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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78 : 백제의 역사 24 (제15대 침류왕)

두바퀴인생 2010. 11. 21. 12:25

 

 

한국의 역사 78 : 백제의 역사 24 (제15대 침류왕)

 

제15대 침류왕

침류왕(枕流王, ? ~385년, 재위 384년~385년)은 백제의 제15대 왕이다. 근구수왕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아이부인(阿爾夫人)이다. 초고왕계의 왕통을 이었으며 재위 1년 만에 아들이 아닌 동생 진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百濟
기원전 18년 ~ 660년
History of Korea-375.png
375년 백제 전성기 때의 지도
공용어 고대 한국어
수도 위례성 (기원전 18년 ~ 기원전 1년)
한성 (기원전 1년 ~ 476년
)
웅진 (476년 ~ 538년
)
사비성 (538년 ~ 660년)
정치체제 군주제
인구 최대치
660년 추정
76만호(3,800,000명 추정)
성립 기원전 18년
멸망 660년
초대 군주 온조왕
기원전 18년 ~ 28년
최후 군주 의자왕
641년 ~ 660년
성립 이전 마한, 부여
해체 이후 신라
주석
  1. 三國史記 券第二十八 百濟本記 第六

 

생애

동진과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대항하려고 하는 기본 외교 자세를 계승해, 즉위년의 384년 7월에도 동진에의 조공을 하였다.

 

또, 동년 음력 9월에 동진(東晋)에서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오자, 궁중에 머물게 하고 예로써 대접하였다. 백제의 불교는 이 때부터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385년 봄 음력 2월에는 한산(漢山)에 절을 세웠으며 10명이 불교 승려가 되는 것을 허가하였다.

 

재위 2년으로 해 385년 11월에 죽었다.

 

가계

 

 

동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 임금들의 연대표

 

대수 왕호 시호 재위 기간 비고
1 온조왕(溫祚王) 온조(溫祚) 기원전 18년 ~ 기원후 28년 아버지는 동명성왕 혹은 우태. 어머니는 소서노이며, 백제의 시조.
2 다루왕(多婁王) 다루(多婁) 기원후 28년 ~ 77년 온조왕의 아들.
3 기루왕(己婁王) 기루(己婁) 77년 ~ 128년 다루왕의 아들.
4 개루왕(蓋婁王) 개루(蓋婁) 128년 ~ 166년 기루왕의 아들.
5 초고왕(肖古王) 초고(肖古) 166년 ~ 214년 소고왕(素古王), 속고왕(速古王). 개루왕의 장남.
6 구수왕(仇首王) 구수(仇首) 214년 ~ 234년 귀수왕(貴須王). 초고왕의 아들.
7 사반왕(沙伴王) 사반(沙伴) 234년 사비왕(沙沸王), 사이왕(沙伊王). 구수왕의 장남.
8 고이왕(古爾王) 고이(古爾), 구이(久爾), 고모(古慕) 234년 ~ 286년 개루왕의 차남.
9 책계왕(責稽王) 책계(責稽) 286년 ~ 298년 청계왕(靑稽王), 책찬왕(責贊王). 고이왕의 아들.
10 분서왕(汾西王) 분서(汾西) 298년 ~ 304년 책계왕의 아들.
11 비류왕(比流王) 비류(比流) 304년 ~ 344년 구수왕의 차남.
12 계왕(契王) 계(契) 344년 ~ 346년 분서왕의 아들.
13 근초고왕(近肖古王) 초고(肖古), 여구(餘句) 346년 ~ 375년 조고왕(照古王), 초고왕(肖古王), 속고왕(速古王). 비류왕의 차남.
14 근구수왕(近仇首王) 구수(仇首), 수(須) 375년 ~ 384년 근초고왕의 아들.
15 침류왕(枕流王) 침류(枕流) 384년 ~ 385년 근구수왕의 장남.
16 진사왕(辰斯王) 진사(辰斯) 385년 ~ 392년 근구수왕의 차남.
17 아신왕(阿莘王) 아신(阿莘) 392년 ~ 405년 침류왕의 아들.
18 전지왕(腆支王) 전지(腆支), 여영(餘映), 여전(餘腆) 405년 ~ 420년 아신왕의 아들.
19 구이신왕(久爾辛王) 구이신(久爾辛) 420년 ~ 427년 전지왕의 아들.
20 비유왕(毗有王) 비유(毗有), 여비(餘毗) 427년 ~ 455년 구이신왕의 아들.
21 개로왕(蓋鹵王) 경사(慶司), 여경(餘慶) 455년 ~ 475년 근개루왕(近蓋婁王). 비유왕의 아들.
22 문주왕(文周王) 모도(牟都), 여도(餘都) 475년 ~ 477년 문주왕(汶洲王). 개로왕의 아들, 혹은 개로왕의 동생.
23 삼근왕(三斤王) 삼근(三斤) 477년 ~ 479년 문주왕의 아들.
24 동성왕(東城王) 동성왕 모대(牟大), 마모(摩牟), 마제(麻帝), 여대(餘大) 479년 ~ 501년 문주왕의 조카, 좌평 곤지의 아들.
25 무령왕(武寧王) 무령왕 사마(斯麻), 여융(餘隆) 501년 ~ 523년 동성왕의 아들, 혹은 곤지의 아들.
26 성왕(聖王) 성왕 명농(明襛) 523년 ~ 554년 무령왕의 아들.
27 위덕왕(威德王) 위덕왕 창(昌) 554년 ~ 598년 성왕의 장남.
28 혜왕(惠王) 혜왕 계(季) 598년 ~ 599년 성왕의 차남.
29 법왕(法王) 법왕 선(宣), 효순(孝順) 599년 ~ 600년 혜왕의 아들.
30 무왕(武王) 무왕 장(璋), 서동 600년 ~ 641년 법왕의 아들, 혹은 위덕왕의 서자.
31 의자왕(義慈王) 의자 641년 ~ 660년 무왕의 아들.

