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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법치를 허무는 386 운동권 정권

<포럼>法治를 허무는 ‘386 운동권’ 정권
[문화일보 2006-09-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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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집권세력의 주축인 ‘386 운동권’이 갖고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법치주의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모든 질서를 뒤엎 으려는 반체제·반헌법적 성향을 띠고 있는 이들은 법치(法治)를 아무나 타고 가면 되는 빈 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법은 자신 들이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한 축(軸)인 법치주의를 우습게 보 는 것이다.
 

법치를 무시하는 이들의 성향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하나는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믿는 목적을 위해선 무슨 법률이 든 만들 수 있다는 지독한 실정법 만능주의이고, 또 하나는 역시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믿는 결과를 추구하기 위해서 절차는 문제 가 안 된다는 편의주의적 생각이다.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문 관련 악법, 국민의 사적 자치권과 사유 재산권을 역시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학법을 제정 한 것은 전자의 예이고,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둘러싼 혼란은 후 자의 경우다. 두 가지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집권세력은 그들 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신문악법(惡法)의 몇몇 조항이 헌법재판 소에 의해 무효화되는 것을 보고 헌법재판소를 장악할 필요를 느낀 것이니, 헌재소장 임명을 둘러싼 혼란의 뿌리도 법치를 빈 배로 생각하고 있는 집권세력의 굴절된 사고(思考)에서 비롯된 것이 다.

 

우리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대통 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헌법재판 관 가운데서 헌재소장을 임명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과거에 헌재소장을 임명할 때 재판관에 임명함과 동시에 헌재소 장으로 지명해서 국회의 동의를 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번에 청와대가 전효숙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한 후에 전씨에 대해 사표를 내도록 한 것은 전씨를 임기 6년의 헌재소장으로 임 용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런 편법에 골몰한 나머지 헌재소장은 헌 법재판관이어야 하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불과하겠지만 이 사건 역시 법 절차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집권세력의 심리상태가 초래 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전씨는 원래 대법원장이 지명해서 헌재 재판관이 됐기 때문에 일단 사임하고, 대법원장은 다른 재 판관을 지명하고, 대통령은 전씨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한 것인데 , 그 와중에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하는 절차를 무시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잔머리를 몹시 굴리다가 기초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대통령이 전씨를 다시 헌재 재판관과 헌재소장에 동시에 지명해 서 청문회와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하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 헌재 자체의 권위마 저 손상을 입지 않았나 한다. 이 모든 일은 자기들의 코드에 맞 는 임기 6년짜리 헌재소장을 임명하겠다는 독단적 생각에 사로잡 힌 청와대와, 헌법재판관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대통령의 뜻이라는 말만 듣고 불쑥 사임한 전씨 때문에 발생한 희극적 비 극이니 서글픈 생각이 들 뿐이다. 대통령의 뜻이라는 말만 전해 듣고 사표를 낸 전씨의 처신을 보고서 과연 전씨가 헌재소장은커 녕 헌재 재판관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는 것 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민주적 정부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이 헌법재판소와 같은 헌법 보장 기구를 두는 것은 선거로 뽑힌 국회와 대통령이 헌법이 정 하는 법치주의의 테두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편 법을 이용해서 헌법재판소를 장악하려는 의중을 숨기지 않는 현 집권세력의 오만에서 법치주의의 붕괴가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상돈 / 중앙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