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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허수아비춤> 조정래 작 : 3. 돈은 귀신도 부린다(2)

 

 

 

 

 

<허수아비춤> 조정래 작

 

 

 

 

 

3. 돈은 귀신도 부린다(2

 

박재우가 회장 앞에서 한 브리핑 내용은 엄청난 내용이었다. 회장은 브리핑 내용를 듣고 대만족을 표시하면서 즉시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동은 결렸는데, 회장님께 브리핑 올린대로 다 그렇게 완벽하게 해 낼 자신이 있소? 기획총장은." 

 

 

 

총본부장 윤성훈은 새 명함을 만지작 거리며 다시 그 말을 꺼냈다.

 

"총본부장께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이신 모양이지요?"

 

기획총장 박재우는 보일 듯 말 듯한 엷은 웃음을 피워 내며 총본부장을 마주 쳐다보았다. 양쪽 입꼬리에 모아지는 그 흐린 웃음에서는 자신감을 넘어서는 오만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게 예상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나고 어마어마해서 그렇소. 회장님께서 찰떡같이 믿고 계시고, 기대가 크신 것도 그렇고......" 

 

윤성훈은 무슴 말을 더 하려다가 윗아래입술이 눌리게 입을 꾹 다물었다. 말없이 주시하고 있던 강기준은 윤성훈이 삼켜 버린 말이 뭣인지 직감적으로 알 것 같았다. 우리도 끝장이야! 이 말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실제 빅재우가 회장한테 브리핑 한 전체 데이터를 본 다음부터 며칠 동안 잠자리가 편치 못햇던 것이다. 전무급으로 벼락 출세한 것을 알게 된 아내는, 와아, 당신 멋져, 근사해, 위대해 보여, 두 팔을 번쩍 뼏혀 올리고 환호하다가, 당신 이뻐, 이뻐, 이뻐 하며 키스를 퍼부어 댔는데, 그 열도가 첯 키스 이후 최고였던 것이다.  남편의 출세가 아내의 성욕을 그렇게 자극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내가 그렇게 환호하고 행복해 했는데, 그 황홀한 인생이 끝장난다는 건....... 그만큼 박재우가 공개한 기획은 어마어마하고 엄청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케일이 작으니까 지난번 회장님께서 실형을 받으셨지요......"

 

박재우가 총본부장에게 무엇을 내던지듯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강기준과 윤 실장은 박재우의 그 말에 순간적으로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뭐라구......"

 

윤실장은 뻥한 얼굴로 박재우를 건너다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박재우의 그 말는 윤성훈의 심장에 꼿는 비수였고, 면상을 후려치는 주먹질이었으며, 비웃음 가득한 멸시였고, 오만방자한 도전이었다. 지난번 비자금 사건 수습을 총책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윤 실장이었던 것이다. 몇 개월이나마 회장이 실형을 받게 한 것은 윤성훈이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는 기억이었고,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무능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광그룹 남회장이 수천억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6개월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을 때 사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세상 사람들도 대지진이 일어나거나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사원들의 입장에서는 대그룹 총수가 그만한 비자금은 으레 조성하는 것이라며, 새 정권이 엄포 한 번 놓는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태평치고 있었고, 국민 제위들께서는 나라의 경제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재벌 회장님을 벌주는 것은 국가와 국민경제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니 있을 수 없는 일로 오랜 세월 믿어 왔던 그대로 무관심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기업체의 임원이지만 결국은 종업원에 불과한 윤 실장의 회장에 대한 거짓 충성심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교도소로 끌려가는 회장님을 뒤쫓아가 첯 번째로 면회를 한 것은 물론 윤성훈이었다. 모두가 제 발못입니다. 제가 죽일 눔입니다. 회장 앞에 무릎 끓은 것은윤성훈은 특별 면회 시간 30분 동안 피토하듯 이 말을 울부짖으며 이마를 바닥에 짓찧어 댔다. 30분 동안이나 그랬는데도 그의 이마가 얼부풀고 피멍이 잡히는 정도로 끝나고,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은 것은 그와 회장 사이에 다행히 탁자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탁자 없이 바로 시멘트 바닥이었으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아니다. 다 내 불찰이다. 내가 너무 방심한 탓이다. 그 옛날 임금이 대홍수를 만나거나, 극심한 가믐을 치르게 되면 만 백성을 향해 경건하고 진지하게, 모두 짐의 부덕의 소치다. 했던 것처럼 회장은 충성스런 부하를 달랬다. 그래도 부하의 애끓는 통곡이 그치지 않자, 너는 내 자식보다 났다. 아니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

 

노발대발 불호령이 터져 나와야 할 회장의 입이서 나온 소리였다. 아무리 험한 욕을 먹어도, 걷어채여도, 내쫓겨나가도 할 말이 없는 판국에 윤성훈은 뜻밖의 말을 하사받은 것이었다. 그 황송하기 그지없고 성은이 망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은 면죄부 수여인 동시에 재신임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윤성훈은 더욱 감격하여 새롭게 박치기를 해댔다. 회장의 그 말 전까지가 사죄의 박치기였다면, 그 다음부터는 감읍의 박치기였다.