 

 

 

 

 

 

제15대 침류왕 실록

(?~서기 385년, 재위:서기 384년 4월~ 385년 11월, 1년 7개월)

 

침류왕의 짧은 치세와 불교의 전파

침류(枕流)왕은 근구수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아이부인이다. 근구수왕이 384년 4월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침류왕은 왕위에 오래 있지 못했다. 즉위 이듬해인 385년 11월에 죽었으니, 불과 19개월간의 짧은 치세였다. 반란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침류왕의 사망원인은 병마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침류왕 대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다면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한 불교 전파이다. 마란나타가 백제에 도착한 것은 384년 9월이다. 침류왕이 그를 궁중으로 불러 크게 우대하고 공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마란난타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침류왕의 초청으로 왔다는 뜻이다.

 

마란난타가 백제에 오기 두 달 전인 그해 7월에 침류왕은 동진에 사신을 보냈는데, 초청은 이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침류왕이 동진에 머물고 있던 마라난타를 초청한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침류왕은 불교의 원력에 힘입어 병을 치유해 보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방인 마라난타를 지나치게 극진히 대접하며 굳이 궁중에 머물게 할 이유가 없었다.

 

이듬해 2월에는 나라의 진산인 한산에 절을 창건하였고, 승려 10명에게 도첩을 내렸다. 이 때 도첩을  받은 승려가 10명 이나 되었다는 것은 마라난타가 백제에 오기 전에 이미 백제에 불교가 전파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침류왕에게 마라난타 초청을 권유한 사람도 이들 승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백제에 사전 전파된 불교는 고구려를 통해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는 이미 372년에 전진의 승려 순도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고, 순도는 왕자를 가르칠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따라서 불교는 쉽게 고구려 전역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며, 국경을 맞대고 있던 백제에게도 그 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마란나타가 입국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도첩을 받은 열 명의 승려는 바로 고구려에서 전파된 불교에 이미 심취해 있던 승려들이었다.

 

이렇듯 침류왕은 불교 발전의 터전을 닦았지만, 후대 성왕 대에 이르러서야 불교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침류왕 이후 오랫동안 불교는 백제인들에게 널리 전파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불교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침류왕의 치세가 길지 못한 데다가, 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진사왕이 침류왕 측근들과 승려들을 홀대했기 때문이다. 또 진사왕 이후 백제 조정의 혼란과 잦은 전쟁으로 인한 국력의 쇠퇴도 불교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침류왕의 가족 관계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슬하에 이복 형제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인은 여러 명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으로는 맏아들 아신왕과 홍, 훈해 등이 있었다.

 

부여 홍은 침류왕의 둘째 아들로 아신왕 3년에 내신좌평에 임명되어 정사를 보좌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다른 기록은 없다. 396년에 아신왕이 광개토왕에 패하여 왕족과 중신 10명이 고구려로 붙잡혀갔는데, 아마도 홍은 그 일행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 훈해는 셋째 아들로 아신왕의 아우이다. 405년 9월에 아신왕이 죽자, 정사를 대리하면서 왜에 입조해 있던 조카 전지왕을 기다렸다. 그러나 막내 조카 혈례가 역심을 품고 그를 죽였다. <삼국사기>는 그에 대해 아신왕의 중제(仲弟)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둘째 동생이라는 뜻이므로 침류왕에겐 셋째 아들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