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2007년 대통령 선거를 기다릴 것도 없이 한반도 최후의 결전이 시작될 모양이다. 김정일이 하는 짓, 노무현 정권의 행티, 친(親)김정일 단체들이 날뛰는 모습들이 모두 이판사판의 “한판 붙자”는 식(式)이니 말이다. 때가 왔다는 뜻일까, 막판에 몰렸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대한민국도 6·25 때처럼 마냥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헌법이 정한 ‘국민 저항권’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김정일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노무현 정권은 툭하면 ‘6자회담’ 운운하지만, “나는 온갖 범죄를 다 해도 너는 무조건 눈감아 달라”는 김정일의 생떼를 미국이 들어줄 리 만무한 이상에는 ‘6자회담’은 물 건너간 얘기다. 그에게는 ‘자살특공대’ 방식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다 나은’ 선택의 기회들을 스스로 없애 버린 탓이다.
노무현 정권도 자유당 정권 말기, 유신정권 말기처럼 그 언행이 갈수록 더 해괴하다 못해 코미디화(化)하고 있다. “과연 북한의 미사일이 우리나라의 안보 차원의 위기였는가?”(청와대 홈페이지)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을 공격한다면, 주한 미군기지를 공격할 것이다”(김원웅) “실패로 치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이종석)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한국의 각료들은 국회에 가서 혼이 나야 되는 거냐?”(노무현) “국가원수를 먹는 음식(계륵)에 비유했다…이들 신문(조선, 동아)은 마약의 해악성과 심각성을 연상시킨다”(이백만) “오래전 군(軍)생활이나 장관을 하신 분들이 우리 군의 발전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윤광웅)…. 이 정권에선 어떻게 이렇게 비상한(?) 유형(類型)들끼리 유유상종(類類相從)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건 약과다. 한총련, 범민련 등의 최근 언동은 아예 ‘인민공화국 만세’다. 자기들을 ‘친북(親北)’이라 부르면 ‘용공 조작’이라며 길길이 뛰던 자들이 요즘엔 “그래, 나 그렇다” 하며 당당하게 ‘커밍 아웃’하고 있다. “선군정치는 약소민족의 설움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민족이 21 세기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언제든 북한을 침략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선 전쟁이 일어났을 것” “적(敵)들의 숨통을 향해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자”(전교조)….
정말 말 같지도 않은 극좌 맹동(盲動)이지만 그것이 반영하는 바는 간단치 않다. 한마디로 ‘김사모(김정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총동원령이 내렸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 총칼만 안 든 ‘남로당 폭동’ 같은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제 저들은 모든 가면을 벗었다. 그간의 숙주(宿主)를 제치고 ‘김사모’가 무대의 전면으로 치고 나온 것이다.
몇 해 전 어떤 유명대학 교수가 신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친북세력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이 저 지경으로 망해 가는 판에 웬 ‘친북세력’ 걱정이냐는 핀잔이었다. 결코 좌파가 아니면서 그렇게 말하던 그가 지금 민노총 간부들의 ‘혁명열사릉(陵)’ 참배 세태를 보고서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관광한 것을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극좌파를 소수파에서 ‘천하 대세’로 키워 준 촉매가 바로 그런 ‘쓸모있는 바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금도 “약자의 반발을 두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위기의 시간에 나라 지키기의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국민은 ‘5·31’과 ‘미사일’을 고비로 ‘호들갑’을 떨었다. 전 세계가, 중국까지 북의 미사일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좌파 대세에 영합하던 ‘얼마 전 장관’, 말쟁이, 글쟁이들도 요즘엔 대세가 또 기울고 있다고 보았는지 우경(右傾) ‘호들갑’으로 논조를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우리의 ‘국민 저항권’은 전 세계와 더불어 열심히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류근일·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