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도전, 한국 빙상 전력의 명암...
국제빙상경기연맹(國際氷上競技聯盟, International Skating Union, ISU)
피겨 스키이팅,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 쇼트 트랙 스케이팅 등의 경기를 관장하는 국제 스포츠 기구이다. 1892년, 네들란드 슈베닝겐(Scheveningen)에서 설립되었는데, 국제적인 스포츠 연맹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조직 중의 하나이다. ISU은 스케이팅 종목에 대한 경기의 규칙과 규정을 제정하고, 이를 따르는 국제 경기를 개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는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두고 있다.
역사
19세기 말엽, 스피드 스케이팅 및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 대한 비공식적인 대회가 많은 곳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최초의 근대적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는 1863년 노르웨이에서 열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국제 경기가 늘어나고, 스케이팅 클럽 및 국가적인 대회 조직이 많이 구성되자, 국제적인 표준을 제정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1892년 7월, 네들란드가 주도하여 국제 아이스 스케이팅 경기에 관심이 있던 각국 대표들을 불러모았다. 그 결과 네들란드 슈베닝겐(Scheveningen)에서 최초의 회합이 열렸으며 ISU가 창설되었다. 처음에는 유럽 국가만이 참여하였다. 1894년 캐나다가 회원국으로 가입하자 진정한 국제 경기 조직이 되었다.
다시 말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1892년 설립되었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 규칙을 도입하여 경기를 관할하려는 목적이었다. 1895년, ISU는 조직의 사명을 프로페셔널 선수가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만을 관장하도록 다듬었다. 이 조직은 1896년 2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아마추어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남자 부문만)를 열었다.
미국과 캐나다도 곧이어 이에 맞서는 조직을 구성하였다. 1907년 조직한, 아메리카 국제 빙상 연맹(International Skating Union of America (ISUA))이었다. 다음 두 달 간, 12개의 유럽 국가가 ISU에 합류하였다. ISUA의 국가 수는 그대로였다. 유럽과 북미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은 스케이팅의 스타일조차 달랐기 때문에 시합에서 좀처럼 서로 겨루지 않았다. ISU는 피겨 스케이팅 스포츠를 체계화 및 정리 하였으며, 경기는 한 번에 "10 내지 12개의 ISU 프로그램 중 선택하도록… 또한 음악에 맞춰 5분간 자유 스케이팅(free skating)을 하도록… 그리고 특별한 피겨를 연기하도록 하였다." 1911년, 캐나다가 ISU에 합류하였다. 빙상 경기가 열리는 주요 국가 중에서 이제 미국만이 유일하게 ISU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였다.
1976년에 이르러, ISU는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 선수권을 독립적으로 개최하였다. 그 당시만해도,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은 실내 스피드 스케이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실내 링크에서 치러지게 되자, 실내 스피드 스케이팅은 쇼트 트랙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1988년까지, 38개국이 국제빙상경기연맹에 합류하였다. 그 후 몇 년 간, ISU는, 그 동안 유지해왔던 피겨 스케이팅 싱글 종목의 필수 피겨(figures)를 폐지하였다. 아이스 댄싱 종목에서도 필수 피겨(figures) 사용을 줄였다.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에서 개최되었던 200년 동계 올림픽 이후부터, ISU는 각 종목 규정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쇼트 트랙 종목에서 김동성 선수가 실격으로 인해 아폴로 안톤 오노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 그 때까지는, ISU 규정 상, ISU는 심판 판정에 대한 재검토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몇 개월 뒤, ISU는 심판 판정의 재검토를 위한 비디오 사용을 허용하기 시작하였다. 피겨 스케이팅 점수 판정 방법도 바뀌었는데, 이는 2002년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스캔들 때문이었다. ISU의 회장이었던 오타비오 친콴타(Ottavio Cinquanta)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 "사람도 잘못했지만 시스템이 잘못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70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제 바꿔야 할 때입니다." 국제빙상경기연맹의 새로운 피겨 스케이팅 점수 판정 시스템은 2004년부터 도입되었다. 6.0 만점 점수를 없앴으며, 다양한 기술 요소에 대해 점수를 주도록 하였다. 일부 수학자들이 이 시스템 관련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기존의 시스템보다 더 결점이 많다는 결론을 내기도 하였다.
국제빙상경기연맹 선수권 대회
다른 국제 경기 외에도, 국제빙상경기연맹(ISU)는 다음과 같은 선수권 대회를 거의 매년 개최하고 있다.
동계 올림픽 대회 및 ISU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는 ISU의 선수권 대회가 아니다. 하지만 개인 최고 점수(Personal Best scores)에는 결과가 기록된다.
