직한 다음까지도 잘 봐주고 의리를 지킨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무슨 소리지? 사실 그런가? "

 

"예, 그거 사실입니다. 국세청에서 퇴직해 세무사 개업을 하고 도움을 청하면 계열사 밀어주고, 검찰에서 물러나 변호사 개업하면 큰 사건 맡겨서 수임료 크게 인심쓰고 그러는 식이죠. 그렇게 하면 그 효과가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십득이 됩니다. 일 처리를 잘하는 것 말할 것도 없고, 그 의리 있는 행위가 그 전 직장에서 순식간에 퍼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아 진짜 의리 있구나! 하며 감동하게 되고, 내가 나가도 도와주겠구나! 하는 위안과 믿음을 갖게 되고, 그런 좋은 감정은 로비를 통해서 얻는 효과보다 몇 배 큰 신뢰를 얻게 합니다. 그건 양쪽 다 흡족하게 해주는 감동 드라마인 셈이죠."

 

"그런데 로비 대상이 저쪽 태봉 쪽하고 상당히 겹치게 될 텐데, 그건 어찌 될까?"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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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하수아비의 춤>은 사정상 소개를 종료합니다. 궁금하시면 책 사서 한번 읽어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