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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허수아비춤> 조정래 작 : 2. 술수의 숨바꼭질(1)

 

 

 

 

 

<허수아비춤> 조정래 작

 

2. 술수의 숨바꼭질(1) 

 

 

 

 

 

일광그룹 강기준은 태봉그룹의 동문 선배 박재우를 영입하기 위해 윤성훈 실장으로부터 밀명을 받고 박재우를 서울 근교의 한적한 곳으로 모시고 가는 중이었다. 태봉 그룹은 소위 말해 일류 기업이고 일광그룹은 이류 기업에 불과하였으나 태봉 그룹의 핵심 멤버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함으로써 일광그룹의 회장이 구상하고 있는 특별사업, 즉 제2창업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이었다.

 

윤실장은 강기준으로부터 '이번 영입건의 성사여부에 따라 자네 운명이 달렸다는 것을 알아라'는 특명을 받았던 것이다. 만약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윤실장은 강기준에게 조폭보다 더 잔혹한 파면의 칼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폭은 배신자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지만 회사는 무능자에게 인사권이란 칼을 휘두른다. 회사는 조폭보다 더 매정한 조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윤실장은 이번 일의 성사일을 그룹 회장님의 지상명령이라며 강조했던 것이다.

 

강기준이 그룹회장을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룹의 회장이란 어떤 존재인가? 살아있는 임금, 아니 그 보다도 훨씬 더 높은, 살아 있는 황제가 바로 회장님이 아니었던가. 대통령은 그저 그런 존재인데, 황제는 그 옛날 옛적 전설같은 칭호일뿐인데도 왜 그렇게 아득하게만 보이는 것일까.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 마음먹은 대로 갈아 치우고, 가려 뽑고 하는 것이지만 황제란 투표를 무시하고 백성의 머리 위로 뚝 떨어진 하늘의 아들이라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다.

 

'회장님은 일광그룹의 살아 있는 황제이며 하늘이셨고 태양이셨다. 고대 로마의 황제처럼 손가락 하나로 생사를 갈랐던 것처럼 일광그룹의 회장도 손가락질 한 번씩으로 생계 수단을 몰수하고 박탈해 버리는 절대권을 언제던지 휘둘러댈 수 있었던 것이다. 일광그룹 19만 사원들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회장님 앞에서는 호랑이 앞에서 토끼요, 독수리 앞에 참새였다. 그 옛날 임금이나 황제 앞에서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고개를 들 수 없듯이 회장님 앞에서는  그 누구던 간에 감히 눈길을 세울 수가 없었다. 모든 사원들은 회장님의 기척만 느껴지면 먼 발치에서부터 벌써 허둥지둥 피해 서고 물러서기 바빴다.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도 허리가 반으로 접히는 절을 해야 했다. 그것은 조폭도 마찬가지고 대통령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절대권력을 가진자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듯이...그런 일사분란한 충성은 누가 가르치고 사켜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병대 신병 훈련에 못지않게 호된 신입사원 연수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었고,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전체 사원 연수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 적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도 작은 가재가 바위를 질 줄 알고, 작은 여자도 남자를 태울 줄 알더라고 모든 사원들은 타고난 생존술을 그렇게 잘들 발휘하고 있었다.'

 

숲 속에 아름다운 풍경화 처럼 2층 통나무집이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그 집은 차도 팔고, 밥도 팔고, 술도 팔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종합선물세트였다. 1층은 주로 연인들이 찿아 오는 카페 스타일이고, 밤에만 즐길 수 잇는 은밀한 술자리는 2층에 있으며,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밤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도 좋아 좀 특별한 경우에 강기준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둘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선택하고픈 마음은 언제나 동일한 마음이었다. 앞 정문을 피해 뒷쪽으로 난 통로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간 그들은 마주 앉아 상이 차려지자 술을 돌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서로를 탐색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왜 불렀는지, 왜 만나자고 하엿는지가 궁금하였다. 술이 몇 순배가 돌자 박재우가 단도입적으로 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뜸 들이지 말고 핵심만 앗싸리하게 말해!"라고 했다. 강기준은 예기치 못한 선배의 공세에 당황하면서도 쓴 웃음을 지으면서 양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쉼 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말했다.

"선배님을 우리 회사로 모시고자 합니다."

그러자 박재우는

"뭐, 뭐라구?" 박재우는 말까지 더듬으면서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자네 혹시 정신 나가지 않았어?"

"예, 놀라시는건 당연하실 겁니다. 그러나 이건 우리 그룹에서 진지하게 간청하는 인사 문제입니다."

