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21세기 한.중.일 삼국지' 4

 

'21세기 한.중.일 삼국지' 4

 


동북아역사재단 '동해 당위성 설파' 국제학술대회

 

 

 

미.중.일 대 닫힌사회 한국

21세기는 세계화 시대요, 국경 없는 무한 경쟁 시대인데 한국만은 너무 배타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교포 2세들의 견해이다. 한국의 스포츠는 외국과 경기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될 듯 한 인상이요, 지구촌의 양극화는 한국의 양극화와는 무관하다는 듯 한 사고,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이나,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극성스런 응원,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건, 서울대 황우석 교수 사건 등에서 그들이 보는 시각은 국내 사람들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 그러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출되면 좋으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분출된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 섬뜩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벌 떼 민족주의'는 대중, 민중이라는 의미 외에 폭도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닫힌 사회성은 우리 사회의 경직성 심화와 더불어 주변국이 우리를 조소하고 이용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전방위적 사회발전을 왜곡하며 편향에 안위하려는 진부 세력의 건재와도 관계가 있다. 우리가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깨고 나가야 할 틀이 아닐 수가 없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 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 정계 일부의 구악에 대해서는 비분강개함이 당연하며, 그것이 합당한 대처 방안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일관에 있어 대통령부터 국민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항상 동일한 목소리에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가?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본의 위정자들이 북한이나 중국을 두려워하듯이, 우리의 비분강개를 버거워하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우리들의 이러한 감정을 역이용하여 우리를 자극하고 유도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좀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채 손가락질당하고 얻을 것도 잃어버릴 만큼 아둔한 민족이 아니지 않는가?

 

중국의 고구려사, 그리고 한국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한마다로 "고구려는 중국의 변경지역에 위치했던 하나의 지방정권" 이라는 요지의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마다정', '리디룽' 등의 학자들에 의하여 출간된 공식 보고서 이론에 의하면, " 몇백 년이라도 좋고 몇천 년이라도 좋다. 청나라 영토 범위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다" 라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구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한반도의 대부분, 특히 한강 이북 지역은 줄곧 고대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이 된다. 아울러 그들은 고구려가 705년 동안 중국 중원의 왕조로부터 책봉을 받고 중원에 조공했었다는 것을 이유로 고구려가 중원 왕조에 예속된 중국의 한 지방정권이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이와 같은 고구려사 왜곡은 너무 어리석고 무모하며, 국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만 깍아내리는 행태에 불과하다.그들이 교육시키고 있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가 한반도의 국가임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 대부분이 동북공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며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구너이 아니라 배운대로 한반도의 고대 국가라는 사실로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런 중국인들의 반응을 보면 독도에 대한 일보인들의 반응과 흡사한 면이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다케시마의 존재 자체에 대하서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일본은 고구려가 한반도 고대 국가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만주지역 고구려 유적에 대해서도 한반도의 고대 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 국내외적인 인지와 기술만 보더래도 고구려와 한국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동북공정 사관파들의 억측은 전혀 설득력이 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그런대도 중국은 고구려 역사 왜곡을 위해 베이징 사회과학원과 동북 3성이 공동 추진하는 국책 사업으로 향후 5년 간 약 200억 위안(약 3조 원)을 투입하려 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그렇게 아둔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이미 서북공정, 서남공정을 추진한 후에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며 우리 한국 사학계는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주변국가 역사 학계와 긴밀한 정보 교류와 학술 교류를 제대로 통하지 못하여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대비하지도 못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추진에 대해 그들은 이미 여러가지 반대 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으며 억측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술수에 한국은 또다시 뒷북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역사 학계 관련자들이 " 삼국사기 이후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어 문제 될 것이 없다." 는 등 무책임한 호언장담이나 하고 있는 판국이다. 그들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 부실한 자료준비, 전문성 과 외교능력 부실로 국제 외교 논쟁에서 매번 당하기만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하며, 한편 한국 역사 학계는 분파 싸움과 내분을 접고 안일한 망언이나 발표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  돈벌이에 급급하여 TV 역사 드라마 인기도에 따라 관련 역사 소설이나 쓰는 돈벌이 학자들이 아니라 전문성과 실질적인 능력을 갖춘 학자들을 학계에서 우대하고 선배 식민사관 학자들에게 배운 후학들인지라 냉철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고구려 역사 복원에 대한 지원은 물론 금번 남북 정삼회담을 통해서 북한과도 공조를 취하여야 할 것이며,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여론 조성 및 역사 학계와 공조를 취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독도와 일본, 그리고 미국

2006년 2월 22일은 일본의 시마네 현이 2005년 조례를 제정한 뒤 최초로 맞이하는 '다케시마의 날'이었다. 일본의 우익 단체, 언론,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주최의 기념 포럼도 기획하는 등 다케시마 1주년 행사가 성대히 치러졌다.

 

조용할 만하면 다시금 되풀이되는 독도 문제. 한.일 양국에 있어 과연 꺼지지 않는 불씨일 수 밖에 없는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역사적 측면'과 '국제법적 측면'을 검토해 보자.

