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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마음의 평안

우면산의 새벽 20 (까치 설날의 기억...)

 

 

 

우면산의 새벽 20 (까치 설날의 기억...)

 

 

 

 

 

2월 1일 아침 7시 경 우면산을 오르기 위해 남부순환도로를 에서 올라가는 입구를 지나가다가 본장면이다. 가로수를 잡고 어떤 중년 아줌마가 울고 서 있었다. 년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남부순환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고향을 가기 위해 몰려들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 아줌마가 왜 울고 서 있었는지는 알 수는 없었으나,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차량을 타고 가다가 다툼이 일어나 차량을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정신이 좀 이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괜한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고, 추근거린다고 봉변을 당할 수도 있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요즘 가뜩이나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이 유별나게 사회 여론화 되어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는 세상이라 모르는 여자에게 함부로 말 거는 것도 무서울 지경이다.

 

울부짖는 모습이 무언가 기막힌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특히 명절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속사정은 궁금하였지만 그냥 지나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까치설날이라 하여 가족 친지들이 오면 밤이 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설빔으로 시장에 가서 검정 학생복이라도 새로 사오면 그날은 저녁 내내 그 교복을 몇 번이나 입어보고 양말도 신어보고 새로 사온 운동화도 신어 보기도 하였다. 저녁 내내 집안에 넘치는 전 냄새를 맡으며 파전, 두부전, 고무마전을 먹으며 어머님 곁은 지켰고 아버님께서 밤을 까면 같이 옆에서 밤을 까기도 하였다. 친척들의 웃음 소리가 집안에 넘쳐 흘렀고 나는 옆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긴긴 까치설날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고 아침 차례 제사상 차리는 소리에 잠이 깨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어제 입어 보았던 새 옷을 입고 차례를 올렸다. 무슨 축문을 외우시던 아버님은 무슨 기도를 하시는 것처럼 가족들의 무사안녕을 조상님들께 빌었던 것 같다. 어른들께 새배를 올리고 나면 나는 밤과 대추를 주머니에 넣고 마을 친구들을 찿아 밖으나 나갔다. 골목길이나 공터에서 친구들이 모이면 서로 새 옷.신발 자랑에 바빴고, 딱지치기, 구슬치기, 못치기, 팽이치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연을 만들어 연싸움도 하였고 끓어진 연이 동쪽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가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던 생각이 난다. 대나무 우산대 손잡이를 갈라 가늘게 적당하게 손질한 다음 연 뼈대를 만들고 모양을 내어 고정시키고 문풍지를 발라 연을 만들었는데, 집집마다 연의 모양이 각기 전통과 취향에 따라 달랐다. 바람도 적당히 북서풍이 불었고 동구밖 금호강변 둑에서 친구들과 연날리기를 하던 생각이 난다. 연은 사각연, 삼각연을 만들어 무늬를 그리고 꼬리를 길게 붙이고 바람을 이용하여 달리면서 실이 감긴 감개를 풀거나 돌리면 연은 바람을 받아 하늘로 높이 올랐다. 그래서 동네 친구들이 어른들을 졸라서 너도나도 연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가끔 연싸움도 하곤 하였다. 그러나 매번 연싸움에서 이기기도 하지만 실패 횟수가 늘어나자 각자는 갖가지 방법을 강구하였다. 문제는 연줄이 누가 강하냐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연줄에 강한 날카로운 접착제를 발라 연줄을 강화하는 방안이었다. 당시 그 방법은 유리 조각을 주워 절구에 빻아 가루내어 풀과 섞어 실에다 입히고 몇 시간이나 하루 정도 말리면 완성되었다. 유리가루 풀을 먹인 실은 누런 색깔을 띠었는데, 누른 연줄 색깔만 보고도 다른 친구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처음에는 멋 모르고 나와 연싸움을 하다가 당하게 되자 그다음 부터는 나와 연싸움을 피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무기는 다른 친구들의 연을 대부분 끓어버렸고, 실이 끓어지면서 연은 동쪽 하늘로 높이 멀리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리곤 하였다. 친구들의 환호성이 듣기고 의기양양하여 자랑하던 모습이 그립다. 연실을 감는 감개도 솜씨가 있다면 사각, 육각, 팔각으로 만들어 빠른 손동작으로 회전을 빠르게 하여 신속하게 감는 쪽이 통상 승리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그럼 풍경은 찿아 보기 힘들다.

