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마을
우면산의 가을 20 (거목은 가만히 있는데 바람만 분다...) 본문
우면산의 가을 20 (거목은 가만히 있는데 바람만 분다...)
우면산에는 30~50년생 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다. 한국전쟁 후 벌거숭이 산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자유당 정부는 전국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는 사방공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는데 속성수 위주로 심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성공적인 조림으로 전국토가 산림으로 뒤덮혀 졌을뿐만아니라, 많은 댐을 건설하여 이제는 큰 비가 와도 옛날처럼 잦은 홍수는 극복하였고 자연환경도 많이 되살아나 동식물들이 개체수가 확산되고 있어 다른 나라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면산에도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버드나무, 아카시아 등 그동안 가꾼 나무들이 곳곳에 잘 자라고 있다. 그중에서 참나무 군락이 가장 많이 번성하였으며 아카시아 나무도 많은 곳에 군락을 형성하여 자라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보면 뿌리의 견고성에 비해 키가 과도하게 큰 버드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는 비바람에 견디다 못해 자주 뿌리가 뽑히면서 쓰러진다. 자연의 이치이나 이러한 나무는 뿌리가 깊지 못해 생각이 짧고 주변 나무들과 조화하지 못하고 자신만 햋빛을 많이 받으려고 키만 자란 욕심만 넘치는 나무들이다.
이러한 나무들은 인간에게 사용처가 적고 땔감 외에는 크게 쓰임도 적은 나무들이다. 또 이들 나무 밑에서 자라는 어린 나무들이나 잡초들은 햋빛을 잘 받지 못하여 자생에 어려움을 겪는다. 같은 나무들과 화합하지도 못하고 자신들만 잘 살려는 이기심으로 가득찬 나무들로 인간으로 치면 자신만 지역민들의 이기심이 가득찬 님비사고나 또 출세하거나 부자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또는 편협한 특정 사상에 빠진 이단아들과 비슷하다. 이들은 아카시아 나무처럼 자생력도 강한데 척박한 땅 일수록 더 잘 자라는 나무들처럼 범죄자,가난한자,실패자처럼 갖지 못한자들이나 불평분자를 사이에 침투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기존 세력을 비판하며 그들의 동조를 구하고 그들로 하여금 기존 세력에 반항하도록 민중을 선동한다.
또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중에게 침투하여 그들의 대변자인 척 나팔을 불며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이상 사회를 제시한다. 그들의 이상사회란 다같이 배고프고 그들만 배불리 먹으며 호의호식하는 사회다. 그들은 지하 은밀히 숨어 행동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표면으로 나타나 적극적인 행동으로 기존 세력에 우회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철저하게 민중을 이용하고 나중에는 깔아 뭉갠다. 그들을 따르는 대다수의 민중은 그들에게 이용되어 투쟁 전선에 앞장서고 결국에는 그들을 위해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 하고 같이 헐벗고 굶주리며 다같이 못사니 불평불만이 없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이상사회라는 것이다.
조선 사회는 사대부들이 철저한 계급 사회를 만들어 백성들을 수탈하여 그들만 잘 먹고 잘 살았다. 철저한 계급제도를 만들어 권력은 그들만의 전유물이었으며 그들끼리 권력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치고 받고 죽고 죽이며 권력 투쟁을 긴 역사를 되풀이 하다가 결국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는 망국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눈에는 백성은 없었다. 백성은 다만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을 위한 노예에 불과했을 뿐만아니라 평생 자손대대로 그 그늘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큰 집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여 호의호식하며 여러 처첩을 거느리고 큰 소리치며 팔자 걸음에 양반행세를 하고 세도를 부리며 자손 대대로 잘 살았다.
어떤 사상이나 체제, 또 어떤 반정이나 혁명, 어떤 단체나 정당도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소수의 무리들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이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들의 이상과 비젼은 천국과 같이 포장하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투쟁하며 권력을 잡는 순간부터 양상은 달라진다. 그들도 결국은 서로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권력투쟁을 벌이며 반대파를 숙청하고 승자가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치와 향락에 빠지며 부패해지고 혈연.학연.지연끼리 그들만의 호의호식을 위해 독재정치나 권력세습이나 외부와 장막을 치고 영구집권을 도모하게 된다.