 

먼저, 역사적 측면에서 한국 측이 제시하는 고문서에 나타난 지도가 많이 있다. 그러나 독도가 한국 측 영토임을 인정하는 일본 측에 의해 제작된 고문헌은 존재하나, 반대로 일본 측 영토임을 인정하는 한국 측에 의한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역사적으로 독도는 일본 측이 아닌, 한국 측의 영토일 개연성은 훨씬 높다. 그러나 그 고문서의 입증 문제와 증거 자료로서 얼마나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자료들이 방증 자료는 될 지언정 1차적이며 직접적인 증거자료로는 활용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국제접적 접근에서 보는 관점이다. 특히 2차 대전후 일본 영토 규정에 관한 연합국의 몇 가지 문서와 센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의 기술상의 차이, 그리고 그러한 차이가 빚어지게 된 경위와 이에 대한 미국 측의 의도를 알게 되면 독도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의외로 논리적으로 �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 1946년 포츠담 선언(제8항)

 "카이로 선언의 제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일본국의 주권은 혼슈, 훗카

  이도, 큐슈, 시코쿠와 우리들이 결정하는 제 소도에 국한될 것이다."

 

 *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제2조)

 " 일본국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포함한

   반도의 모든 권리, 권한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연합국은 포츠담 선언에 의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전까지 이와 관련 몇 가지 문서를 작성햇다. 그중 하나가 1949년에 발행한, ㅏ로 '연합국의 구 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이다. 제3항은 "한반도 본토와 그 주변의 모든 섬을 한국에 반환한다." 고 규정하고, 그안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를 지칭한 '리앙쿠르트 락(Liancourt Rocks')을 정확히 명시하였다.

 

아울러 최근에 새로 발견된, 역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준비 과정에서 작성된 지도에도 독도는 한국 영토임이 명기되어 있다. 이 지도는 평화조약 과정에서 주도적 역활을 한 영국 외무성 산하 조사국에서 1951년 3월에 제작하여 미국 정부에 통보한 평화조약 초안에 포함된 것이라 한다. 분명 그 지도상에는 선으로 표시하여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배제하여 한국 영토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일본에 반환해야 할 영토로 일관되게 규정되던 독도가 정작 중요한 샌프란시스코 조약문서에는 '돌연' 자취를 감춰 버린다. 아무런 이유나 설명도 없이 독도라는 명칭은 사라지며 그때부터 독도는 한.일의 불씨로 남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양측의 상반된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분분하다. 독도 문제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여야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왜, 어떠한 이유로 독도를 돌연히 누락시켰는지, 단순히 실수였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관련 자료가 미국이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일본의 음흉한 대미 공작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미국을 방문하거나 국제회담에서는 반드시 일본의 총리나 정부 각료마다 미국 대통령이나 대표를 개별적으로 만나 반드시 독도 문제를 거론하여 각종 양보로 미국의 환심을 사고 국제 여론화 시켜 오고 있다는 점을 한국 정부는 알고나 있을까? 국제 외교에서 한국 외교는 일본에 비해 항상 걸음마 단계라는 점이다. 한국 현지 외교관들이나 외유를 떠나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각료들은 즐기고 자신의 인맥 넓히기에만 바쁘지 과연 독도 문제에 대하여 국제 사회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한번 되씹어 볼 일이다.

 

그러면 이 조약이 작성된 경위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이 조약이 작성될 시점은 불행하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점이었다. 한국전쟁은 또다시 일본에게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끔 하는 절호의 빌미를 마련해 주고 말았다. 그당시 미국과 일본은 미.일 동맹관계를 결성하면서 동북아 지역의 공산화 저지에 대한 자본주의 아군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한국전쟁 와중에 한국이 정신없는 틈을 노려 일본은 미국을 집요하게 꾀어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게끔 미국은 설득시켰으나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설득에는 실패했다. 그리하여 조약 본문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규정하는 것까지는 어찌하지 못한 채 결국 지금과 같은 독도의 돌연 삭제하는 애매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조약 명문상 지역명을 삭제함으로써 독도를 끌어갔다.

 

하지만 일본의 야비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아후에도, 1965년 미국의 동북아 방위 정책을 근거로 한.일 간의 우호협력의 필요성을 느낀 미국의 종용에 의해 한.일 기본관계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국가 재건을 위한 경제 개발 자금이 절실히 필요했던 한국의 곤경을 이용하여 독도 문제를 한.일 양국 사이의 영토 문제를 규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국 측의 강경한 태도로 무산되었으며 그후에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독도 상공에 자위대 소속 항공기를 비행시켜 국제법상 영토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러다가 또다시 기회가 �아왔는데, IMF 위기로 한국에 불운이 �아온 것이 일본에게는 호기가 되었다. 한국 경제를 망처버린 김영삼 정부 시절 터지게 된 IMF는 크나큰 재앙이었다. 당장 국가 부도사태를 맞게된 한국 정부는 엄청난 외자가 필요한 입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일본으로부터 받는 대신 벙어리가 된 채 일본과 '신 한.일 어업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요구에 밀려 EEZ 기점을 우리 땅 끝인 독도가 아니라 대폭 양보하여 울릉도로 삼는 치명타를 자초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독도는 국제법적으로는 해저 자원의 공동 관리가 이루어지는 중간 수역 속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는 곧 독도를 영토분쟁지로 만들려는 일본의 오랜 숙원이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독도 문제는 우리 국력의 열세와 우리의 부주의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스스로 뼈저리게 반성하게 만드는 치욕적인 자화상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계속)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