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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우리들의 슬픔

세상을 잘못 읽은 죄

[특파원칼럼] '세상을 잘못 읽은 죄'
[조선일보 2006-08-14 22:11]    

[조선일보]

지난달 20일 공개된 히로히토 일왕의 어록엔 두 사람의 ‘A급 전범(戰犯)’ 이름이 나온다. ‘나는 언젠가 A급 전범이 합사되고, 게다가 마쓰오카, 시라토리까지….’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제사가 본인의 신사참배 중단 이유란 사실을 말하면서 “어떻게 이들까지 제사 지낼 수 있느냐”고 찍어서 불쾌감을 나타낸 것이다. 전후 마쓰오카와 시라토리는 옥사(獄死)했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다 죽은 사람들이다. 히로히토 어록은 이들 입장에서 ‘부관참시’에 해당될 만큼 치욕적이다.

흔히 ‘히틀러’와 비견되는 일본의 전쟁광은 ‘도조 히데키’로 알려져 있다. 과대평가인 듯하지만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 총리였으니 영원히 오욕을 피할 방법은 없다. 도조 이외에도 야스쿠니에 합사된 ‘A급 전범’ 중에는 관동군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 봉천(奉天) 특무기관장 도이하라 겐지 등 ‘전쟁광’으로 불릴 만한 인물들이 많다. 반면 마쓰오카와 시라토리는 총 한 번 안 쏜 민간 외교관이다. 히로히토는 숱한 전쟁광을 놔두고 하필 외교관을 콕 찍어 ‘가문의 치욕’을 안긴 것일까?

마쓰오카 요스케는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외교 무대에서 일본 대표로 얼굴을 내밀었다. 국제연맹 탈퇴, 독일·이탈리아와의 삼국동맹 등 당시 일본의 합종연횡은 마쓰오카 작품이다. 일관되게 전체주의 편이었고, 반미(反美)였다. 자신의 평생 업적이라고 믿었던 삼국동맹에 집착해 미국과의 막바지 화해 공작에까지 구정물을 튀긴 인물이다. ‘친독(親獨), 반미’ 노선을 걸은 시라토리 도시오 당시 이탈리아 대사 역시 마쓰오카와 함께 삼국동맹을 주도했다.

마쓰오카와 시라토리의 죄는 ‘전쟁을 일으킨 죄’가 아니라 ‘세상을 잘못 읽은 죄’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몰랐거나, 알고도 침묵했다. 그래서 ‘나라의 줄을 잘못 세운 죄’까지 저질렀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몰랐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와 총부리를 겨누는 진영에 나라를 세운 것이다.

침략이건, 방어건 전쟁이 나면 군인은 어차피 “진격”을 외칠 수밖에 없다. 이런 군인을 이기는 편에 세우는 것이 외교관의 역할이다. 히로히토는 그래서 숱한 전쟁광보다 나라의 줄을 잘못 세운 두 명의 외교관이 더 미웠는지 모른다. 독일과 방공(防共)협정을 맺은 히로타 고키, 전쟁 막바지에 소련에 기댄 도고 시게노리도 같은 죄를 저지른 ‘A급 전범’ 외교관들이다.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을 도덕적 잣대로 평가한다. 사악한 나라였으니 패망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미국 편에 서거나, 적어도 미국과 대립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일본이 뱀 같은 지혜로 기회를 포착했다면 이후 동아시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군부는 중국에서 올린 전과(戰果)에 취해, 외교관은 스스로 구축한 틀에 집착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는 ‘죽을 길’을 걸었다.

일본에선 ‘히로히토 어록’ 공개 이후 전쟁 책임론이 활발하다. ‘정의(正義)’를 묻는 것이 아니다. ‘누가 더러운 전쟁을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강대국 미국과 싸우도록 나라를 끌고 갔는가’를 묻는다. 그들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14명의 ‘A급 전범’들이다. 다시 패전일을 맞은 도쿄에서, 일본의 과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선우정·도쿄특파원 [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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