어느 사상이나 체제가 모순이 없을 수는 없는 것처럼 자본민주주의도 다수의 횡포가 만연하며 경제적으로 심화되는 양극화, 가진자들의 무법 천국, 권력과 가진자들의 유착, 평생 노예처럼 착취 당하는 민중,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연일 패륜 범죄가 난무하는 사회.... 이것이 자본민주주의 사회체제지만, 이 체제도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점점 새로운 형태로 변모를 서두르고 있다.
정반합의 원리처럼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맑스.레닌 이후 공산사회주의는 이 지구상에서 피바람을 일으키며 확산되었다가 먼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한 공산사회주의를 그리워하며 김정일 세습체제를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동경하여 그 체제를 숭상하며 이상에 빠진 사생아들이 넘쳐나고 있는 사회다.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라면 김일성은 소련의 앞잡이다. 둘다 한반도의 정통성을 대변할 수 없는 정권이며 상해임시정부를 정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국군의 기원도 광복군이 모체가 되어야 하며 남조선경비사령부가 국군의 원류가 될 수가 없다.
자본민주주의는 자생된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사회학자들 사이에는 새로운 사회체제로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국경과 민족이 무너지고 경제권역이 지역간 통합되고 인종과 사상의 구분이 사라지는 새로운 세계, 즉 무정부 NGO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는 지구촌이 되었으며 지구촌의 부자들이 가난한 민중을 착취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컴퓨터와 과학에 추월당하고 인조 인간이 태동하며 인간의 수명은 무한대로 연장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 지구의 멸망이 오지 않는 한 '0의 타임웨이브'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으며 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하는 말은 과거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역사를 지향한다고 한다. 그들이 그러한 노력을 쏟는 이유가 정말 그들이 말하는 대로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일까? 그들의 의도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브레이크를 달고 정지시키는 역활을 하는 것은 김정일 체제를 대변하고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음흉한 음모가 숨겨진 사실이다. 중국이 버린 주자학을 500년 동안 바이블처럼 뇌까리며 민중을 착취하던 조선 사대부, 서구에서 쫒겨나고 버림받은 종교를 이 땅의 민중들은 열성 광신도가 넘쳐나는 나라, 이미 실패한 사상과 체제로 붕괴되어 버린 공산사회주의 사상을 숭상하는 한물간 이상주의자들, 민중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며 김일성 족벌가문과 소수의 지배층만 배불리 먹고 잘 살고 있는 북한체제를 동경하는 김일성 사상에 물든 정신적 장애인같은 노예들...국민소득 2만불 아래서 더이상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무능한 정치에, 썩어빠진 정치인과 공직자에, 수혈받으며 자란 부패한 족벌기업에, 과거에 얽메어 앞으로 나가지는 못하는 사회, 갈등만 부추기는 집단들, 군인을 개같이 쳐다보는 사람들, 사기꾼이 난무하는 사회.경제, 벌어지기만 하는 양극화, 잇빨만 까면서 책임지지 않는 언론, 속은 썩어나도 껍데기만 바꾸면 되는 사회, 간판만 달면 인정받는 사회, 자녀 키우기가 너무나 힘든 사회, 사교육에 멍드는 학부모들, 직장이 없어 놀고 먹는 백수들 천지인 사회 ......
