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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의 가을 21 (진리를...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두바퀴인생 2009. 11. 19. 00:07

 

 

우면산의 가을 21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객사하기까지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오직 '선에 대한 끝없는 희구'에 인생의 진면목과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톨스토이가 노년에 약 15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이러한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바탕으로,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임종을 맞아 그가 남긴 유언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였다고 한다.

 

 

 

 

인간과 인생

인간(人間)이라 함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데, 빈부(貧富)의 차이로 일어나는 감정문제나 계급의 상하(上下)에서 생기는 감정문제를 비롯해 종교 간의 문제, 남녀 간의 사랑문제, 송사(訟事)나 전쟁도 모두 인간문제이다.

 

인생(人生)이라 함은 사람의 목숨이 생(生)하고 멸(滅)하는 문제이니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이다. 태어나서 건강하게 살거나 병드는 일들이 모두 인생문제이니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상관없이 나이는 먹어야 하고, 나이가 들면 몸은 쇠약해지며, 더욱이 죽음은 받아 들여야 하는 일 등이 인생문제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사람으로서 겪지 않을 수 없는 인간문제와 인생문제이다. 때로는 인간문제가 머리 아프게 하기도 하고, 혈압이 높아지게 하기도 하며, 심하면 자살 충동이 일어나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생문제로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물욕(物慾)의 충동은 현재 미국사회에 관한 한 인생문제라기 보다 인간문제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인간문제와 인생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은 인간의 무지(無知)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문제이든 인생문제이든 자신은 물론 세상은 수시(隨時)로 변하고 있는데 그 변함을 보지 못하는 무지(無知)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변하고 바뀜으로서 일어나는 문제를 변하고 바뀌는 안목으로 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니 문제의 실상을 바로 진단할 수 없고 또 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모든 변화 속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변화도 있고, 변하지 않는 실상(實相)이 있는데 그 상대적인 변화와 실상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물은 습기가 되어 안개가 되기도 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기도 하며, 이슬이 되기도 하고 증기(蒸氣)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바뀌어 가면서도 물이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 형태의 농도가 높을 때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고, 낮은 것은 높을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얼음이 주변의 기온의 변화에 따라 녹을 수 있는 것인데 만약 얼음이 녹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녹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며 괴로워할까? 얼음이 다 녹아 버리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얼음에게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은 얼음이 얼음으로 영구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음이 얼음이면서도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음 자신이 얼음이면서 그 본질은 물이요, 물이면서 얼음인 것을 지각(知覺)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의 본질이 물이므로 『반야심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얼음은 물과 다르지 않고, 물은 얼음과 다르지 않으며, 얼음이 곧 물이요, 물이 곧 얼음이라는 법칙을 설할 수 있다. 구름, 안개, 이슬 등을 가지고도 이렇게 설할 수 있다.

그리고 얼음이라는 형체가 사라지는 것을 공(空)해지는 것이라 하고, 얼음은 한 물질로서 색(色)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空)이라는 의미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비유로서 설명할 수 있다. 얼음이 공(空)해지니 얼음의 본래의 성품인 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공(空)의 도리이다. 즉 공해진다는 것은 앞에 것은 없어지지만 뒤의 것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니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지옥, 아귀, 축생, 사람, 아수라, 하늘로 육도윤회(六道輪回)한다고 한다. 마치 물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듯 사람은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 여섯 가지 다른 길로 다음 생의 몸을 받게 되는 것이라 한다. 이 생(生)에서 죽는 것을 공(空)이라 한다면 아무 것도 없는 공(空)이 아니라 이 몸의 본래의 모습인 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물의 성질을 여의지는 않는 것과 같이, 사람의 의식(意識)도 어떠한 몸을 받아 윤회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식을 여의지는 않는다. 죽는다고 하는 것은 얼음이 녹듯이 몸이 사라지는 것이고, 얼음이 녹아 물이 남듯이 몸이 사라지면 의식인 마음이 남게 된다.

인간사(人間事)를 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은 변하고 바뀌는 것을 보고 변하고 바뀌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얼음이 자신이 녹는 것을 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니 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지만, 혹 변하지 않는 물이 녹고 있는 얼음을 보게 되면 그에 대한 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인생사(人生事)와 인간사(人間事)에 있어서도 항상 문제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를 오히려 더 복잡하게 얽히게 만들어 간다.

인생사(人生事)와 인간사(人間事)의 문제는 어떠한 문제라도 의식(意識)을 떠나 있는 문제는 없다. 그리고 인생문제와 인간문제가 공(空)해지면 의식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의식의 입장에서 인생문제와 인간문제를 바라보고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의식의 입장에서 이 두 문제를 보게 되면 첫째 몸은 나고 죽음이 있지만 의식은 나고 죽음이 없음으로 그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으니 인생사가 문제될 것이 없고, 둘째 의식은 윤회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몸을 받고 또 죽는 것은 일체 만물과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음으로 남을 위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하는 것이요, 남을 해치는 것은 바로 나를 해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한 물욕(物慾)보다 이웃을 돕고자 하는 인덕(仁德)과 지혜로서 세상을 보고 다스리게 될 것이니 인간문제도 처음부터 일어날 일이 없다. 이러한 의식은 육도윤회에 대한 걱정을 할 이유도 없다.

  

2009. 7. 6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유·불·도 사상에 나타난 자연관

 

전통 사상에서는 유학, 불교, 도가를 막론하고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인생의 이상적인 경지로 파악해 왔다. 유학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경지(天人合一)’를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추구하였다.

