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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위험지역 선교활동을 자제하자는 개신교 단체들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선교활동에 신중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물론 그동안 적극적이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정부의 권고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샘물교회도 사과문을 냈다. 정부의 경고를 거듭 무시하고 파송을 강행해 왔던 걸 생각하면 유감스럽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탈레반의 요구 중엔 ‘아프간에서의 선교활동 금지’가 포함돼 있다. 이슬람권의 호감을 사려는 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슬람 나라에서 선교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쿠란은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으로부터 구별되리라”고 말한다. 이슬람권은 이에 따라 다른 종교를 믿는 행위는 막지 않지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처벌한다. 카자흐스탄에선 이슬람 교리의 적극적인 전파도 처벌한다고 한다.
우리 개신교는 현지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정서를 일쑤 무시했다. 때문에 사고도 많이 쳤다. 아프간의 헤리트 지역에선 2004년 한국인 선교사들이 성경을 배포하고, 집집마다 전도를 다니다가 총격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는 1300여 개신교도들이 체육·문화 행사를 표방하고 선교 이벤트를 벌이려다가 추방당하기도 했다. 이 행사를 주관했던 선교사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프간을 장악한 어둠의 권세는 무너져 내릴지어다”라고 썼다. 중국에선 수천명의 선교사들이 ‘암약’하다가 중국 정부에 검거돼 외교 문제가 되곤 했다. 중국에서도 적극적인 선교는 종교 강요로 간주된다.
한국 개신교의 이런 극성은 파송 선교사의 규모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해 말 현재 175국에 1만6천여명을 파송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파송 국가엔 이슬람권 분쟁지역 등 40여 위험국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수십 곳의 선교단체나 교회가 경쟁적으로 내보내 최소한의 통제도 하기 어려웠다. 위험지역 선교는, 교계에서 헌신성을 인정받고 교회 내부의 결속을 꾀하는 데 유용하다. 주도권은 덤이다.
더 큰 문제는 선교 행태다. 한국 개신교는 다른 종교인을 가르치고, 구원해 주겠다는 자세로 나선다.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제국주의 때나 통하던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고 조화를 추구해야 할 때다. 그 속에선 선교도 개종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관계 증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