 

그 특별 면화 사연이 그룹에 알려지자 사원들은 일단 놀랐고, 곧 두 쪽으로 갈라졌다. 언제 윤성훈이 회장을 염려했었느냐 싶게 그들의 관심은 윤성훈에게 집중되었다. 그 통곡 박치기가 진짜다, 가짜다 하는 어린애 같은 다툼이었다. 그눔은 타고난 간신배다. DNA가 송두리째 간신배 DNA다. 온 몸의 세포하나,실핏줄 끝의 피 한 방울, 잔뼈 마디마디까지 간신배의 인자로 가득차 있지 않고서야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철저하게 꾸면진 연국이고 쇼다. 아니다. 그건 너무 악의적인 험담이고 모함이다.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진실이 있고 진심이 있는 법이다. 회장님을 가까이 모신 사람으로서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일 수 있다. 그게 연극이고 쇼라면 안성기든 더스틴 호프먼이든 일류 배우들을 불러다가 어디 한 번 시켜 봐라. 아무리 나무 탁자라고 해도 30분씩 박치기를 해댈 수 있는 일인가.

 

 

그런가운데, 남회장은 한 달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출감 사유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병보석이었다. 그리고 약방에 감초처럼 덧붙여진 한마디는,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은 고무도장에 새겨서 필요할 때면 마구 찍어 대거나, 녹음 테이프에 녹음해서 반복 반복 또 반복해 가며 틀어 대는 것처럼 벌써 40여 년의 전통을 바랑하며 그 생명력을 과시해 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그 반복 행위를 지겨워하지도 않고, 신물 내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 주고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큰 기업이 잘되야 우리도 잘살게 되지. 대중들은 이렇게 동의하고 동조하면서 재벌들이 저지르는 죄를 가볍게 여기고, 그들이 받는 사법적 특혜에도 지극히 관대했다. 국민 경제를 위해서..., 그 기업 옹호론과 재벌 보호론의 주문은 그 효력 좋고 생명력 강대하기가, 우리를 믿어야만 재물운이 트이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그 한마디로 2천 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배부른 번성을 누려온 종교들의 질긴 생명력과 맞먹었다. 신문들이 앞장서서 설파하고, 법관들까지 활용하고 나서는 그 기업 옹호론과 재벌 보호론은 자본주의 한국에서 출현한 신통력 좋은 신흥종교이기도 했다. 그 교리를 맹신하고 추종하는 대중들의 관대함에 실려 출감한 남 회장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우리도 태봉그룹처럼 해치워!"

 

박재우는 윤성훈에게 그지없이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듣기 싫어하시는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총본부장님께서 너무 염려하시는 것 같아 확실하게 자신감을 가지시라고 일부러 그런 자극적인 말을 한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시고,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재우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흥,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백기를 들도록 술수 부린 것 대충 감잡고 있어. 내가 무방비 상태였다가 당했다만, 한 번이지 두 번은 안돼. 기다려, 그 은혜 톡톡히 갚아 드릴테니까.'

 

"됐소, 나도 확신이 없거나 자신감이 없으면 무슨 일이나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오. 지난번 회장님 문제는 내 무능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니까 두 번 다시 씹어 대지 마시오!"

 

박재우의 의도적인 얕잡기에, 단칼에 기를 꺽어 놓고 말겠다는 윤성훈의 의도가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 옛, 죄송합니다."

 

'이 짜식, 시건방지게 까딱대고 자빠졌어. 깝쭉거리지 마, 단물만 빠지면 넌 쓰레기통행이댜. 쌔키, 종이컵만 일화용인줄 아냐.'

 

윤성훈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부드러운 웃음을 피워 내며 박재우를 내립떠보고 있었다. 

 

옳지, 자알들 한다. 어차피 수컷들이란 으레 시기하고 질시하고, 견제하고, 뒷다리 걸고, 으르렁거리고, 그러다 안 되면 치고받고 하는 것 아니더냐. 그게 피할 수 없는 수컷들의 사회생활이라는 거조, 수컷들의 비애고 서글픔이고 운명인거지. 그걸 거창하게 미화시켜서 역사라고도 했지. 수컷들의 긴 세월에 걸친 싸움판, 그게 역사라서 history라 했고, 그건 his story에서 s 하나가 생략되어 합해진 말이라는 어원 설명은 그럴듯해. 저 박선배, 아주 제법 이네. 허나 너무 빨리 기 세우는 게 아냐? 윤성훈이 학벌이 당신보다 한 급수 낮다고 깔보거나 얕잡아 보고 덤벼서는 된통당하는 수가 있어. 학벌이 좀 낮은 만큼 딴 재주가 많은 사람이야. 고개를 숙임막하고 앉은 강기준은 눈을 좌우로 칩떠보며 두 상사의 기싸움을 관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