 

또, 끊임없이 만물을 낳고 길러 주는 자연의 생명력에 경외감을 표하고, 이러한 생명력을 단순히 과학적 법칙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된 도(道)의 도덕적인 표현으로 보았다. 따라서, 유학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도를 본받아, 다른 인간과 존재들에 인을 베푸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길이라고 보았다.

 

도가에서는 자연을 목적론적 체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도 간직하지 않은 ‘무위’(無爲)의 체계로 보았다. 그러나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가 자연 세계에 아무런 질서나 법칙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자연 세계에는 어떤 목적론적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목적의 질서’가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도가에서는 자연 세계의 목적성을 부인함으로써 인위적인 조작과 통제를 거부하였다. 따라서, 자연 세계가 무위의 상태에서 운행하듯이, 인간도 자연의 질서를 본받아 무위의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를 ‘인연생기’(因緣生起)라고 하고, 줄여서 ‘연기’(緣起)라고도 한다. 연기설에 의하면, 개개의 존재는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전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존재가 모여서 전체를 형성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본다. 세계를 연기의 관점에서 파악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적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중세의 유명한 한 성인(聖人)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늦잠을 잔 성인이 학교에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어른이 “너는 어디를 뛰어가니?”라고 물었다. 성인은 “학교에 늦어서 뛰어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학교에선 무엇을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요.” “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는?” “졸업을 하지요.” “졸업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엔 좋은 직장을 갖지요.” “그럼 다음엔 무엇을 하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그 다음엔 무엇을 하니?”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그 다음엔?” “직장에서 은퇴해서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지요.” “그다음엔?” “흠, 그 다음엔… 죽게 되겠지요.” “그러면 지금 너는 죽으려고 열심히 뛰어가는구나.” 성인은 그 말씀에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 야망을 버리고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는가?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결코 유명한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쟁하듯 치열한 삶을 살다가도 낙엽을 밟는 늦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속 시원한 정답을 들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궁극적인 질문들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항상 살면서 이 문제를 물어야 하고 그 해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인생의 목적을 성공, 보람, 즐거움에 둔다. 어떤 이는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 혹은 명예와 명성을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이요,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부와 명예, 출세가 반드시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부와 명예와 상관없이 자기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객사하기까지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오직 '선에 대한 끝없는 희구'에 인생의 진면목과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톨스토이가 노년에 약 15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이러한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바탕으로,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임종을 맞아 그가 남긴 유언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였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가끔 가던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는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완료형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계속 성장하고 변화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허영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북월드]인간이란 무엇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실물 스케치 중 일부.

인간이란 무엇인가.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신앙과 학문 등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철학자 칸트는 이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를 철학의 근본 물음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세 가지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철학을 ‘인간학’이라고 정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이현복 외 지음/아카넷/1만3000원

5월 들어 나란히 번역 출간된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이현복 지음, 아카넷), ‘의식의 재발견-현대 뇌과학과 철학의 대화’(마르틴 후베르트 지음, 원석영 옮김, 프로네시스), ‘꿈꾸는 기계의 진화-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로돌포 R. 이나스 지음, 김미선 옮김, 북센스)는 모두 끝없는 물음의 원천인 ‘인간’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들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이고, 그 본성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떠한지 등 인간 본성과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인류가 축적한 철학적 사유를 총동원해 고찰하고 있다. 한양대 이현복 교수를 비롯해 세종대 이태하, 경북대 손성철, 서강대 김영건 류제동 교수 등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강의하는 13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정낙림 경북대 교수는 ‘자기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에서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

◆의식의 재발견-현대 뇌과학과 철학의 대화/마르틴 후베르트 지음/원석영 옮김/프로네시스/1만3800원

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는 니체의 사유를 인용하며 인간을 설명했다.

 

‘인간은 자유의지의 주인인가 신경 회로의 노예인가’라는 화두를 먼저 던지고 출발하는 ‘의식의 재발견’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인 16세기까지 인간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하늘은 한낱 지구를 도는 바퀴로 상상했으나 지금은 지구란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점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듯이, 현재 인간은 자신의 사유기관을 들여다보는 기계들을 만들어 내 뇌 속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수천 년간 지속하여 온 인간에 대한 견고한 생각은 타격을 입었고, ‘인간은 한 조각 자연에 불과하다’는 자조까지 하게 됐다. 물론, 인간이 느끼는 황혼의 장려함이나 바이올린 현의 미묘한 울림, 사랑에 빠진 순간의 불가해한 심적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꿈꾸는 기계의 진화-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로돌포 R. 이나스 지음/김미선 옮김/북센스/1만8000원

미국 뉴욕대 의대 생리학 및 신경학과 학과장 로돌포 R 이나스가 쓴 ‘꿈꾸는 기계의 진화’는 인간 뇌의 운동을 단순한 ‘작용’으로 파악하지 않고, 생명의 ‘기억’으로 바라본다. ‘마음은 곧 뇌’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뇌의 신비를 단일 신경세포 단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나스 교수는 ▲뇌의 기능과 언어·감정은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다 ▲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예측한다 ▲인지능력의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갖추어진 채 태어난다 ▲운동과 언어와 감정은 이미 패턴화되어 있다는 등 네 가지 특징으로 인간의 뇌과학 연구 성과를 정리한다.

 

‘마음은 생명체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린 이나스 교수는 “인간의 유전자에는 30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인류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이를 ‘생명체의 기억’이라고 표현한 나이스 교수는 “마음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날, 우리는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찬미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쯤 되니, 인간은 곧 우주이고, 인간은 곧 한울님이라는 종교의 경지가 낯설지 않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