최초의 세계 선수권 대회
ISU 관할 하에, 종목별로, 다음과 같이 세계 선수권 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 1893년: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암스테르담
- 1896년: 피겨 스케이팅 (남자), 상트페테르부르크
- 1906년: 피겨 스케이팅 (여자), 다보스
- 1908년: 피겨 스케이팅 (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 1936년: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스톡홀름
- 1952년: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 댄스), 파리 시
- 1970년: 스프린트 스피드 스케이팅, 위스콘신 주
- 1978년: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솔리헐 (Solihull), 영국
- 2000년: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미네아폴리스
조직
2002년 현재, ISU는 57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영위원회는 11개 국가이다. ISU 회의에 제안을 하고자 한다면, 회원국의 4/5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제안은 2/3의 찬성으로 가결된다.[12]
역대 회장
대한빙상경기연맹 | Korea Skating Union 大韓氷上競技聯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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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경기(스피드ㆍ피겨ㆍ쇼트트랙)를 주관하는 대한체육회 소속 경기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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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체육을 보급 발전시키며 경기인 및 경기단체를 지도하고 우수한 경기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24년 설립된 조선빙상속도협회에서 시작하여 1945년 11월 26일 조선빙상경기연맹(스피드ㆍ피겨)을 창립하고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에 가입하였다. 1946년 4월 조선빙속협회와 조선피겨협회로 분리 운영되다가 1947년 통합하여 ISU(Internaional Skating Union:국제스케이팅연맹)에 가입하고, 1948년 9월에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때 대한스피드스케이팅협회와 대한피겨스케이팅협회로 분리 운영되기도 하였으나 1980년 2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 통합되었다.
회원단체로 각 시ㆍ도 빙상경기협회 및 전국규모의 빙상경기연맹체가 있으며, 기구로는 이사회·대의원총회·각종위원회·사무국을 두고 있다. 이 중 이사회는 최고집행기관으로, 회장·부회장·전무이사·사무국장·이사로 구성된다. 선임위원으로는 회장 1명, 부회장 6명, 전무이사 1명, 이사 16명, 감사 2명을 두고, 최고의결기관인 대의원총회는 각 회원단체에서 뽑은 대의원 16명(시·도 10명, 산하연맹 3명, 중앙 3명)으로 구성된다. 위촉위원에는 상임고문 1명, 명예 회장 1명이 있다. 연맹의 사무집행을 위하여 사무국을 두며, 사무국장은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회장이 임명한다. 산하연맹체로는 한국대학연맹·한국중고연맹·한국초등연맹이 있다.
주요 활동은 ① 빙상경기에 관한 기본방침의 심의 결정, ② 빙상경기에 관한 자문 및 건의, ③ 국제경기 개최 및 참가, ④ 산하 가맹경기단체와 지부 관리 및 감독, ⑤ 산하 가맹경기단체와 지부 관리 및 감독, ⑥ 국내 빙상경기대회 개최 및 주관, ⑦ 빙상 경기기술 연구, ⑧ 빙상경기자(국가대표급선수) 양성 및 빙상경기시설에 관한 연구와 설치 및 관리, ⑨ 빙상경기에 관한 홍보 등이다. 본부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륜동 88번지에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74년 올림픽 금메달 도전사'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마침내 '금맥'을 캐냈다.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지난 1936년 독일 칼뮤슈 대회로 김정연·이성덕·장우식 등 3명이 출전했다.
이 때 이들 선수들은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태극기를 가슴에 새기고 한국 빙상이 처음 올림픽에 나선 것은 1948년 생모리츠 대회로 이효창과 이종국·문동성 등이 역사의 현장에 섰다.
계속해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은 장거리 부문에서 세계 무대에 도전을 해 보았지만 올림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에릭 하이든'이라는 최고 빙상 스타의 라이벌로 이영하가 등장하면서 큰 기대감을 안겼다.
이영하는 1976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하면서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기세를 떨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영하는 1976년 인스부르크대회를 시작으로 3개 대회에 연거푸 출전해 메달 도전에 나섰지만 기대 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어 이영하의 뒤를 이어 1980년대에는 배기태가 1988년 캘거리대회 500m에서 36초90의 기록으로 5위를 차지했다.
그 4년 뒤인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사상 첫 메달이 나왔다.
김윤만이 1,000m를 1분14초86에 주파하며 은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이후 14년 동안 노메달에 그치다가 지난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당시 21살의 이강석이 500m에서 동메달을 다시 목에 걸었다.
그리고 4년 뒤에 맞은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한국은 5,000m 장거리 종목에서 이승훈이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16일 신예 모태범(21)이 마침내 500m 단거리 종목에서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바야흐로 '금빛'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다.
2010년 2월16일,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은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빙판 위의 스피드 강자가 됐다.
'감격의 첫 金' 모태범, 한국 동계스포츠 역사를 바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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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16 13:2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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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첫 금메달을 선물한 모태범. 사진=Gettyimages | | [이데일리 SPN 이석무 기자]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표팀 막내 모태범(21.한국체대)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이변이나 다름없다.
모태범은 16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1,2차 레이스 합계 69.82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모태범은 이로써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은메달을 따낸 김윤만,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남자 500m 동메달을 획득한 이강석,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에 이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네번째 메달을 따냈다.
특히 그동안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숙원인 금메달의 꿈을 모태범이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결과였다.
당초 모태범은 선수단이 기대한 메달 후보가 아니었다. 이강석 이규혁 등 걸출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거의 받지 못했다. 특히 500m는 자신의 주종목이 아니었다. 원래 주종목은 1000m와 1500m였고 500m에선 올시즌 월드컵 2차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것이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모태범은 자신의 기량을 200% 이상 발휘하면서 형님들이 이루지 못한 금메달을 가져왔다.
