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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생각의 쉼터

우면산의 여름 10

두바퀴인생 2009. 9. 6. 20:35

 

 

우면산의 여름 10

 

 

 

새벽길의 서초로

 

 

새벽 풍경

 

새벽 5시 반경인데도 버스에 사람들이 많다.

 

아마 양재동 인력시장에 새벽일을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을 이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서 나서는 사람들이다. 저렇게 나간다고 다 일터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경기가 나빠서 그중 일부만 현장으로 나가고 나머지는 대부분 그냥 돌아온다고 한다. 수출이 증가하며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나 아직 피부로 느끼는 이 사회는 지금 너무나 힘든 시기인 것은 사실인것 같다.

  

 

 

새벽길의 오토바이 청소부

 

 

새벽길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새벽길을 열심히 달리는 영업용 택시,

새벽에 일찌기 어딘가를 달려가는 자가용,

새벽에 일을 마치고 약간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는 아가씨,

새벽일을 나서는 아저씨,아줌마,

새벽 신문을 돌리는 오토바이를 탄 사람,

새벽 도로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

벼룩신문을 돌리는 미니봉고,

새벽길을 청소하는 물청소차,

새벽 음식물 청소차와 쓰레기 청소차,

지난 밤에 사고로 방치된 오토바이,자가용,

도로상에는 흰 페인트로 사고지역 표시,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길을 다니는 청소부 아저씨도 있다.

난 그분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지역을 담당해서 청소하시는 아저씨가 별도로 있는데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닌다. 아마 다른 목적도 있으리라...

 

새벽길을 가다보면 술 취한 사람이 토해낸 자리가 자주 보인다.집 비둘기들이 열심히 주어먹고 있다. 비둘기들을 자세히 보면 발가락이 잘린 비둘기가 많아 보인다.

 

인도 옆에는 가끔 화장품을 떨어뜨린 경우도 있는데, 아마 술 취한 아가씨가 떨어뜨린 물건인 모양이다. 인도를 가다가 보면 가끔씩 돈을 주을 때도 있다. 나의 경우는 아직 없으나 어떤 사람은 지갑도 주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새벽 인도를 걸어가면서 본 것들은 주로 먹고 버린 쓰레기를 너무나 많이 본다. 길가에 별도의 쓰레기 통이 없으니 요즘 사람들은 벼룩신문,가로수 통이 유일한 쓰레기 통이다. 일정한 장소에는 옛날처럼 쓰레기통이 설치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밤사이 사람들이 길가 벤치나 계단에 앉아서 먹고는 컵,캔,과자 껍질을 많이 버린다.담배꽁초,맥주/음료수캔,소주병,땅콩봉지,저장칩,담배,손수건,휴대폰 고리,라이타,매출전표,영수증, 명함,전단지,시간지난 로또복권 등이 주종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의자,테이블,깨진거울/유리,형광등 등 돈내고 버리기가 귀찮아서 몰래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내차가 더러워서, 내집이 더러워질까 내 버리는 비양심들이다.

 

보이지 않는 밤이니 공중도덕이니 양심은 다 갖다 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힘겨운 인생살이를 한탄하며 이 사회를 비난하며 혼자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집에 가도 집에서 절대로 반겨 맞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경기에 벌이는 힘드니 경제적 어려움으로 서로의 앙금은 깊어지고 갈등은 증폭되어 비난과 미움으로 변질되고 급기야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씨 하나로 싸움으로 이어지고, 그 싸움은 급기야 기물을 부수고 폭행이나 살인으로 이어지며 심지어는 신나를 뿌리고 온 가족이 같이 자살하는 경우도 허다한 현실이다.

 

 

 

여명 

 

 

출세에 대하여...

 

인간은 누구나 출세를 원할 것이다.

 

남보다 권세를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수 많은 처첩과 식솔들을 거느리며 큰 저택과 고급 자가용을 몰거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싶을 것이다. 매일 밤 지인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벌이고 최고급 의복과 음식으로 안락하고 행복한 영화를 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20~50대 즉, 30년 간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 지구상에서 역사를 쓰게 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나이대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 이 나이 전에는 어려서, 이 나이 후에는 나이가 많아서 판단력도 흐리고 권력의 뒷편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한니발 장군은 약관 20대 후반에 로마제국의 이탈리아 반도를 16년간이나 초토화시키면서 종회무진하지 않았던가! 그 이전 알렉산더 대왕은 약관 20대 나이에 강대국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기타 수많은 영웅 호걸들도 모두 이 나이대에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이 사회는 40대가 인생의 절정기를 이루게 되어 있다. 앞으로 추세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50대도 전성기를 누리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고전적인 사회환경에서 하는 말이다. 이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나이 불문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도 많다.

