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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그는 누구인가?

 

모세, 그는 누구인가?

 

구약에 기록된 모세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장된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를 많이 볼 수가 있다. 모세는 과연 이스라엘인인가 아니면 이집트인으로 파라오의 왕자였나? 홍해를 과연 기적을 일으켜 바다물이 갈라지고 건넜다는 것인가? 과연 60만 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이동하였다는데 그들에 딸린 처자식과 기타 가솔들 그리고 가축들을 포함하면 수백 만명이 되는 무리를 이끌고 시나이 반도를 40년간이나 방황하였다는 것이 사실일까? 그들의 이동간 물과 식량은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모세는 왜 가나안땅에 가지 못하고 바로 목전에서 쓸쓸히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의 무덤을 유대민족은 왜 일체 비밀에 부치고 숨겼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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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부름을 받고 이집트 고센 지방으로 터전을 옮겼다. 고센이 어디쯤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신왕국 제18왕조의 람세스 2세(기원전 1290-1224년)이거나 아니면 그 직후 파라오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람세스 2세 당시 고센이 나일 델타 동쪽 지역에 있었다는 것,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430년간이나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 등을 감안하면, 상당 기간 고센 지방에 생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요셉을 모르는 새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식을 많이 낳고 날로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찰 만큼 무섭게 불어났기 때문에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노예로 전락시켰다는 이야기, 외세 힉소스 세력에 이집트 왕조가 멸망하고 지배할 동안 힉소스 세력에  동조했기 때문에 외세인 힉소스를 물리친 새로운 이집트 왕인 새파라오가 분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노예로 전락시켰다는 이야기, 그리고 피라미트 등 거대한 역사에 외국 사람들은 모두 동원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원되어 노역 봉사를 하였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처럼 살게된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이럴즈음에 모세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불어나자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이도록 명령했는데, 그러자 이스라엘 레위족 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를 어머니가 차마 죽이지 못하고 파피루스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에 흘러보냈다. 마침 나일 강변에 산책 나와있던 파라오의 딸이 이 바구니를 건졌고,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붙였으며 이렇게 해서 모세는 파라오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한편 모세는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파라오의 왕자라는 가설을 주장하는 유태인인 프로이드 같은 철학자도 있다. 그 증거로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이거나 제사장 같은 높은 신분이었으며 상당히 지적인 사람이었으며 남다르게 종교적인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한다.그는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유일신이 있으나 우상처럼 눈에 보이는 신은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집트 전통 신앙인 우상숭배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으며 이집트 사람들에게 눈에 안보이는 유일신에 대한 자신의 신앙관을 설파하고 전도했는데 이집트 사람들이 듣지 않았다. 이집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 종교 전파 대상을 마침 오래 전부터 이집트 노예생활을 해온 유태인들로 바꾼다. 그래서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들을 이집트의 속박을 풀어내고 자기 종교관을 심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주장을 추정할 수 있는 역사 기록으로 유태인들이 노예로 있었던 한 시절 이집트의 파라오는 아멘호텝 4세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 파라오는 이집트 사람들의 다신교 신앙을 없애려 했다는 것이며 그가 주장한 신은 아톤이라고 하는 일종의 태양신이었다. 그러나 파라오의 이러한 이단적인 종교관을 물리치기 위해서 제사장을 비롯한 기존의 보수파 세력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결과 아멘호텝 왕은 왕위에서 �겨나고 새 종교에 가세한 왕자 모세와 유태인 노예들도 �겨난다는 가설이다.

 

또한 구약에 의하면 모세는 말더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이 그에게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으로의 인도를 명령할 때 주저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그의 말을 전해줄 아론이라는 형제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대목에서 프로이드는 모세가 말더덤이가 아니라 모세는 히브리어를 몰랐고 그래서 그의 말을 전해줄 통역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것이 프로이드의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유태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라는 것이다.

 

이어 프로이드는 하느님은 이방인 모세로 하여금 자신의 선민인 유태인을 구제시킨다. 그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서기 전에 이민족 사람이라는 이유로 버림을 당하여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죄책에 따라 후회로 유태인 자손대대에 걸쳐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유태인에 대한 프로이드의 이런 오디프스 콤플렉스적인 심리 분석은 흥미롭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모세라는 말은 '끄집어 내다'라는 뜻인데, 파라오의 딸이 나일강에서 그를 끄집어 내었으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끄집어 내었다. 모세 라는 이름은 이름이 지어질 때부터 그의 이런 운명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다.

 

파라오의 집에서 자란 모세는 어느날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어느날 이집트 노동 감독관이 이스라엘 일꾼을 무자비하게 채찍질하는 모습을 본 모세는 흥분한 가운데 응급결에 그 이집트 감독관을 죽이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후에 이에 겁을 먹은 모세는 파라오의 집인 궁전을 나와 시나이의 광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미디안인 사제 이드로의 도움을 받고 그의 사위가 되어 양을 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모세는 광야 호렙산에서 장인의 양떼를 몰다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야,모세야"라는 신의 부르심을 들었다. 신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보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에서 구해내도록 명령했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어라"는 신의 소명을 받게 된다.