이날 다른 선수들이 빙질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제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한데 반해 모태범은 영향을 받지 않고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1,2차 레이스에서 모두 34초대 기록을 세운 선수는 모태범이 유일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모태범의 22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1989년 2월 15일생인 모태범은 자신의 생일날 큰 사고를 치면서 한국 동계스포츠 역사를 다시쓰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모태범은 500m에 이어 오는 18일 열리는 1000m에서 또한번의 이변을 노린다.
한국 빙상연맹과 쇼트트랙 문제...
한국빙상경기연맹은 물론이고 산하 한국쇼트트랙 관련 코치, 선수들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연맹은 지난 4대륙 경기에서 김연아 선수 참여 문제가 도마에 올라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비리 연루 문제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다.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일군 성공을 파벌과 비리로 얼룩진다면 선수들과 부모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믿고 맡기면서 성공을 기원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선수를 볼모로 파벌을 조성하고 치부를 한다면 국민들의 지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스포츠게의 고질적인 병폐를 보는 것같아 씁쓸하다.
쇼트트랙도 마찬가지로 이번 1500미터 경기에서 성시백-이호석 선수가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메달 싹쓸이 기회를 놓치게 되자 네티즌들이 빙상연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갖가지 욕설과 불만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빙상의 불모지 한국에서 쇼트트랙의 신화를 만든 분야가 바로 쇼트트랙이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은 국민 누구나 느낄 것이다.
문제는 전명규 코치 시대로 가슬러 올라간다. 동양인들이 빙상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에는 무척 힘든 상황에서 쇼트트랙 경기에서 팀플레이로 일부 선수는 희생하더라도 같은 편 에이스 선수 밀어주기의 경기방식이 한국의 전명규 코치에 의해서 나타나면서이다. 메달에 목말라하던 우리로서는 고심끝에 선택한 방식이며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불모지의 빙상경기에서 쇼트트랙이 금밭을 일구어 내게 되었다. 국민들의 열화같은 성원으로 전명규 코치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 솟았다.
90~2002년 10월까지 전명규 코치가 그러한 방식으로 선수들을 훈련시켜 오면서 희생대상의 선수들의 불만이 커져갈 수 밖에 없었고, 급기야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전명규 코치가 사임하고 전명규 코치의 수제자 김기훈 코치가 남자팀을, 이준호 코치가 여자팀을 각각 맡았다. 김기훈 코치는 안형수 선수를 발굴하고 편애가 심하며 스케이트 날 구입 사건으로 2004년 10월 사임하고 윤재명 코치가 이어받게 된다. 여자팀 이준호 코치는 비전명규파로 오래가지 못하고 2003년 6월 김소희, 최광복 코치로 교체 이어졌다.
2004년 11월 여자 코치 김소희, 최광복 코치는 최은경 선수가 윤재명 코치 구타사건 등 코치-선수들에 대한 여러 문제에 관해 기자회견 폭로사건으로 다시 박세우, 전재수 코치로 교체되고, 윤재명 코치는 2005년 1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서호진 선수가 안호진 선수 구타사건으로 물의가 일어나자 윤재명 코치가 사임하고 다시 김기훈 코치로 교체된다. 김기훈(남자팀), 박세우, 전재수(여자팀)체제가 구축되면서 선수들이 선수촌 입촌 거부사건이 발생되자 김기훈 코치가 2005년 4월에 사임하고 박세우 코치-송재근 코치로 이어진다.
2005년 11월 월드컵 경기에서 변천사, 진유선 선수 방해 지시사건이 발생하였고 2006년 2월 트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2002년 솔트레이크처럼 밀어주기식 경기 방식이 배제된 가운데 전유선, 변천사, 최은경, 안현수, 이호석 등이 최고의 성적을 올리게 된다. 2006년 3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선수들간에 경쟁이 심화되는 등 갈등이 표출되자 안현수 부친께서 불만을 제기 하는 등 파벌문제, 밀어주기, 선수구타, 희생강요 등 쇼트트랙 선수들 간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잡음은 이를 보는 국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한국 빙상계와 쇼트트랙 분야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쇼트트랙 경기방식상 순위경쟁이다보니 선수들끼리 좁은 코너돌기에서 불의의 사태가 발생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또 빙상경기연맹에서 쇼트트랙의 비중이 낮고 불만도 많아 별도로 독립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선수들 선발과 훈련에 코치들의 고심도 많을 것이다. 새로운 전술과 조직적이고 강한 팀훈련만이 메달을 딸 수 있는 길임도 사실이다. 또 선수들은 누구나 메달을 기대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를 위해 희생이란 있을 수도 없다. 파벌을 조성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방법도, 자신의 세를 불리려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빙상경기연맹의 투명성이 우선 요구된다. 선수선발, 관리, 훈련, 경기방식, 재정지원, 보상 등 모든면에 돈과 관련된 추문이 사라지고 선수들이 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선의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투명하고 미래지향적인 개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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