 

아직은 성급한 이야기인가?

 

젊고 활동적인 이시기에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성기를 누리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며 어쩌면 노후도 비참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팔자는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의 행운을 기대할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 로또로 인해 인생역전을 한 경우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대부분 알거지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좋으니 한번이라도 당첨이 되었으면...'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

아무리 높고 많은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이 세상을 하직할때는 빈손으로 가게 된다.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한 껍질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는가? 한 치속을 들여다보면 다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석회성분의 뼈에 근육과 핏줄이 만들어지고 피부와 머리털,손톱이 붙어있는 형상으로 내장속에는 음식물과 인분이 가득차 있는게 인간이다. 예쁘다는 것은 몸매나 얼굴이 좀 보기에 좋아보이는 형상에 불과하며 속은 대동소이하다. 물론 못생긴 여자들이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너무 목메이지 말라! 돈을 벌지 못하여 노예처럼 살던, 돈을 많이 벌어 황제처럼 살던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누구나 빈손으로 가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운 좋아서 건강하게 오래 살 수는 있어도 그 수명을 연장하기에는 아직 과학의 힘으로 아직 완벽하지 않다. 아마 앞으로는 수명이 늘어날 것이다. 평균 수명이 120세~150세로 늘어나는 것은 돈이 잇는 사람들의 경우를 말한다. 고급장기를 교체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 것이며 돈이 없는 사람은 인조장기나 동물장기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몇년전 중국에서 장기이식이 유행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가서 이식을 했다고 한다. 그 장기들은 대부분 감옥의 사형수나 총살당한 사람들의 장기였다고 한다. 사형수 간을 이식한 사람이 사형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또 아무리 건강하여도 분노와 화기를 억제하지 못하면 수명을 재촉하게 되어 있다. 폭력과 사고로 얼룩지는 우리사회는 언제 어디서 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주말을 맞아 온 가족이 단란하게 지가용을 타고 야외로 나가던 가족이 마주 달려오는 화물차량에 무참하게 부딪치면서 온 가족이 사망하거나, 모처럼 산 새차를 타고 놀러 가다가 철길 걸널목에서 시동이 꺼져 지체하는 사이에 달려오는 열차에 온 가족이 처참한 불행을 당하는 경우도 나는 보았다.

 

유원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빠져 죽는 일, 화재로 잠을 자다가 재난을 당하거나, 계곡에서 야영을 하다가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떠내려 가거나, 길을 가다가 인도로 달려든 차량에 사고를 당하거나, 놀이가던 버스가 전복되어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등 수많은 경우를 우리는 보아왔다. 이러한 불행에 나에게는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화장장에 가보라!

90년대 초, 어느 더운 여름날  80세가 넘어신 어머님이 돌아가시어 3일장을 끝낸 후 화장장에 같더니 같은 시간에 죽어 실려온 주검들이 천차 만별이었다. 20대,30대,40대, 50대...

물놀이 하다 죽은 사람,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 질병으로 죽은 사람,등 등 등...

 

아무리 둘러봐도 80세가 넘은 사람이 없었으며 대부분 10대,20대,30대,40대였다. 남들은 울고 불고 날리를 쳤건만 우리 가족들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만 있었다...호상인데 울긴 왜 울어... 저들을 봐라! 저 젊은 나이에 죽어 가족들이 난리를 치는데, 80세가 넘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무어가 서러워서 울겠냐? 우리들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차마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망설이다가 어떤 조카가 참다 못해 울기를 시작하자 모두들 약간씩 흐느끼지만 형식적인지라, 시간만 지체할 것 같아서 제지하고 관리하는 아저씨께 어서 화장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 왈 '저승가는 여비라도 관에다가 꼿아라' 하길레 돈을 조금 꼿았더니, 그렇게 적게 꼿으면 저승길을 가다가 굶는다고 한다. 저승가는 귀신도 돈이 필요하단 말인가? 난 처음 당하는 경우라 무척 당황하였는데, 적게 꼿으면 불효막심한 눔이라 욕먹을 까봐 눈치를 보다가 조금 더 꼿았다. 화장장 아저씨들도  숙달되어 눈치가 빨랐다. 80세가 넘은 노인이라는 사실에 더 이상 돈이 나올 것 같지 않아보이는지라 화실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난 돈을 정말 시체와 같이 불태우는줄 알고 유심하 쳐다보았더니 화실에 넣기전에 아저씨들이 얼렁 그 돈을 빼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게 아닌가... ㅎㅎㅎ 저승사자가 따로 없고 저승길 주막집이 따로 있는게 아니구나! ㅎㅎㅎ 난씁스레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나라의 퇴폐한 장례문화를 보면서 나라가 멸망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유교의 형식주의를 개탄하였다.