"뭐, 진지하게? 그게 바로 미친 짓이다 그거야. 일류 태봉 그룹에서 잘나가고 있는 사람을 이류 일광그룸으로 오라고? 자청해서 일류에서 이류로 투신자살하는 인생도 있다던가? 자네 행성에서 왔어, 목성에서 왔어? 으하하하하...."

강기준은 일관 그룹이 이류라는 말에 대한 굴욕을 참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가 그쪽보다 이류였던 것은 딱 한가지, 세상 관리 조직이 허술했던 것 뿐이었죠.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고 나섰어요. 그쪽을 능가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등하게는 만들 계획입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필요로 하는 겁니다. 선배님도 그쪽에서 부지하세월로 2급에 머물러 있느니 우리 쪽에서 바로 특급 대우를 받으면서 멋지게 신분 상승하는 거고, 그게 훨씬 더 해피한 거 아닌가요? 인생 도약의 절호의 찬스인데 무조건 무시할 일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자 백재우는,

"특급? 그거 누구생각이야?"

"누구긴요, 이거지요."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두 번 치겨 올렸다.

"그런데 그 일이 쉽게 될까.... 남회장이 그만한 배짱이 스케일이 있는 건지...."

박재우는 일광그룹 남 회장의 그릇 크기를 환히 안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강기준은 자기네 회장을 우습게 보는 박재우의 그런 태도에 강한 반감을 느끼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회장 편을 들어본 것은 입사 이후 처음이었다. 남 회장은 큰 기업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았고, 그런 인물들이 갖고 있는 결점들을 고루 지니고 있었다. 유전인듯 돈 욕심이 끝이 없었고, 안하무인이며, 적당히 설렁설렁 한 공부 탓인지 지식에 대한 열등감이 적잖았고, 그런 만큼 학벌 두드러진 사원들에게 이따금 폭언을 해댔고, 논리나 합리성보다 밀어붙이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어느때 한 번 마음이 우러나서 회장을 편들거나 옹호하고 싶은 때는 없었던 것이다.

 

강기준이 말했다.

"결심이 무서우니까 우습게 보지 마세요.마음을 그,렇게 작정한 건 분명한 이유가 잇는 겁니다. 지난번 일 말입니다. 똑같은 사건이었는데도 우리 회장님만 실형을 당햇습니다. 그때 우리 사원들도 충격을 받았는데, 정작 회장님이 받은 충격은 얼마나 엄청났겠어요. 우리 화장님은 두 번 다시 그런 억울하고 분한 꼴을 당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나섰다 그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들 상속 문제가 있어요.  잘 아시다시피 상속이란 재산권만 말하는 게 아니자노아요. 그 중대사를 골치가 아프지 않고 스무스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도 그 일은 반드시 단행해야 한다고 마음 먹은 거지요. 우리 회장님 뚝심과 밀어붙이기는 이미 세상이 다 아는 것 아닌가요? 만약 제가 그 양반이라면 저도 그런 결심을 했을 겁니다. 선배님은 어떠세요?" 

 

박재우는 팔짱을 낀 채 여러 생각을 하다가,

"글쎄, 애길 듣고 보니 그런 방어책을 강구하고 싶은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군." 라며 술잔을 들어 입술만 축이고는

"헌데, 누가 날 찍었는지 모르지만, 헛짚으셨어. 아까 말한 특급 대우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조건을 내세워도 난 안 가. 그런 복잡 미묘한 조직을 갖추겠다면서 자네 생각은 참 단순하고 순진해서 좋군. 내말 무슨 뜻인지 발 못 알아 듣겟지. 그건 차차 알게 될 거고, 근데 자네 말야,자네 우리회사로 픽업해 줄까? 애기 다 끝났으니까 이만 가지." 그러면서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아니 선배님 모처럼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강기준은 이 말을 목구멍으로 구겨 넘기며 허둥거렸고 박재우의 전신에 서린 시퍼런 서슬 앞에 불기 쬔 오징어처럼 바짝 오그라 들었다.그는 더는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박재우 뒤를 따라나왔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꼼짝 못하는 것은 그가 선배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이 뜻밖의 카리스마에 눌린 탓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강기준은 밤새 잠을 뒤척이며 악몽을 꾸었다. 단순하고 순진해서 좋군, 우리 화사로 픽업해 줄까? 백재우가 웃으면서 조롱하고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그렇게 한 방에 당하고 말아? 독기 없이 뭐하는 거야, 일단 공격을 시작햇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지. 다시 가! 빌든 불알을 낚아채든 반드시 끌고와, 너 모가지 둘 아니지. 노숙자 꼴 되고 싶지 않거든 당장 다시 찿아가! 윤실장이 성난 셰퍼드처럼 으르렁거렸다.