 

설날 동네는 인심도 후하여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성묘도 가고 이웃과 서로 왕래하면서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는게 풍습이었다. 형들은 동네 처녀들과 널뛰기, 그네타기를 즐겼고 어린 우리들은 고무줄 놀이, 술레잡기, 제기차기, 공놀이, 고무얼음 타기, 썰매타기, 강뚝에 불놓기, 얼음속 고기잡기, 토끼 사냥 등을 즐겼다. 긴긴 겨울 저녁이면 동네 처녀 총각들이  삼삼오오 모여 쌀밥하기, 두부 사오기, 김치 훔쳐오기, 닭서리는 물론 당시 휴행하던 유행가를 부르며 같이 둘러 앉아 밤이 지세도록 젊음을 불태우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60~70년대 우리 농촌의 까치 설날과 겨울 저녁 풍경이었다.

 

지금은 고향에 아무도 없다.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래서 난 고향을 찿지 않는지 오래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고향 생각에 향수를 느끼곤 한다. 오늘도 고향 가는 길에 고생하는 많은 귀향객들이 이러한 아련한 추억과 부모.형제.친척.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 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고향 길에 교통사고로 가족이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 인간은 어쩌면 불나비처럼 고향을 잊지 못하고 부모를 잊지 못해 죽음을 불사하고 고향으로 달려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기를 쳤던 뇌물을 받았던 벼락 출세를 했던 자가용을 끌고 가족을 태우고 선물 꾸러미를 준비하여 의기양양하게 고향을 찿아가는 그들은 어쩌면 타인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귀소 본능인지도 모른다. 다같이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사회가 진정 우리들이 바라는 이상사회일 것이다. 부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탐욕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며 희생과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가족.친지를 대하고, 어떠한 말에도 마음에 상처받지 말고 자존심도 버린 자세로 임할 것과 명절 연휴를 통해 명절이혼, 도박, 재산다툼,음주운전을 금하고 즐겁게 보내다가 귀경길에는 안전하게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부 , 여당, 군은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성공을 너무 반긴 나머지 정권 홍보를 너무 성급하게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아마 청와대에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정권 홍보 차원의  큰 건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최대한의 홍보를 지시했을 것이다. 국방부는 발표를 통해 군사 비밀은 물론이고 자기 자랑에 너무 심혈을 쏟은 탓에 가짜 사진을 소개하는 가 하면 작전 전개 과정 , 연합군의 지원 내용까지 샅샅이 공개하였다. 물론 군의 목숨을 건 구출 작전을 호도하려는 뜻은 아니다.

 

1차 구출 작전의 실패는 선원들이 속옷을 벗어 흔들자 항복한 것으로 간주하고 방심한 채로 고무보트로 삼호쥬얼리호에 접근하다가 총격을 받아 안병주 소령 등 특전 대원 3명이 총상을 입자 철수하였다고 한다. 결국은 1차 구출 작전에서 성공하자 모든 것이 성공적인 작전에 뭍혀 버리고 말았다. 한국으로 긴급 후송된 삼호 쥬얼리호 석장균 선장은 4발의 총격을 맏아 복부, 팔, 다리에 총상을 심하게 입고 부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사경을 헤메고 있다고 한다.

 

금번 작전에서 군이 군사 비밀을 과도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장차 피랍 선원들의 구출 작전에 어려움도 예상되며 여론이 일자 군 기무사에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군이 북에게 터질때는 갖은 변명과 의문을 증폭시키는 발표로 국민들의 비난을 면치 못하였으나, 이번 작전의 성공은 정권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가운데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부도 군도 참 안타까운 모습이다. 군이 단지 정권 수호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에서 일일이 군의 작전을 결정하고 간섭하였다는 점도 문제거니와 군 스스로 독단적인 작전을 전개하는데 국군 통수권자가 일일이 간섭한다면 군은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작전의 성공도 보장하기 힘들 것이다. 가까운 예가 바로 연평도 포격시 상황 대응이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