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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도박 공화국

[만물상] ‘도박 공화국’
[조선일보 2006-08-21 23:10]    

[조선일보]

1900년대 초 조선에 온 이탈리아 대사 카를로 로제티가 시장 구경을 나섰다가 가게 주인과 손님이 물건을 사고파는 광경을 보게 됐다. 두 사람은 주인이 이기면 10전을 받고 손님이 이기면 1전만 내는 식으로 내기를 하고 있었다. 로제티는 ‘꼬레아 꼬레아니’라는 책에서 “도박에 대한 열정은 아마 모든 한국인이 천부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일 듯하다”고 적었다.

 

▶사람들은 한몫 잡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기대를 걸고 도박에 빠져든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그런 기대를 갖는 경향이 많다. 정부가 2003년 5월 로또 1등 당첨금을 줄이겠다고 했을 때 일이다. 청와대 어떤 사람이 출근길에 택시를 탔다. 청와대로 가자는 말에 운전사는 “높은 데 계시는 분이 로또 당첨금 줄이는 걸 막아달라. 못 사는 사람들한테서 꿈까지 빼앗아갈 거냐”고 했다고 한다.

 

▶캐나다 경제가 죽을 쑤던 1990년대 중반 한 정신의학자가 도박중독자 치료소를 조사했다. 환자 대부분은 배운 게 없는 막노동꾼이나 실업자였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언젠가는 잭팟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연구자의 결론은 “실업률이 올라가고 경제가 불황이면 도박중독자가 는다”는 것이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2004년 조사 결과 성인오락실 이용자의 42.3%가 한 달 수입 200만원 이하였다. 이런 서민들이 도박에 빠져들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2002년 국정조사 자료는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7~9%가 도박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3% 안팎, 도박산업이 성행 중인 호주도 6% 정도인데 비하면 높은 수치다. 절도죄의 35%, 비폭력범죄의 40%가 도박과 관련이 있을 정도로 도박의 폐해는 심각하다.

 

▶도박 광풍이 불고 있다. ‘5대 합법 도박’인 경마·경륜·경정·로또·강원랜드카지노에 지난 한 해 15조원이 몰렸다. 성인오락실만 전국에 1만5000개다. “나를 이렇게 만든 이 세상 모든 성인오락실은 없어져야 한다”. 지난 13일 자살한 어느 도박중독자의 유서다. 이 정권 사람들은 ‘바다이야기’ 스캔들이 터지고서도 “부끄러운 게 없다”고 했다. 말로는 저소득층을 위한다던 사람들이다.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편 같은 도박으로 신세를 망치고 나서야 그들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