 

윤실장의 별명은 '특급 충견'이었다. 그는 그만큼 화장에게 충성을 다 바쳤고, 그 대신 사내에서 귀족 신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물론 재벌 기업에서 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충견이 아닌자들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 옳았다.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얻어먹더라고 경쟁의 첩첩산중에서 동료를 짓밟고 선배들을 무찌르며 임원 쟁탈전에 승리한 사람들은 이모저모로 부지런하게 충견 노릇을 잘한 분네들임이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윤실장은 단연 금메달감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회장 자리 하나만 빼놓고 나머지 자리는 모두 다 차근차근 차지해 나가고 싶은 욕망의 용광로가 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일은 출세의 지름길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초장에 일을 망쳐버리다니. 자시느이 생사여탈권은 회장 이전에 윤실장의 손아귀에 쥐어 있었다. 윤실장은 조직의 특성상 실장으로 불릴 뿐이지 그 직급은 계열사 사장급이었다. 거기다가 회장의 두터운 신임까지 얹혀져 그 실권은 계열사 사장들을 게걸음치게 만들 지경이었다. 그러니 윤 실장이 자신을 노숙자 신세로 만들어 버리기는 두꺼비 파리 삼키기보다 쉽고, 뱀 개구리 삼키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점점 심하게 떨리고, 자꾸 조그많게 기어들어가고, 끝내는 울먹인까지 섞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기준은 윤 실장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그는 불현듯 무릎까지 끓고 싶은 감정이 솟았다.

"더 보충하지 그래."

"...."

더 보충하라는 말뜻이 무언지 강기준의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양기나 체력을 보충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보충하라는 말이었다. 그건, 너 실력 없어, 하는 말이었고, 곧 능력 없어, 하는 뜻이었고, 무능력하니까 그만둬,의 다른 말이엇다.  일광그룹에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대우를 하느라고, 파면이야, 사표 내, 그런 몰인정한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수양 좀 해야겠어, 하면 지방 근무 발령이었고, 세계사 공부 좀 해야 겠어 하면 그것은 해외 파견 근무였다.

"더 만나볼 가망도 없다는 그건가?"

"예예...., 그렇게 느껴집니다."

 

윤실장의 안개 자욱한 태도에 강기준은 더욱 몸이 달아 맞잡고 있는 손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너 왜 이래, 너 왜 이래, 떨고 있는 자신이 꼴이 너무 비참하고 초라해 그는 두 손을 힘껏 마주 잡았지만 떨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가슴 깊은 속에서 타고 잇는 용광로의 열도도 윤실장 못지 않았다.윤실장은 기본 조건이 자기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는 대학 급수부터 차이가 났고, 전공도 기업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법대 출신일 뿐이데다, 더구나 외국 박사 학위도 없었다. 세칭 일류 대하고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나온 대학은 최일류 법털이었고, 윤 실장이 나온 대학은 법잉류 곰털일 뿐이었다. 그기다 외국 박사 학위 소지자와 학부 출신의 차이는 또 어떤가. 다른건 다 접어두고 영어 하나만 가지고 따지더라도 외국 바이어들과 영어가 잘 안 되는 윤 실장은 세계회 시대, 글로벌 시대의 인물일 수 없었다. 그는 나이가 좀 많아ㅓ 인재가 모자랐던 허술하고 얼멍얼멍했던 시저르이 덕을 본 것 뿐이었다. 학력괴 실력으로 한다면 윤 실장보다 자신이 먼저 계열사 사장에 올라야 했다. 그런데 휘황찬란하고 황홀한 꿈이 산산이 깨지려 하고 있었다. 계열사 자장 자리에 오르면 이 사회의 최고 계급, 골든 패밀리가 되는 것이엇다. 온갖 고생을 다해 그 고지를 향한 고속도로에 올랐건만, 여기서 탈락을 한다면...

"알았어, 나가 봐."

"예에...?"

강기준은 제물에 화들짝 놀랐다.

"알았으니 나가 보라고."

병신같이 일을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바탕 당하고 나면 오히려 홀가분하게 책임을 모면하게 되는데,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불안은 견디기가 어렵게 커지고 있었다.

 

열흘이 지나도 윤 실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강기준은 자신이 그 일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건 군대 기동 훈련에서 본대를 잃고 홀로 산속을 헤매는 절박함이었고, 친구들에게 왕따 당한 아이릐 절망스러움이엇다. 회장이 그 중대한 일을 포기할 리가 없었고 머지 않아 강기준은 부서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서가 바뀌면 사장의 꿈은 뜬구름이요, 물거품이 되기 쉽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