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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장군의 마지막 전투 '자마회전' 2 로마 스키피오 장군의 한니발의 조국 카르타고 심장부 타격 대회전 로마가 강대국이 된 것은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에 승리한 이후이다. 한니발의 마지막 전투, '자마회전' 카르타고에 도착한 한니발은 자신이 대리고 온 1만 5천의 정예병과 동생 마네고의..
한니발의 침공을 이겨낸 다문화 연합체 로마제국 6 이민족을 포용하여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이야기... 고대 카르타고 수도 모습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기원전 200년-기원전 187년) * 한니발의 시리아 망명과 사라진 재기의 꿈 기원전 200년. 로마 민회와 원로원의 절대적 지지로 젊은 나이에 제1..
한니발의 침공을 이겨낸 다문화 연합체 로마제국 5 이민족을 포용하여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이야기... * 자마 회전 (제 8차전: 제2차 포에니 전쟁 마지막 회전) [제2차 포에니전쟁] '스키피오'가 제시한 강화조건을 로마 원로원과 민회는 승인하였으나 카르타고의 장로회의만 의결하면 성립될 단..
한니발의 침공을 이겨낸 다문화 연합체 로마제국 4 이민족을 포용하여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이야기... 로마군 모습 * 포에니 전쟁 말기: 기원전205년-201년 '스키피오'는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열렬한 요구와 민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30세 나이에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스키피오'..
<로마 제국의 흥망 성쇠> ▲ 그라쿠스의 개혁은 기득권측의 반발과 현실의 장벽에 부딪혔다. 사진은 로마의 콜로세움 * 로마의 기원-트로이 전쟁 후 왕족 이주 고대 로마는 기원전 1250년 '호머'의 <일리아스 Ilias>에서 노래한 '트로이 전쟁의 전설'에서 나오는 '트로이'는 다다넬스 해협의 길목..
한니발 전쟁: '자마회전'(제 8회전) '스키피오'가 제시한 강화조건을 로마 원로원과 민회는 승인하였으나 카르타고의 장로회의만 의결하면 성립될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아마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돌아오면 최선의 방안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시간을 끌었던것 같다. 통상 강화교섭 동안은 휴전하는 관례에 따라 '스키피오'도 군사행동을 자제했다. 그런데 휴전기간 동안에 사고가 발생했다. 로마에서 '스키피오'에게 가는 보급선단이 태풍을 만나 수도 카르타고 해안 40키로미터 가까이 피신을 했는데 카르타고 해군이 이 보급선단을 나포하여 수도 항구로 예인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키피오'는 즉시 카르타고에 반환을 요구했다. 이러한 '스키피오'의 요구에 대하여 카르타고 장로회의가 의견이 갈라져 있을때, 한니발이..
한니발 전쟁: 제2차 포에니 전쟁 후기 (기원전 210년-기원전206년) * 스키피오의 등장 한니발 전쟁이 일어난지 9년째. '칸나'전투에서 참패 당한지 6년째인 기원전 210년. 이해의 집정관으로 선출된 두 사람 가운데 '마르겔루스'가 파견된 곳은 이탈리아 남부 '폴리아' 지방이고, '레비누스'가 파견된 지방은 시칠리아였다. 최전방에 파견된 '마르겔루스'는 한니발과 직접적인 접전은 회피하되 소규모 전투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적군의 병력감소를 꾀하고, '폴리아' 지방의 요충인 '타란토' 탈환을 준비하는 것이다. 4년동안 성공적인 군사.외교 전술로 '마케도니아' 봉쇄작전에 성공한 '리비우스'는 동부전선을 전 집정관 '갈바'에게 인계하고 시칠리아 전선으로 갔다. 시칠리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