 

뼈가루를 분쇄하는 아저씨에게 돈을 주어야 곱게 잘 빻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절구통에 뼈가루를 빻는 아저씨를 찿아가서 잘 빻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돈을 조금 집어 주었다.난 화장장의 행패를 뼈저리게 느끼고 하루빨리 이러한 장례문화가 근절되지 않는 한 약자와 죽은자를 우롱하면서 돈을 갈취하는 모든 분야에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곱게 한지에 싼 뼈가루 를 담은 박스를 받아 전방 근무지 관사로 가져와서 며칠을 숙소에 두고 슬퍼하다가 근처 야산 양지쪽이 뿌려 드렸다.

 

누구에게나 죽은은 언제 어디서 찿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는 항상 준비를 해 두어야 할 것이다.

 

90년대  초, 많은 군대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장래가 촉망되던 육군의 L군단장이 참모들을 대동, 헬기를 타고 훈련 브리핑 참석차 포항의 해병사단으로 이동 중 추락하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조종사 이야기에 의하면, 헬기에 이상이 생기자 전 참모들이 L군단장을 안으면서 자신들은 죽으도 좋으니 군단장님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면서 군단장을 둘러싸고 안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순직하고 말았다. 

 

들리는 주변 후문에 의하면, 그 군단장은 월남전 참전시 중대장으로 근무하였으며 1개 소대를 매복 내보낸 저녁 나머지 중대원과 회식을 하였는데 그날밤 매복나간 소대원이 전원 베트콩의 역매복에 의해 전멸하였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하여 항상 죄의식을 느끼면서 살아 왔는데, 그 이후 평소 말이 별로 없으며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항상 공부하는 학자스타일로 머리도 비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잘 해결하는 스타일이었다. 또 성격이 온화하면서도 임무를 추진할때는 단호한 면이 있어 상관과 부하들로 부터 존경을 받아 왔다. 당시 군에서 하나회들이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그분도 승승장구하여 군단장까지 승진하였다. 그분은 매일 아침 출근시에는 항상 속옷을 새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하였는데 '군인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사고 당일 그날도 새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하였으며 운명의 신은 그분을 포함한 우수한 장교들을 대려갔다. 그 참모들 중에는 서울고를 나온 나의 동기생도 있었다.그는 머리도 총명하고 장래가 총망되던 우수한 장교였는데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었으며 지금 모두 국가 유공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 분 사망 후 한 후배 장교는 그 분의 죽음에 너무 상심한 가운데 시름시름 앓다가 그도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한다.

 

 

국립묘지

 

 

      내가 죽거던...

 

내가 죽거던,

아무에게도 알리지마오!

내 삶이 별거 아닌데

누구에게 알리리오!

고향 친구에게도 동기생들에게도

절대로 알리지마오!

 

내가 죽거던, 

슬프하지마오!

내 삶이 당신에게 해준게 없는데 

한 평생 당신에게

원망과 미움만 받았는데

울지마세요!

 

내가 죽거던,

내가 쓴 이 글들을 모두 지워주세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제가

무엇을 내세우리요!

 

내가 죽거던,

당신 딸 부디 행복하게 살도록

자리메김 해주세요!

꿈도 많고 슬기롭던 당신의 딸이

마음에 상처받고 울고 있어요

당신처럼 힘들게 부디 살지 말도록 해주오! 

 

내가 죽거던, 

당신의 찬란했던 마음의 꿈을 마음껏 펼치세요!

우리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것 처럼

우리들의 사랑도 우연이 아니였어요!

 

덧었이 흘러간 긴 세월이

서로의 마음속에  병이되고

썩고 곪아 암덩어리 되어

서로가 가지고서 힘들게 살았네요!

 

내가 죽거던,

그냥 이 땅 아무 곳에나 뿌려주오!

당신이 지나갈 때 흩어지는 향기보다

당신의 마음에 풍겨나는 향기를 맡고 싶네요!

 

내가 죽거던,

봉분도 납골당도 만들지 마오!

당신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싶지 않네요!

 

우리 참 힘들게 살았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였고

끈질긴 이 목숨

오늘에 이르도록

당신과 같이한 이 삶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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