민중,백성 찿는 눔치고 제대로 민중,백성을 위하는 눔은 없으며 도덕군자인척 하는 눔치고 실제 도덕적인 눔이 없는 것처럼, 과거사 정리한다면서 정말 과거를 정리하는 눔은 없다는 이야기다. 현시대에 저항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배척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제시대 완장차고 일본눔 앞잡이가 된 사람들..., 한국전쟁시 죽창들고 인민군 앞잡이가 된 사람들..., 그들은 그 시대에 이미 그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에 요즘 친일인명사전을 놓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2차 대전 후 프랑스를 예로 많이 들지만 36년과 4년 2개월과는 천양지 차이다. 태어난 아이가 젊은 시절을 일제 치하에서 배우고 자랐다면 또 그러한 사회에서 자리메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미 망하고 사라진 희망이 없는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그 나라는 유교를 신봉하는 나라로 주자학의 공리공론에 빠져 무능한 조정과 탐관오리들이 넘쳐나 백성들은 토탄에 빠져 삶을 잃고 유랑민이 되어 방랑하던 나라였으며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서자와 천민들은 출세가 불가능한 사회였다. 이미 망하고도 남을 나라가 조일전쟁(임진왜란,정유재란), 조청전쟁(정묘호란,병자호란)의 2번의 참화를 겪으면서 수많은 부녀자들이 끌려가 능욕을 당하고 먹고 쓸 물건들은 모조리 조공품으로 갖다 바쳐야 했으며 나라에 남는 것은 양반 사대부들이 마을마다 향교를 차려 놓고 지방관리들과 같이 백성들을 수탈하였던 나라였다. 파벌 싸움과 권력 투쟁으로 권신과 외척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피잔치만 벌이던 나라였으니 백성들은 노예처럼 피죽으로 연명하며 정처없이 도적떼가 되어 살아야 했던 나라였다.
중국에서 이미 갖다버린 사상을 이땅의 선조들은 대단한 신사상인양 받들며 신하들이 왕권을 누르고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아가기 위해 유교의 공리공론을 이나라의 사상체계로 삼았다가 나라를 망하게 만든 사상이며, 근세에는 공산주의 사상의 사회주의 나라들이 실패하여 나라가 무너지고 사라졌으며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 수많은 인민들이 국경이 무너지면서 탈사회주의 현상이 나타나 동독이 무너진 것이며 북은 김정일을 비롯한 600만 열성 공산분자들만이 잘 먹고 잘 살고 나머지 대부분의 북 주민들은 굶주리며 거지같이 살고 있는 사회임에도 그를 동경하며 빨갱이가 되거나 앞잡이가 되어 이 사회를 뒤집어려는 불순세력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미 실패한 사회체제임에도 그것을 신봉하여 좌편향 사상에 빠져 있는 무리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이다.
불손한 사상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것도 사상의 자유니까!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편협한 사고는 태평양 바다에 떠 다니는 낙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혁명과 반정,반란은 명분은 비슷하다. 백성을 위하고 인민을 위한다는 것이나 결국은 허울뿐인 인간의 탐욕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무리들이 잘먹고 잘 살겠다는 탐욕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체제나 권력도 어떠한 사상이나 명분이던지 좋다. 그들 나름대로 생각이니까! 그러나 인민들과 백성들이 고통받고 살기 힘들다면 어떤 정치제제나 사상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회를 국민들은 바란다. 특정한 인물이 정권을 세습하거나 특정 무리들만 권력을 휘두르고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면 그것은 조선 시대의 정치체제나 똑 같다. 결국은 백성들의 피고름을 짜내고 초목근피를 먹으며 거지같이 살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배척하여야 한다.
서초구청에서 일년에 한 두차례 우면산 수목에 비료를 준다. 인부들은 우면산에 있는 나무라면 어느 곳에나 비료를 뿌린다. 구청 직원은 나무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며 지식도 없고 자신의 소유도 아니다. 어느 나무가 진정 우면산에 필요한 나무인지 관심도 없다. 구매한 비료 포대 수량대로 골고루 전 지역에 뿌리면 일과가 끝난다. 그 덕분에 아카시아 나무도 비료를 주는 덕분에 잘 자란다. 그런데 아카시아 나무는 비료를 주지 않아도 생존력이 강해 다른 나무를 헤치고 잘만 자란다. 아카시아 나무가 뿌리는 씨앗은 부지기 수며 어디든지 씨앗이 뿌려지면 반드시 새싹이 돋아 난다. 나무 기둥을 통채로 잘라내도 다음해에는 뿌리 근방에서 곁가지나 나와 자란다. 지난 10년 우리 사회에 뿌린 비료 덕분에 아카시아 같은 나무는 잘도 자랐다.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본체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주변의 다른 나무가 태양을 가릴세라 열심히 잘 자라고 있다. 기존의 소나무,참나무,오동나무 등 큰 나무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라고 있는 것이다. 거목은 가만히 있는데 바람만 잘 날이 없는 것 같다...
