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의 흐름과 변화/좋은 책, 요약,그리고 비평

'뜻으로 본 한국역사' 10

 

'뜻으로 본 한국역사' 10

▲ 스키타이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빗 상부의 전투장면 장식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팔만 대장경에 새긴 마음
 
몽고의 거센 바람
드디어 일진 폭풍이 고비사막으로부터 불어 왔다.
몽고가 고려에 쳐들어오자 그 흉악함은 거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살례탑이 어떻게 들어왔으며, 달로화적이 얼마나 사나우며, 차라대가 어떻게 포악하였는지 일일이 다 말 할 수가 없다. 다만 한마디, "몽고 군사가 지나가매 개,닭 소리가 없어졌다" 하면 그만이다. 고종 41년 차라대가 왔던 한때에 사로잡혀간 사람만 해도 30만 6천이라 하며, 서울 시가에 진을 치고는 여자들의 젖을 잘라 삶아먹었다는 말만 들으면 그 대략을 짐작할 수 있지 않는가?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닥지 않으면 안되는 이 역사,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찢었다가 그래도 또 모아대고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역사냐?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이니라.  너는 이나라에 왜 일찍이 났으며 나는 왜 이 나라에 또 무었하지고 났느냐? 아서라, 누가 나고싶어 나는 인생이며 아니 살고 싶어 아니 사는 살림이더냐? 어느 것이 하고 싶어 하는 나라며, 아니 지고 싶어서 아니 질 수 있는 고난의 짐이라더냐?
 
네 핏대속에는 거란의 피가 알마나 섞여 있는지 아느냐? 내 핏대속에는 몽고.되눔.왜눔.아라사눔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아느냐?  아니다. 마야 부인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는 석가의 혈관 속에는 드라비다.인도.아리안.러시아.이라크 가지가지 인종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났다는 예수의 심장 속에는 다말.아합.룻.우리아의 아내, 가지가지 여자의 피가 드나들고 있다. 역사의 흐름은 맑은 물, 흐린 물 따로 없다. 역사의 음악에 높은 악기, 낮은 악기의 구별이 없다.  다만 삶에 대한 뜻이 있을 뿐이다.
---------------------------------------------------------------
몽골의 고려 침공과 항쟁은 ‘국제 전란’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1∼3/구종서 지음/살림/각 1만5000원

 

저술가 구종서씨가 항몽전쟁을 다룬 저서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전3권)을 출간했다. 구씨는 집필을 위해 몽골·중국·일본·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지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중앙일보 국제부장과 논설위원 등을 역임한 저자는 칭기즈칸의 삶을 다룬 역사소설 ‘세계의 정복자 대칭기스칸’, ‘무인천하’로 이미 필력을 인정받은 구씨는 “몽골이 등장해 아시아 패권에 도전하면서 동아시아의 패권국가인 금을 밀어내고 고려에 침공했을 때 개경의 정치인들은 강국이 된 몽골을 대국으로 인정해 실리를 취할 것인가, 야만족과 싸워서 자주해 명분을 지킬 것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1231년 고려를 침공했다. 이후 몽골군은 40년 동안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다. 40년간 치른 항몽전쟁 기간 항몽파의 대표적 인물은 최우·최항 등 무인들이었고, 화친파는 유승단·최린 등 문신들이었다.

 

1권 ‘풍운천하’엔 당시 동북아시아의 혼란, 거란족의 침공, 고려와 몽골의 접촉 등에 대해 설명했고, 이어 2권 ‘참혹한 산하’, 3권 ‘불안한 평화’에는 고려의 권력 교체, 고려와 몽골의 동맹 등에 대해 논했다.

 

몽골의 고려 침공과 고려의 장기 항전을 ‘국제권력의 쟁탈과정에서 발생한 전란’이라고 강조한 구씨는 이번 책을 통해 몽골과 고려의 국내 권력변동이 어떻게 이뤄졌으며,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에서 몽골은 어떻게 정벌했고, 약소국가들은 그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추적했다.