 

이에 놀란 모세는 "제게는 그런 능력이 없읍니다"라며 신의 명령을 세 차례나 거절한다. 하지만 "너는 신이 보내는 사람"이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소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모세의 출애급은 시작되었고 뒤쫓는 파라오의 군대를 물리치고 6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시나이로 건너가 그곳을 40년간이나 방황하다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좀 이야기가 황당스러운 내용인즉, 한 나라의 왕자가 공사 현장 감독관 한 사람 죽였다고 왕궁에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나, 신의 음성을 듣게된 불타는 떨기나무나,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나일 강 하류쪽 홍해는 그 당시 운하가 없었고 땅이 연결되어 홍해라는 바다를 건널 필요가 없던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기적이라고 한다면 지중해변 만지역에서 파라오에게 쫓기다가  썰물이 드나들던 지역에서 썰물 때 바다를 건너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모세의 기적은 구약 기록자가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임을 자랑하기 위해 과장된 표현을 하였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출애굽 지도

 

모세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성서 외에 그의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어디에도 없다는 이야기다. "장정만도 60만가량 되었다"는 출애급기는 내용으로 미루어 처자식을 포함한 잡다한 사람들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4인가족으로 쳐도 240만 명이나된다는 이야기다. 그기에다 소.양.닭 등 가축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그들이 움직이는데 모래바람이 일고 수백 만명이 가는 곳마다 양식 문제로 엄청난 약탈이 자행되지 않고는 이동이 불가능한 이야기를 구약에서는 과장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런 대규모 민족이동을 역사가 기록하지 않을 리 없으며 더군다나 파라오 군대가 추격전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런 기록은 일체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출애급기는 전설일까? 출애급기에 파라오는 이스라엘 가정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2명의 조산사가 그 일을 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모세 일행이 하루만에 홍해를 건넜을뿐아니라 수적으로 훨씬 많은 파라오 군대와 맞서 싸우고 이들을 따돌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은 다양한 부족의 집합체이며, 부족 전체가 처음부터 이집트 동델타에 모여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부족은 가나안에 그대로 살았거나 일부는 시나이 반도에 유목 생활을 하면서 흩어져 살았을 것이다. 그들도 합류하였다고 구약은 전한다. 이렇게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다양한 부족이 모여 서서히 형성되었다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분석이다.

 

따라서 출애급이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부분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은 수천 명 또는 수백 명 규모 정도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일부 부족의 경험담을 민족 전체의 역사로 확대 해석하여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하에 시나이 반도 시내산에 도착하여 신 야훼와 계약을 맺고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으로 거듭났다. 이 율법을 토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과 사상을 집약한 것이 '십계'이다. 이러한 윤리.도덕적 규율들이 기원전 11-12세기에 확립됐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이후 이 규율들은 기독교.이슬람교로 이어져 시민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윤리.도덕적인 규정보다 상위 개념이 바로 종교적 규정이다. 십계명의 종교적 규정은 하나같이 '다른 신을 모시지 마라','우상 숭배하지 마라','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처럼 엄격한 내용이다. 이 십계명으로 야훼의 유일성,배타적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신과 계약에 의해 하나의 특별한 민족으로 거듭났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런 유일신교는 이후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예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 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자, 야훼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주셨다....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이렇게 너의 눈으로 보게는 해주지마는,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라고 신명기에 적고 있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 이집트를 탈출한 지 정확히 40년 10개월이 지난 뒤였다. "모세는 그곳 모아브 땅에서 애훼의 말씀대로 죽어 모아브 땅에 있는 벧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민족은 모세의 무덤을 비밀로하여 아무도 모르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모세의 무덤이 알려지면 그자리에 사람들이 몰려들면 또다른 신전이 세워지고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신격화가 초래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에 국한된 하느님의 편애속에 구약을 근거로 종교적으로 체계화 된 것이 오늘날 유태교이다. 하나의 민족 종교가 로마 점령과 식민통치,그리고 그후 로마 통치에 반기를 들다가 유대나라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항전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곳에서 추방되어 전 세게로 흩어지게 된다. 로마 속주 시대 동안 혼돈의 시대를 거치면서 예언자로 태어난 예수에 의해 유대민족에서 새로운 이단 종교로 기독교가 태동하게 된다. 그후 기독교는 유능한 제자들에 의해 로마시대 수없는 박해와 멸시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면서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다가 결국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에 의해 정식 종교로 인정받게 되자 기독교 세력은 세계 종교로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서구 유럽 사회까지 확산하게 된다. 그후 기독교는 민족 종교인 유대교와는 달리 정치화되면서 중세의 유럽국가를 지배하게 되었고 전 세계는 로마 교황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하였다. 7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 등 성지회복도 진행되었으나 권력에 편승하여 부패하기 시작한 기독교는 중세를 암흑시대로 만들고 말았다.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