-서초동-
김진 칼럼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사전엔 4389명이 들어 있다. 비판자들은 의도가 불순하다고 공격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해방 후 기득권 세력의 친일행위를 부각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런 의도가 있다 해도 사전의 가치를 부정해선 안 된다. 사전의 하자(瑕疵)는 본질적인 존재가치와는 다른 문제다. 일부 허위가 있으면 사법적 책임을 물으면 된다. 좌파 인물이 빠졌다면 스스로 권위를 해친 것이다. 사전을 만든 이들의 성향이 어떻고, 친북파는 놔두고 왜 친일파만 때리느냐는 얘기도 부차적인 것이다. 존재가치로 볼 때 이런 식의 기록은 필요하다.
물론 많은 경우 친일의 동기는 이해할 만하다. 일제 35년은 긴 세월이었다. 합병 초만 해도 국민적 저항이 있었으나 20년, 30년이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일제는 저항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고 살려면 순응해야 했다. 그래서 판사도 되고 국방헌금도 내고 일제를 칭송하기도 했다. 비판자는 프랑스를 말할 것이다. 프랑스는 나치 부역 혐의자 12만여 명을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두 나라는 다르다. 나치는 4년2개월, 일제는 35년이었다. 나치 점령이 20년, 30년으로 이어졌으면 프랑스도 단죄(斷罪)의 양태가 달랐을 것이다. 일제 35년은 그렇게 불가피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기록하는 건 다르다. 용서는 하지만 잊지 않는 것과 같다. 35년 동안 모든 이가 순종했다면 친일사전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적잖은 이가 가족을 위험과 가난 속에 버려두고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상하이로 떠났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친일사전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정의란 없다.
대표적으로 박정희를 사전에 넣어야 한다. 최근 그가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보냈던 사실이 드러났다. 23세의 초등학교 선생 박정희는 입학 자격이 19세 이하라는 걸 알고 특혜를 구했던 것이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이라고 적었다. 박정희는 일본육사까지 나오고 만주국 소위가 된다. 만주가 어떤 곳인가. 항일투사의 피와 안중근의 혼백이 담긴 곳이다. 그런 땅에 박정희는 독립투사가 아니라 일본 괴뢰국의 장교로 갔다. 그것도 혈서를 쓰고…. 혈서가 있는데도 그가 사전에서 빠진다면 사람들은 정신적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와 기록이 다른 것처럼, 기록과 평가도 달라야 한다. 역사적 평가는 인생 전체로 이뤄지는 것이다. 한 부분에 친일행위가 있다 해서 인생 전체가 친일은 아니다. 친일행위와 친일인생은 다르다. 친일행위가 있어도 해방 후 건국·반공(反共)수호·근대화, 그리고 언론창달에 기여했다면 그는 애국자다. 친일행위가 있다 해서 안익태의 애국가와 서정주의 시가 상처를 받는 건 아니다.
나폴레옹의 조국 코르시카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식민모국(母國) 프랑스의 심장부로 들어가 장교가 되고 황제가 되었다. 리콴유의 조국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리콴유는 식민모국의 심장부에 가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살렸다. 박정희도 식민모국 일본의 심장부로 들어갔다. 그가 이룩한 근대화 조국이 많은 부문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 하면 박정희는 친일파인가 극일(克日)파인가.
