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동년배다. 46년생과 42년생이다. 객지(客地) 벗은 10년을 트고 지낸다는 걸로 치면 서로 말을 놓고 지내도 될 처지다. 2003년 두 사람이 나란히 두 나라 최고 권력자가 되기까지 그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은 것도 비슷하다. 2002년 후진타오가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잡지들은 ‘Who’s Hu(후가 누구야)’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표적 인명(人名) 사전인 ‘Who’s Who’를 끌어다 빗댄 것이다. 노 대통령이 2003년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인간 노무현을 아는 미국인은 전무(全無)했을 것이다. 미국 언론이 ‘Who’s No(노가 누구야)’라는 제목을 달았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게 더 많다. 노 대통령은 20대의 상당 기간을 움막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하며 보냈다.
문화대혁명 초기인 66년 칭화(淸華)대학생 후진타오는 ‘자산(資産)계급의 반동노선을 따르는 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 그는 자진해서 간쑤성(甘肅省) 류자샤댐 공사현장에 내려가 6년간을 지냈다. 후진타오는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한국의 일부 권력자들이 아는 것처럼 ‘위대한 혁명’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겪었던 사람이다. 지금 중국에선 모택동에 대한 평가가 ‘공(功) 7·과(過) 3’으로 정리돼 있다. 후진타오가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지금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모택동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할 법도 한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노 대통령은 첫 미국 방문 때 ‘미국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는 명구(名句)를 비롯해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 이후의 해외 순방에서 한 이야기까지를 합하면 책 한 권은 족히 만들고도 남을 양(量)이다.
후진타오는 42세 공산주의청년단 서기 시절부터 60세 국가부주석이 될 때까지 33개국을 순방했다. 이상한 것은 이 많은 여행길에서 변변한 말 한마디 남긴 게 없다는 점이다. 말재간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도 대학시절 한가락했던 인물이다.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힌트는 있다. 2001년 후진타오는 유럽 5개국을 방문했다. 그때 그를 만났던 유럽의 한 외교관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후진타오는 상대방의 눈을 지켜보며 사근사근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듣는 사람은 그가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치인의 명구(名句)란 말이 좋아 명구지 대부분은 말실수일 따름이다. 치밀하게 준비된 대화는 이런 말 부스러기를 남기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후진타오가 “반미(反美) 좀 하면 안 됩니까” “한국 장관은 미국의 잘못을 지적하면 안 되나요” 수준의 어록을 남기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 방문길에 그의 말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올해 미국 방문 때가 처음이다. 예일대학 연설에선 중국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제질서에 대해 “강자가 약자를 못살게 굴지않고(强不執弱)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다(富不侮貧)”는 옛 묵자(墨子)의 말을 빌려 이야기했다. 시애틀에선 이백(李白)의 시 ‘행로난(行路難)’을 인용해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뜨리는 때가 오리니(長風破浪會有時) 높은 돛 바로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直掛雲帆濟滄海)”고 중국의 포부를 넌지시 비친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두 인물의 가장 큰 차이는 집권 이후의 실적 차이다. 경제나 교육쪽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 안보 면에서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21세기 중국의 최고 국가목표는 국가 현대화다. 21세기의 20년 안에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평화,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협력적 환경이 가장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후진타오는 그 미국과의 관계를 1990년 이래 최량(最良)의 상태로 끌어올렸다. 그것도 중국 견제를 대외정책의 기본 바탕에 깔고 있는 부시정권에서 말이다. 살얼음 밟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비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가 역시 미국이다. 요즘 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최악(最惡)이다. 탄탄하던 50년 동맹이 3년 반 만에 아슬아슬하게 비탈에 걸려 있다.
후진타오는 국민이 뽑은 지도자가 아니다. 공산당의 원로(元老)들이 지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후진타오의 공(功)과 과(過)는 그를 선택한 원로들의 공과 과로 돌아간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이 뽑았다. 대통령의 공과 과를 다른 데로 돌릴 데가 없다. 고스란히 그를 뽑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오늘이 그 결과다.