------------------------------------------------------------------------------------------ 
 
환난에 대한 국민의 태도 
적병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구성(龜城)에서 겨우 군사 열둘을 데리고 싸워 화살이 팔뚝에 꽂혀도 북치기를 쉬지 않고 군사를 가다듬어 끝내 물리치고 야 말았던 정주분도장군 '김경손' 같은 사람도 있었다.
 
-----------------------------------------------------------------

'11월의 호국인물' 김경손 장군

연합뉴스|기사입력 2007-10-31 09:53
광고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전쟁기념관(관장 권영효)은 고려시대 정주와 귀주 등지에서 몽골 군을 격퇴한 김경손(金慶孫( ? ~1251) 장군을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31일 발표했다.

김 장군은 평장사(고려시대 정2품 관직) 김태서의 아들로 태어나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으며 지략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1231년(고종 18년) 정주 분도장군(分道將軍) 때 몽골 군이 압록강을 건너 정주성까지 이르자 결사대 12명을 이끌고 성문을 나서 분전, 격퇴했다. 같은 해 9월3일 몽골 군이 귀주성으로 몰려오자 김 장군은 성 밖으로 나가 선두에 있던 적장을 쏘아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4~5차례 적진을 타격했다.

김 장군은 몽골 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군사들을 성 밖으로 나오도록 해 일제히 공격하자 몽골 군은 퇴각했다.

이후 몽골 군은 4개월에 걸쳐 끊임없이 공격했으나 고려군의 불굴의 항쟁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김 장군은 몽골 군을 물리친 전공을 인정받아 대장군으로 승진했다. 1237년 전라도지휘사로 재임하면서 이연년의 난을 진압해 추밀원(중추원의 후신)의 부사가 됐다.

1249년 장군의 명망이 높아지는 것을 꺼린 실권자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로 유배당했고 2년 후에 최항이 정적을 제거할 때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다음달 8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관단체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 장군의 헌양행사가 거행된다.
 ----------------------------------------------------------------------------------------
 
 
산속의 외로운 성을 지키는데 대적이 굴을 파고 들어오니 쇳물을 녹여 내리부어 태워버리고, 화공을 해오니 흙물을 풀어서 부어 끄고, 포군을 쏘면 이쪽도 포군을 쏘고하였다. 조정에서 이미 항복하였으니 항복하라고 권항사가 왔는대도 종내 듣지 않고 싸워 권항사가 어쩔 줄을 몰라 자살하려 하자 할 수 없이 나라 명령에 따라 항복하였고, 시골로 내려가버린 '박서' 같은 사람도 있었다.
 
한편 고려 조정은 강화섬으로 옮기도, 거기서도 호의호식과 잔치로 날을 보내고, 그런 와중에 내란도 있었다.
 
합천 해인사 장격각에 올라가면 16년 세월을 들여서 완성하였다는 8만이 넘는 경판이 글자 획 하나 흐림이 없이 또렷또렷이 있는 것을 보지만 그것은 정말 참 정성에서 된 것일까? 참 신앙의 표시일까? 저희는 날마다 잔치에 취하며, 백성더러는 나무를 들여라, 돈을 바치라 하여 만들어 놓은 이 판목, 7백년 간 이 산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이 경문, 이것은 바로 말로만 하는 정치,죽은 신앙의 모양 그대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볼 마음이 없어진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그러나 그 탑, 그 경판이 비바람을 뚫고 서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밑에 깔리는 넓고 굳은 민중의 피땀이 결정된 힘이 솟는 것일까? 허다한 중생의 공양의 신령한 힘인가? 그 딴딴하고 반듯한 판목은 영원히 무너질 수 없는 민족의 몸이 나타난 것인가? 그 또렸또렸한 글씨를 새긴 것은 털붓이나 쇠칼이 아니라, 무딜 길 없는 역사의 손, 정신의 칼이었던가? 그렇다면 그 탑, 그 경판으로 하여금 영원히 남게 하라. 그 많은 전쟁 속에서도 이 각판을 간수해온 가야산의 깊은 골짜기가 남아 있을 것이요, 그 쉬지 않는 눈비 속에서도 이 탑,이 경판을 지켜준 운명이 있듯이 이 역사를 지켜주는 신명(神明)이 있을 것이다.(계속)
                                                                 -서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