살아 있다면 박정희는 친일사전에 대해 뭐라고 할까. “내 이름을 빼선 안 된다”고 하지 않을까. 박정희는 일본과 연결된 과거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1961년 대한민국 최고권력자란 신분이 되었는데도 드러내놓고 일본육사의 은사(恩師)를 만나려 했다. 대통령이 돼서는 만주군관학교 동창생을 중용했다. 그런 박정희가 친일사전을 피했을까. 거목은 가만히 있는데 바람만 분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왕호택 칼럼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총독부 전직 관료들을 싫어하면서도 등용했다. 총독부 판사를 지낸 사람을 법무부 장관으로 쓰면서 “일제 앞잡이를 20년이나 했구먼”이라고 마뜩찮아 했다. 이 대통령은 해방 후 정국에서 ‘친일 청산’보다는 ‘공산화 저지’가 더 급하다고 판단했다. 이 대통령이 공산당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친일파 관료와 경찰을 동원하고, 확고한 ‘반공(反共)’으로 남쪽의 자유와 번영을 지킨 것은 당시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최근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용공(容共) 좌익세력들의 국가정통성 훼손’이라는 비판에 대해 ‘친일 친미 친독재로 기회주의적인 변절을 거듭한 자들과 그 후예들이 치부를 감출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반공이었다’고 응수했다. 반공을 곧바로 ‘친일 친미 친독재’와 연결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오늘의 북한 현실이나 냉전 후 국제질서를 보더라도 이 대통령의 ‘현실적 반공’은 사후에 정당성을 얻었다.
임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반공법 위반 등으로 두 번 옥살이(문인간첩단 사건, 남민전 사건)를 했지만 다 민주화유공자로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민전은 도시게릴라 투쟁을 벌이려던 자생적 공산주의 조직이다.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 사건이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오류’가 바로잡힌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리영희도 비판한 임헌영의 관점
임 소장은 2005년 리영희 씨와의 대담을 수록한 ‘대화’에서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수정주의적 관점을 편든다. 그러자 리 씨는 “고르바초프 정권 이후에 소련에서 한국전쟁 관련 기밀문서가 대량으로 비밀 해제돼 1948년 말경부터 북이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했음이 밝혀졌다”고 설명하면서 오류를 지적한다. 이어 임 소장이 맥아더의 ‘6·25 전황 조작설’이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자 리 씨는 “미국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고정관념으로 단정하는 일일랑 경계하라. 과학적이 되라”고 충고한다.
임 소장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총선거에 대해서도 ‘친일파들이 득세하여 통일을 위한 남북협상파들이 불참한 가운데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이 보낸 지령문을 보면 소련군은 북에 진주한 직후부터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했음이 드러났다.
좌파 현대사 연구의 대부(代父)격인 리 씨는 ‘대화’에서 “이북에서는 새나라 건설과 사회혁명의 열기가 충천하고, 일제시대의 친일파를 비롯한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누렸던 자들이 깡그리 청소되고 있었는데, 같은 민족의 땅 이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는 한숨과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라고 말한다. 리 씨는 “좌익인사들이 항일과 독립운동의 주축이었음을 해방 후 세대가 알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남쪽보다 북쪽에 더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과 맥이 닿는 논리이다.
하지만 정통성 논쟁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북한 전역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와 찬양구호로 뒤덮은 세습독재국가이자, 인민을 굶겨 죽이는 ‘인권의 지옥’에 어떤 정통성이 있다는 말인가. 좌익 항일애국지사들이 지하에서 통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 사실상 국권을 상실해 40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에 이승만 김구 선생처럼 해외에 나가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도 있지만 국내에서 민족을 계몽하는 교육 언론 사업, 경제의 독립을 위한 산업 활동을 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일제에 일면 수동적(受動的)으로 협력하고, 일면 저항하면서 독립 후에 대비해 민족의 힘을 양성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려면 시대적 상황과 일생의 행적을 따져봐야 한다. 한때의 어쩔 수 없는 ‘수동적 협력’을 들추어내 친일로 단죄하다 보면 해방공간에서 성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949년 반민특위도 단죄의 대상을 악질적 민족반역자 200여 명으로 국한했던 것이다.
‘민족의 힘’ 육성한 인물 평가해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중반을 산 선조들은 한일강제병합을 막지 못했고, 학교에서 매일 아침 일왕이 있다는 동쪽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황국신민(臣民)의 선서를 외치고, 창씨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하며 살아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친일파’의 후예들이다. 누가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자기들의 잣대가 절대적이라는 독선에 빠져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들쑤시는 것은 또 다른 편 가르기이고 후손 망신주기이다. 특히 남쪽보다 북쪽에 더 정통성이 있다는 사관(史觀)에서 나온 명단이라면 ‘대한민국 61년’에 대한 상처내기이다.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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